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책
땅거미 지는데
어머니, 지도책 달라신다
길 눈이 어두워져
집으로 오는 길 죄다 잊어버리는데
개미꼬리만한 지명들을
밝게도 짚으신다
어디 가시게요 묻는 내가 어리석어
멋쩍게 고개 돌리면
어머니는 저만큼 세월 속에 묻혀버린
마을을 향해 등 굽은 뒷모습을
팽팽해진 활시위에 얹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길을
마음으로 열어 나가시는지
자주 눈시울을 닦아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읽어나가듯
지도책을 한 장씩 넘겨갈 때 마다
이 나이에
고아가 된다는 것이 문득문득
무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