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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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메인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4. 13. 10:24
  • 입력 : 2009.04.08 23:13
1981년 가수 윤수일은 지방 장기공연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쯤 오니 주변 야경이 여느 날과 달랐다. 문득 "왜 이렇게 따뜻한 거야. 이게 바로 고향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바로 노래로 만들었다. "사방을 몇 바퀴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는 건 싸늘한 콘크리트 빌딩숲/ 정 둘 곳 찾아봐도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그해 대히트를 기록한 윤수일의 '제2의 고향'이다.

▶그때까지 대중가요에서 고향이라면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있고 어릴 적 같이 큰 얼룩빼기 황소가 있는 곳, 서울 생활이 고단할 때면 언제고 달려가고픈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쉽게 갈 수는 없는 곳. 사람들은 그저 "아아아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라는 노래가사를 읊조리며 그리움을 삭일 뿐이었다. '제2의 고향'의 히트는 대중의 이런 고향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탄이었다.

▶서울은 조선시대에 이미 "사색(四色)이 모여 있어서 풍속이 고르지 못하다"(이중환)고 할 정도로 다양한 탈향(脫鄕) 인생들이 모여 살았다. 사람들은 수도(首都) 600년이 축적한 돈과 권력, 정보가 제공할 삶의 기회를 찾기 위해 서울로 몰려들었다. 6·25전쟁과 뒤이은 공업화의 물결은 인구의 서울 집중을 부채질했다. 지금 서울 시민 중 조부 때부터 3대째 서울에 살아온 인구는 5%도 안 된다.

▶"서울 시민입니다/ 유목민입니다/ 뿌리를 내리는 일에는/ 정말이지 관심이/ 없습니다" 시인 나호열은 '자술서'에서 뿌리 이전에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하면서라도 생을 이어가야만 하는 현대인들의 유목적 삶을 노래하고 있다. 옛날 먹이를 찾아 초원을 헤맸듯 지금도 태어난 곳을 떠나 타향 하늘 밑을 떠돌게 하는 바탕에는 '밥벌이'의 숙명이 있다.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서정춘 '30년 전').

▶서울시가 시민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서울을 고향같이 느끼느냐"고 묻자 76.6%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서울을 고향같이 느낀다는 사람은 2003년 65.1%에서 해마다 2~3%씩 늘고 있다. 타향을 고향처럼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향과 같은 행복과 만족을 주는 것, 그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