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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시인 첫걸음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7. 31. 14:39

낭만시인 첫 걸음 시창작 5강

 

■ 애매어의 활용

 

는개라는 개

        배세복

 

사내가 창밖을 내다보니

개 한 마리 벤치에 엎드려 있다

젖은 몸이 어딜 쏘다니다 돌아왔는지

가로등 불빛에 쉽게 들통났다

서서히 고개 돌려보니

곳곳에 개들이 눈에 띄었다

야외 체력단련기구 위에도

지친 여러 마리의 개들

차가운 철제 의자에 젖어 있었다

 

당신이 떠난 후로 습관처럼

밤은 또 개를 낳았다

그것들은 흐리고 가는 울음이다가

가끔은 말도 안 되게 젖기도 한다

어떤 밤은 안개라는 이름으로 부옇게

또 다른 밤은 번개로 울부짖다가

이 밤은 그냥 조용한 는개 된다

너는 개다 너는 개다 너 는개다

이 정도면 키울 수 있겠다 싶어

사내가 불을 끈다 천천히 이불 당긴다

 

- 『볼륨』 4집 (2021)

 

■해설

 

엄밀히 말해서 애매曖昧와 모호模糊는 다른 뜻을 지닌다. 애매는 중의성重義性을 지니고 있으며 모호는 개념의 기준 자체가 불분명한 것이다. ‘개’는 가축화된 친숙한 동물이지만 일부 사회적 통념에서는 심지가 굳지 못한 욕설로 쓰이기도 한다. 이 시에서의 ‘개’는 음울하고, 야성을 감춘 존재이다. 이 ‘개’의 의미를 중심으로 ‘는개’, ‘안개’, ‘번개’와 같은 연상어를 통해 화자 話者인 ‘그’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그’는 1연에서 풍경의 바깥 - 안개가 깔린-을 보여주면서 안개가 는개가 되고 번개가 되는 부재하는 ‘당신’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 한다. 증폭되는 ‘개’가 누구이든, 무엇이든, 더 나아가 ‘당신’이 어떤 실체인지는 독자 나름대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 배세복

 

광주일보 신춘문예(2004). 시집 『몬드리안의 담요』(시산맥 2019), 『목화밭 목화밭』 (달아실 2021). 문학동인 Volume 회원

■ 생각해 보기

 

* 언어의 애매성과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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