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혼자 중얼거리다

유목민 遊牧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2. 21. 22:34

유목민 遊牧民

 

 

 

 오랫만에 김 선생님을 뵈었다. 문단의 대선배일 뿐만 아니라 사표 師表로 각인된 그 분과 인연을 맺게 된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어렵게 등단을 하였으나 잡다한 일로 실망과 좌절을 맛보면서 과연 글쓰기를 계속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로 막 부임하시자마자 어떻게 아셨는지 나에게 먼저 연락을 주시고 다시 시를 쓸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신 분이다. 그 뿐이랴 지령 20년을 맞이한 시전문잡지를 창간하시면서 중견시인상의 타이틀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것도 잊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김 선생님의 곁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시인에 대한 따듯한 사랑을 가득 품고 유려한 비평으로 문단의 중심에 우뚝한 그 분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위성 衛星처럼 몰려들었다. 좀 더 나은 평을 받기 위해, 아니면 더 큰 각자의 포부를 완성하기 위해 거목 옆에 머무는 것이 어찌 흠이 되겠는가!

 

 동방의 해동공자로 일컬어지던 최충 崔沖이 자식들에게 “선비가 세력에 빌붙어 벼슬을 하면 끝을 잘 맺기 어렵지만, 글로써 출세하면 반드시 경사가 있게 된다. 나는 다행히 글로써 현달하였거니와 깨끗한 지조로써 세상을 끝마치려 한다.”는 유훈을 남겼듯이 나 또한 문명 文名에 대한 욕심도 없지 않았으나 누구의 힘을 빌지 않고 수행의 자세로 오로지 나의 길을 개척하기를 원했던 까닭에 앞길을 열어주려는 선생님의 몇 번의 제의를 건방지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나니 나도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선생님은 내년이면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었다. 시간은 허물을 용서하고 미움을 희석시킨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차를 나누면서 허심탄회하게 담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동안 무척 외로운 길을 걸어 왔습니다. 시인은 외로워야 하는 것이지요.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나요? 유목민이지요. 풀을 다 뜯어 먹으면 떠나야지요. 그렇지만 선생님! 한 잡지사에서 시집 네 권 낸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게 되었나요?

 

 한 달 뒤면 김 선생님이 주관하는 잡지사에서 시집을 내게 되어 있다. 오늘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된 것도 시집 출간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아니, 그것은 거짓말이다. 최근에 쓴 몇 편의 시를 프린트해서 그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평을 받아보고자 했던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한 마디 말씀에 모든 것을 접었다.

 

" 우리 모두 유목민이지요!"

그래서 나는 시인에게 묻는다.

"너는 양떼들의 풀밭이냐? 아니면 양떼를 몰고 다니는 유목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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