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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중얼거리다

약력에 대하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 31. 14:34

 

약력에 대하여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집에 들어갈 약력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열 권이 넘는 시집을 내면서 지인들에게 듣는 핀잔(?)이 "시집에 들어간 필자 사진이 너무 성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 그 때 여권 사진이나 편하게 스냅으로 찍은 사진으로 때우다보니 너무 성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뭐, 사진이 대수인가! 그런데 지지난 해부터 듣는 불평은 실제보다 젊은 사진을 올려놓으니 보기 좋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지난 번 시집은 큰 애에게 부탁해서 머리도 희끗한 초로의 모습을 생으로 올려놓았다.

 

이번 시집 『눈물이 시킨 일』을 내면서 생각이 많았다. 계간 『시와 사학』은 문단에 들어서 10년쯤 지난 후 '글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시작해 보라고 힘을 보태준 디딤돌이었다. 나는 『시와 사학』에서 지금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나름의 성의와 신의를 지키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이제 또 한 번의 전환점, 아니면 막다른 길에 서 있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밀린 전공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것이 지지부진한 시업에 매달리는 것보다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우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누가 나에게 시를 써야 한다고 강압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에게 내 시를 보아달라고 애걸복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드는 생각은 시인은 모름지기 독자들에게 삶의 진경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밝고, 따뜻한, 생을 긍정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시를 보여주어야할텐데, 아직 나는 그 도정에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

 

이번 시집에는 약력이 없다. 내 시의 사유가 나이에 걸맞는지 독자들께서 가늠하시라고 출생년도를 밝히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블로그에 놀러 좀 오시라고, 혹여 격려의 말씀을 주시면 고맙겠다고 이메일 주소를 적어 놓았을 뿐이다.

나의 약력은 시집에 수록된 편편의 시 그 자체이다. 시를 통해서 내가 감추어 놓은 냄새나는 과거와 걸어온 길을 짚을 수 없다면 이것은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나도 남 만큼, 배울 만큼 배웠고, 그럴싸한 감투도 몇 개 써 보았다. 그런 걸 쓰는 것이 약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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