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 조카의 결혼식이 화천에서 있었다.
그 아이는 작고한 큰 처남의 장남인데 사병으로 입대한 후 아예 부사관으로 군에 입문하였다.
처남으로 말하면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아주 건강하고 예의바른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작고하기 몇 년 전 상처를 하고 회한이 많았던 까닭에 평소 좋아하던 낚시에 몰두하다가 결국 바다에서 생을 마쳤다.
밤바다
그를 만나러 감포에서 울진으로 간다
얼마나 먼 곳에서 숨차게 달려와 쓰러지는 것인지
너울대는 포말이 순간 흰 꽃으로 핀다
피었다가 지면서 파도를 움켜쥐며 날아오르는 갈매기
망막을 할퀼 때마다 길은 급하게 왼쪽으로 꺾인다
그를 만난지 오래 되었다, 사랑을 잃고 타향에 몸 붙인 그를
이제야 만나러 간다
그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 밤길을 달려 방파제 끝에서 서성였는지를
왜 막막한 바다에 줄을 던져놓고 마시지 못하는 소주를 두 병씩 마셨는지를
밤바다의 울음이 두통을 일으킨다
흐드러지게 핀 흰 꽃들은 일제히 고개를 꺾어 길을 막는다
그가 말하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서둘러 이야기한다
외로운 사람이 바다로 간다
사시사철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는 흰 꽃을 보러 바다로 간다
외로운 사람보다 더 외로운 것이
바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바다로 간다
그는 울진 방파제에서 실종되었다
2000년 8월에 이 시를 썼으니 그는 2000년 5월에 세상을 뜬 것이다. 방파제 끝에 서 있던 그의 차,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를 찾아 헤매던 그의 아이들은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버리고
큰 아이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군인이 되었으며 막내 아들은 해양대학교를 나와 외항선을 타는 뱃사람이 되어 있다.
마침 늦은 나이에 입대한 큰 아이가 화천 가는 길목에 있어 작은 아들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나 자신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 고초가 많았던 까닭에 부모는 잘나든 못나든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병들지 않고 건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무겁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녁이 되어 아이들과 춘천댐 밑 민물 횟집에 앉아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훌륭한 애비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들고 제대한 지 30년 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
아이들과 한 자리에 앉아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기념으로 한 장 사진을 남겨 두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여!
우리가 늙어 가는 것만큼 아이들은 자란다! 이 또한 축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