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전체 글 6099

[190] 추연가슬 (墜淵加膝)

[정민의 世說新語] [190] 추연가슬 (墜淵加膝)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2.12.25. 23:30  연암 박지원이 면천 군수 시절, 충청 감사가 연분(年分)의 등급을 낮게 해줄 것을 청하는 장계를 누차 올렸지만 번번이 가납되지 못했다.다급해진 감사가 면천 군수의 글솜씨를 빌려 다시 장계를 올렸다. 연암이 지은 글이 올라가자 그 즉시 윤허가 떨어졌다. 감사는 연암을 청해 각별히 대접하고 은근한 뜻을 펴보였다.하루는 감사가 연암에게 도내 수령의 고과 점수를 매기는 종이를 꺼내놓고 함께 논의할 것을 청했다. 채점을 받아야 할 당사자에게 채점을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니, 감사로서는 특별한 후의를 보이려 한 일이었다. 민망해진 연암은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해 면천으로 돌아와 버렸다.감사는 ..

[148] 인연

[최영미의 어떤 시] [148] 인연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입력 2023.12.04. 03:00업데이트 2024.03.26. 15:04   일러스트=이철원 인연맨 처음 만났을 때우리는 모르는 사이였지그 순간을 생각하면가슴이 두근거려하마터면 그냥지나칠 뻔한 그 순간 나는 키가 작아 앞줄에 앉고너는 키다리.맨 뒷줄이 네 자리아, 우리가 어떻게단짝이 됐을까! 키다리 친구들과 둘러서서바람이 가만가만 만지는 포플러나무 가지처럼두리번거리다 나를 보고너는 싱긋 웃으며 손짓한다너를 보면 내 코는 절로 벌름벌름내 입은 벙글벙글.-황인숙(1958~) 마지막 두 행이 멋지다. “내 코는 절로 벌름벌름/내 입은 벙글벙글”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진짜 친구를 보면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다. 친한 사람..

공부할 시 2024.08.05

낭만시인 첫 걸음 6

낭만시인 첫 걸음 6 ■ 현대적 삶의 증언 모던타임즈       최서림 왼쪽 눈은 인조백합이 만개해 있다.오른쪽 눈은 독거미가 진을 치고 있다.전쟁 같은 평화 속에서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자들,영감 고리오의 콧날을 가졌다.노파 일리나의 갈고리 손을 가졌다.에프 원 경주대회 같은 세상 속에서생의 브레이크가 파열된지도 모르고,어디로 굴러떨어지는지도 모르고굴러가는 자들의 입이 점점뭉크빛 공포로 벌어지고 있다.  - 시집 『가벼워진다는 것』 (현대시학 기획시선 16, 2021)■ 해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층적으로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유기적 일체성을 상실한 ‘인조백합을 가진 인간’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 인간사회에서 낙오된 발자크 소설에서의 ‘고리오 영감’도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노파 일리나’도..

마타리

[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1m 이상 큰 키에 황금색 꽃과 꽃대… 무더운 날엔 좋지 않은 냄새 풍겨요마타리김민철 기자입력 2024.08.05. 00:30   마타리에 꽃이 핀 모습. /김민철 기자벌써 마타리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숲이나 풀밭 등 양지바른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꽃은 황금색 마타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마타리는 꽃도 꽃대도 황금색이고 키가 1m 이상으로 커서 시선을 확 끄는 식물입니다. 숲에 가지 않더라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변 언덕 등에서 큰 키에 노란색 물결이 하늘거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타리 무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마타릿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서식 환경이 까다롭지 않아 전국의 산과 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여름부터 시작해 늦게는 10월까지도 볼 ..

초인 기다린 항일 저항시인, 17차례 체포돼 감옥서 순국

초인 기다린 항일 저항시인, 17차례 체포돼 감옥서 순국중앙선데이입력 2024.08.03 00:35업데이트 2024.08.05 10:18김석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물 탐구 ⑦ 이육사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모든 山脈들이바다를 戀慕해 휘달릴 때도참아 이곳을 犯하든 못하였으리라끈임없는 光陰을부지런한 季節이 픠여선 지고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엇다지금 눈 나리고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千古의 뒤에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이 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 하리라저항시인 이육사. 1941년 북경으로 떠나기 전 생일에 서명을 담아 친구들과 사촌들에게 나누어준 사진이다. [사진 이육사문학관·김석동]이육사의 유작 ‘광야(曠野)’의 4연은 일제에 저항하는..

꽃 지고 다시 피고 … 열매 맺고 씨앗 맺는 한여름의 나무살이

[나무편지] 꽃 지고 다시 피고 … 열매 맺고 씨앗 맺는 한여름의 나무살이  ★ 1,244번째 《나무편지》 ★   지난 한 주 동안은 많은 분들이 휴가였던 모양입니다. 수도권 시내의 한가한 교통 사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요. 주중에는 지방의 일정이 있어서 고속도로에 올랐는데요. 고속도로는 휴가 철임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정체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 두 시간 조금 넘는 거리의 길을 지난 목요일에는 거의 다섯 시간 걸려 갈 수 있었습니다. 한 해 중에 가장 피로가 높은 시기인 한여름의 휴가철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 주, 다음 주, 기상청 중기예보에 나오는 이달 중순까지도 찌는 듯한 무더위는 식지 않는다는 예보를 보니, 숨이 막힐 듯합니다.   숲의 나무들은 이 무더위 속에서도 제 살림살이를 잘 ..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대사전...40년 대장정 끝내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대사전...40년 대장정 끝내중앙일보입력 2024.08.02 00:23백성호 기자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구독백성호의 현문우답구독중백성호 종교전문기자장장 42년에 걸친 대장정이다. 한국 불교계의 숙원 사업이었던 ‘가산불교대사림’(총 20권)의 편찬 작업이 최근 마무리됐다. 원고량만 34만 286장이다. 지금껏 출간된 불교백과사전 중에서 세계 최대의 규모다. 모두 20권이지만 권당 두께가 상당하다. 일반 단행본 서적으로 치자면 200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서구 계몽주의식 사전 아니다대장정을 이끈 주인공은 지관(智冠, 1932~2012) 스님이다. ‘국내 최고의 학승’으로 꼽히던 그는 동국대 총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12년 전에 지관 스님은 입적했지만, 그의 유지를 이어..

붓다를 만나다 2024.08.02

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2024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머그잔- 박태인물이 되려는 순간이 있어요 얼굴을 뭉개고입술 꾹 다물고자꾸 그러면 안 돼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여요 나는물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고 싶어요창틀에 놓여있던 모과의 쪼그라든 목소리가 살금살금 걷는 듯한 아침어김없이 당신의 그림자는 식탁에 앉아 있어요뜨거운 것으로 입을 불리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을 해요, 조금 더 따뜻한우리는 언제쯤 깨질 것 같나요? 이런 말은 슬프니까숨을 멈추고 속을 들여다보면 싱크홀 같거나 시계의 입구 같거나 울고 있는 이모티콘 같아요 두 손에 매달려 쓸데없이 계속 자라는 손톱처럼 똑똑 자르면 될 것 같은 시간을 말아 쥐고 있는 기분나는 내 손을 스스로 잘라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