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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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다짜고짜 그치지 맙시다

[양해원의 말글 탐험] [221] 다짜고짜 그치지 맙시다양해원 글지기 대표입력 2024.05.02. 23:54업데이트 2024.05.27. 14:10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같은 학교 인연으로 카톡방 네댓 군데에 들었다. 총동문회, 동기 동창회, 동호회, 소모임…. 죄송하게도 누구 돌아가셨을 때 꽤 성가시다. 부고(訃告) 한번 나면 조문(弔問)이 수십 번 이어지는데, 죽음을 애달파하는 일이 어찌 허물이랴. 정작 받을 사람은 끼지 않은 단체 대화방에 울리는 위로가 어색하다는 얘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삼가 고인의, 삼가…. 이튿날에야 그쳐 아쉬운 동어반복이 있는가 하면, 너무 잘 그쳐 안타까운 일도 있다.‘김하성은 지난 27일 경기에서 5타수 1안타를 기록한 뒤 4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쳤다..

[56] 그를 따라 초록 숲으로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6] 그를 따라 초록 숲으로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입력 2023.03.31. 03:00김옥선, Kevin the Humanist, 2007 무인도에 가게 되면 뭘 가져가고 싶은지 묻는 게임이 있었다. 고등학교 수련회에서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해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섬의 생태 환경을 상상하고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꼽아보고 우선순위를 정하려 했으니 머릿속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가상의 스토리이지만 생존 게임에 과몰입한 나머지 어떻게든 조난을 피해야겠다는 엉뚱한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비슷한 게임을 몇 번 해보고 나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로빈슨 크루소 같은 사람 한 ..

[189] 견양저육 (汧陽猪肉)

[정민의 세설신어] [189] 견양저육 (汧陽猪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2.12.18. 23:30  견양(汧陽) 땅의 돼지고기는 각별히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 다른 데서 나는 돼지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이었다. 소동파가 하인을 시켜 견양에서 돼지 두 마리를 사오게 했다. 하인이 돼지를 사러 떠난 동안 그는 초대장을 돌려 잔치를 예고했다. 한편 견양의 돼지를 사가지고 돌아오던 하인은 도중에 그만 술이 취하는 바람에 끌고 오던 돼지가 달아나 버렸다. 난감해진 그는 다른 곳에서 돼지 두 마리를 구해 견양에서 사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잔치는 예정대로 열렸다. 손님들은 이 특별한 맛의 통돼지 요리를 극찬했다. 이렇게 맛있는 돼지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며 역시 견양의 돼지고기는 수준이 다르다고..

[6] 베개 밑에 넣어두고 싶은 것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6] 베개 밑에 넣어두고 싶은 것 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4.02.29. 03:00업데이트 2024.03.22. 16:56  떡을 꿈속에고사리 고이 엮어베는 풀베개 餅[もち]を夢[ゆめ]に折結[おりむす]ぶしだの草枕[くさまくら] 가난한 방랑 시인은 꿈에서도 떡을 본다. 저 희고 쫀득하고 몰캉한 것을 딱 한입만 먹어보고 싶구나. 베개 밑에 떡이 있다고 상상하며 잠이 들면 꿈에서라도 떡을 먹을 수 있을 터. 옛날 에도시대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베개 밑에 금은보화가 가득 실린 보물선 그림을 넣어두고 돈 많이 벌 꿈을 꾸게 해달라 빌며 잠이 들었다는데, 풀고사리를 엮어 베개로 쓰는 청빈한 시인에게는 더도 덜도 말고 떡 한 점이 그립다. 길 위의 예술가, 바쇼(芭蕉, 1644~..

인천

140년의 공간·이야기 따라 한바퀴… 인문·역사·건축 ‘개항장 파노라마’[박경일기자의 여행]문화일보입력 2024-08-01 09:00업데이트 2024-08-01 15:55차이나타운 황제의 계단.■ 박경일기자의 여행 - 다양한 관광 콘텐츠… 등잔밑 ‘알짜 여행지’ 인천‘일본인 거류지’ 중앙동서 시작중구청 등 일제 근대건축물 즐비우리나라 첫 호텔 ‘대불호텔’도1978년 헐렸다 전시관으로 재건‘창영동 배다리’매력적 문화공간헌책방 골목 안쪽에 40년 고깃집뜻밖의 공간 발견하는 재미 쏠쏠신포시장‘진짜 노포’ 감성 만끽인천=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완결형 여행을 할 수 있는 도시, 인천여행에 관한 한 인천은 ‘완결형’이다. 거의 모든 완결된 형태의 여행지가 인천에 있다. 도시 여..

말의 행방

말의 행방 소문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벙어리의 입과귀머거리의 귀를 버리고서잘못 들으면 한 마리로 들리는무한증식의 말을 갖고 싶었다검고 긴 머리카락과길들여지지 않은 그리움으로오래 달려온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잘못 들으면 한 마디로 들리는꽃을 가득 품은 시한폭탄이 되고 싶었다길이 없어도기어코 길이 아니어도바람이 끝내 어떻게 한 문장을 남기는지한 마디면 어떻고한 마리면 또 어떨까 천리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야생의 그 말

시는 언어의 사원이 아니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 아니다중앙일보입력 2024.08.01 00:21업데이트 2024.08.01 15:30                                                                     성민엽 문학평론가시(詩)라는 한자는 왼쪽의 언(言)과 오른쪽의 사(寺)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언’은 말(언어)이고 ‘사’는 절(사원)이니 시는 곧 말의 절, 혹은 언어의 사원을 뜻한다는 풀이가 매우 그럴듯해 보입니다. 언어의 사원이라고 하면 그것은 신성한 언어, 경건한 언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하지만 이 풀이는 오류입니다. ‘寺’라는 글자가 절·사원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기원 전후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의 일이고, 言+寺라는 형태의 한자 ‘詩’는 그..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 애매어의 활용 는개라는 개        배세복 사내가 창밖을 내다보니개 한 마리 벤치에 엎드려 있다젖은 몸이 어딜 쏘다니다 돌아왔는지가로등 불빛에 쉽게 들통났다서서히 고개 돌려보니곳곳에 개들이 눈에 띄었다야외 체력단련기구 위에도지친 여러 마리의 개들차가운 철제 의자에 젖어 있었다 당신이 떠난 후로 습관처럼밤은 또 개를 낳았다그것들은 흐리고 가는 울음이다가가끔은 말도 안 되게 젖기도 한다어떤 밤은 안개라는 이름으로 부옇게또 다른 밤은 번개로 울부짖다가이 밤은 그냥 조용한 는개 된다너는 개다 너는 개다 너 는개다이 정도면 키울 수 있겠다 싶어사내가 불을 끈다 천천히 이불 당긴다  - 『볼륨』 4집 (2021)  ■해설  엄밀히 말해서 애매曖昧와 모호模糊는 다른 뜻을 지닌다..

흰 눈 쌓인 한라산의 겨울 풍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

[나무편지] 흰 눈 쌓인 한라산의 겨울 풍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  ★ 1,243번째 《나무편지》 ★   난데없이 오늘의 《나무편지》를 한겨울 제주 한라산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무더운 날씨 이어지며 겨울 찬바람이 그리워서 그랬습니다. 대서 중복 다 지나고 이번 주만 넘기면 다음 주에는 입추가 들어있고, 그 다음 주에는 말복이 있습니다. 이번 주가 고비이겠지요. 아니 그리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계절의 흐름을 살피는 기준인 이십사절기가 맞아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진작에 물러갔어야 할 장마전선이 아직 우리 머리 위에 머무르며 크고 작은 비를 쏟아내는 상황이니, 이번 주 넘긴다고 날씨가 편안해지리라 기대하기가 쉽지 않네요. 갈수록 절기가 맞지 않지만, 달력 짚어보면서 마음이라도 가라앉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