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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기만 한 'KTX 인생'엔 행복이 없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7. 29. 21:32

 

빠르기만 한 'KTX 인생'엔 행복이 없다

▲ 장사익 소리꾼

40대 뒤늦은 데뷔 후회했는데

직장 15번 옮기며 경험한 인생의 굽이굽이가

내 노래를 깊고 넓게 해준 가락

무조건 빨리 도달하기보다 한 계단씩 밟으며 가면 어떨까

 

공연을 하러 지방에 갈 때 KTX를 자주 이용한다. 2시간 반이면 부산이니 정말 빠른 세상이 됐다. 한번은 바깥 풍경을 보려는데 기차가 너무 빨라서 눈이 어지러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도 그냥 눈을 감고 잘 수밖에 없었다.지난 세월 기차여행은 낭만이었다. 정담(情談)도 나누고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도 감상하며 맛난 것을 먹으며 여행했던 기억이 새롭다. 빨리 가서 빨리 일하고 빨리 올 수밖에 없는 오늘,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고 중간의 여정(旅程)들이 생략돼 버린 삶을 사는 우리는 진정 행복한 것일까.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열명 중 예닐곱이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에 손가락을 놀리느라 여념이 없다. 손가락에 온통 집중하다 보니 주위에 누가 있는지, 봄과 여름이 왔는지 갔는지,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별이 뜨고 달이 졌는지도 모를 것 같다. 답을 얻으려고 움직이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답을 찾으면 세상의 온갖 지식과 답을 손쉽게 얻는다. 이제 곧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집도 찾아갈 수 없는 세상이 올 것 같아 두렵다.어릴 적부터 꿈꾸던 노래의 길을 40대 중반에야 찾은 나는 고교 졸업 후 20여년을 노래와 상관없는 일을 하며 보냈다. 어릴 적 고향 농악대에서 장구를 치시던 아버지는 참 신명나게 판을 이끌었다. 내 노래에 담긴 신명과 가락은 그때부터 비롯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웅변을 시작한 나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5년간 목청을 가다듬는답시고 하루도 빠짐없이 동네 뒷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며 발성연습을 했다. 서울로 유학 온 고교생 때에는 유행가를 곧잘 불러 소풍이나 오락시간이면 자주 불려 나가곤 했다. 주판을 기타처럼 옆에 끼고 당시 유행하던 '빗속의 여인' '커피 한잔'을 부르며 놀았고, 함께 놀던 빡빡머리 친구들과 장난삼아 '더 빡빡스'라는 보컬그룹을 만들기도 했다.일찌감치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던 중 서울 낙원동 음악학원에서 3년간 노래의 기본기를 익혔다. 군 복무 시절에도 문화선전대에서 노래를 했다. 제대 무렵이 되어서야 앞날의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가수가 될 것인가, 다시 취직할 것인가. 가정 형편도 어려운 데다 내성적이며 소극적이었던 나는 가수의 길을 접었다. 입대 전 다니던 회사는 없어지고 간신히 조그만 무역회사에 입사하게 됐는데 1년 만에 1차 오일 쇼크로 그만둬야 했다. 이때부터 나는 회사를 15군데나 옮겨 다니며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1992년 말, 3년을 일하던 카센터에서 문득 지난날을 돌이켜 봤다. '지금까지 열심히 산다고는 했는데,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자며 내린 결론은 태평소란 악기였다. 그 후 농악대와 사물놀이판에서 태평소를 불었다.

 

하루는 유명한 타악 연주가인 고(故) 김대환 선생이 "자네, 노래 좀 한다며? '산토끼'를 박자 없이 불러봐"라고 했다. 나는 노래를 엿가락처럼 늘여가며 자유롭게 불렀다. 그러자 김 선생이 말했다. "속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잖아. 그것마저 버려봐." 그때 비로소 무릎을 쳤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내 노래는 그때부터 시작됐다.1994년 11월, 피아노의 명인 임동창에게 등을 떠밀려 소극장에서 '장사익 소리판'이란 공연을 열었다. 공연 다음 날 아침 "아, 행복하구나!" 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때까지 빙 둘러온 허송세월이 너무도 아쉽고 아까웠다. 10년만 더, 아니 5년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여름 저녁마다 집 마당에서 개구리 노랫소리 듣는 재미가 올해로 4년째다. 어릴 적 고향집 풍경이 그리워 마당 한쪽에 작은 연못을 파고 개구리 10여 마리를 풀어놓았다. 이제 더위가 시작됐으니 매미가 오실 것이고, 또 머지않아 가을 풀벌레들이 노래할 것이다.개구리 노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직장을 15번이나 옮기며 힘들게 살았던 나의 20여년이 내 노래의 거름이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힘든 역경을 거치며 경험한 인생의 굽이굽이가 내 노래를 깊고 넓게 해준 가락이 된 것이다. 나는 비로소 늦게 데뷔한 것이 후회할 일이 아니라 감사한 일임을 알게 됐다.우리는 모두 출발점에서 목표지점까지 최대한 빠르게 가려고 한다. 그런 'KTX 인생'에는 창 밖 풍경도 없고 계절 바뀜도 없다. 팍팍하고 답답하다. 자연의 발걸음은 유유자적 한결같은데, 유독 사람들만 부산스럽게 내달린다. 조금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삶의 여정을 한 계단씩 밟으며 가는 것은 어떨까.태양이 아무리 뜨거워도, 태풍이 불어닥쳐도 나무는 꼿꼿이 서서 견딘다. 그렇게 역경을 디딘 나무가 가을에 단 열매를 맺는다. 인생도 그렇게 숱한 여정을 거치며 달게 익어갈 것이다.

 

조선일보 201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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