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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꽃 지고 다시 피고 … 열매 맺고 씨앗 맺는 한여름의 나무살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8. 5. 15:47


[나무편지] 꽃 지고 다시 피고 … 열매 맺고 씨앗 맺는 한여름의 나무살이

  ★ 1,244번째 《나무편지》 ★

   지난 한 주 동안은 많은 분들이 휴가였던 모양입니다. 수도권 시내의 한가한 교통 사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요. 주중에는 지방의 일정이 있어서 고속도로에 올랐는데요. 고속도로는 휴가 철임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정체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에 두 시간 조금 넘는 거리의 길을 지난 목요일에는 거의 다섯 시간 걸려 갈 수 있었습니다. 한 해 중에 가장 피로가 높은 시기인 한여름의 휴가철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 주, 다음 주, 기상청 중기예보에 나오는 이달 중순까지도 찌는 듯한 무더위는 식지 않는다는 예보를 보니, 숨이 막힐 듯합니다.

   숲의 나무들은 이 무더위 속에서도 제 살림살이를 잘 챙기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여름 날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 그러나 꽃 피고 지는 시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년 같으면 지금 한창 피어나야 할 여름 목련은 이미 꽃 지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남부 지방에는 지금 배롱나무 꽃이 한창인 듯합니다만 나의 숲에 서 있는 나의 배롱나무는 아직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꽃봉오리를 무성하게 피워올린 지금 상태로 봐서는 앞으로 열흘은 더 지나야 붉은 꽃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배롱나무처럼 우리의 여름을 화려하게 밝혀주는 대표적인 꽃은 무궁화입니다. 무궁화는 지금 한창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인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입니다. 무궁화 꽃이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물론 무궁화의 날은 아직 공식적인 법정 기념일이 아닙니다. 2007년에 ‘나라사랑 어린이 기자단’을 중심으로 전국의 초등학생 1만여 명이 ‘무궁화의 날’ 제정을 청원한다는 서명 운동을 전개하며 정해진 겁니다. 날짜를 8월 8일로 한 것은 이 즈음에 무궁화 꽃이 가장 아름다운 때이기도 하고, 8자를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를 표시하는 수학 기호가 되는데, 무궁화 꽃이 무궁무진하게 피어난다는 걸 상징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못에는 여러 수생식물들이 여름 햇살을 반기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잎을 가진 크루지나아 빅토리아수련은 물 속에서 꽃봉오리를 올렸습니다. 빠르면 이번 주말 쯤 꽃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현재까지 기록으로 보면 지름이 3.2미터에 이르는 크루지아나 빅토리아 수련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잎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수직으로 꺾여 오른 부분이 17센티미터였다고 하니, 그 부분까지 포함하면 무려 3.5미터가 넘는 대단한 크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잎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이건 홑잎(단엽)의 경우입니다. 겹잎(복엽)의 경우 잎자루가 4미터, 겹잎 전체의 크기가 20미터나 되는 ‘라피아 야자’라는 식물이 있기도 합니다.

   지난 6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해서 여름 내내 피어있는 꽃인 수국은 이제 꽃가루받이를 서서히 마쳐가는 모양입니다. 수국의 작은 꽃을 매개곤충에게 알려주기 위해 꽃 주변에 진짜 꽃보다 더 화려하게 피었던 헛꽃은 이제 서서히 몸을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매개곤충들에게 이미 꽃가루받이를 마쳤기 때문에 꽃밥도 꿀도 없으니 이제 더 오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꽃으로 보이지만, 적외선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곤충의 눈에는 이전의 모습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모습인 거죠. 수국 헛꽃의 뒤집기 신공을 볼 때마다 나무들의 살림살이가 정말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헛꽃이 너무 촘촘히 자리잡고 피어나는 탓에 제 몸을 뒤집을 여유가 없는 수국도 많이 있습니다. 사진의 수국 종류는 ‘떡갈잎수국’의 한 종류입니다. ‘떡갈잎’이라고 이름붙은 건, 이 종류의 잎사귀들이 떡갈나무 잎을 닮았다 해서 그런 겁니다. 떡갈잎수국 종류인 이 수국의 꽃차례에는 헛꽃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다 헛꽃이 겹으로 피어나니 뒤집기 기술을 발휘할 여유가 없을 겁니다. 겹겹이 피어난 헛꽃들을 하나 둘 짚어보려고 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쪼그려 앉아 따가운 여름 햇살을 맞는 게 나쁘지 않습니다. 재미있을 뿐 아니라 나무가 보여주는 경이로움과 완벽한 조형미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게 됩니다.

   가지 끝에 앙증맞은 꽃을 촘촘히 피웠던 후박나무는 서둘러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 수목원에서 가장 먼저 심은 나무로 알려진 두 그루의 후박나무입니다. 올망졸망 맺은 열매들을 뜨거운 여름 햇살 맞으며 잘 익혀가야 합니다. 나무의 한해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게 씨앗 맺는 일이겠지요. 무더위에 지쳐 모두가 피곤해 하는 이 시기가 후박나무에게는 가장 수고로운 노동의 계절입니다. 이 계절을 잘 보내야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가을을 당당하게 ‘결실의 계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계절을 사람들은 흔히 ‘꽃궁기’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던 봄 지나면서 새로 피어나는 꽃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아서 ‘꽃이 궁한 시기’라고 부르는 겁니다. 수국 배롱나무 무궁화가 아무리 화려해도 사실 꽃 종류가 그리 많지 않은 시기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이 즈음에 피어나는 몇 가지 꽃들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겹삼잎국화’로 부르는 꽃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루드베키아’로 더 많이 부르는 ‘삼잎국화’ 종류로, 꽃이 겹꽃이어서 ‘겹삼잎국화’라고 부르는 꽃입니다. 이 꽃도 무궁화 배롱나무 못지않게 오랫동안 피어있는 꽃입니다. 아마도 가을 바람 불어오며 국화 종류의 꽃이 피어날 때까지 계속 꽃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일 모레가 입추라고는 하지만, 가을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날씨입니다. ‘열대야’라는 말로도 부족해 이제는 ‘초열대야’라는 말까지 쓰이는 실정입니다. 폭염 사태는 앞으로 더 강해지면 강해지지 결코 수그러들지 않겠지요. 어떤 기후학자가 “올 여름이 당신의 인생에서 제일 시원한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얼마 전에 신문칼럼에 남긴 경고가 ‘끔찍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달아야 하는 무더운 여름 날입니다.

   이번 주에는 ‘연꽃 답사’를 떠나려 채비하고 있습니다만, 뜨거운 여름 햇살이 자꾸만 머뭇거리게 합니다. 하긴 연꽃 답사는 언제라도 무더위와 함께 해야 하는 길이니 그런가보다 하고 길 위에 올라야 할 겁니다. 다녀와 연꽃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8월 5일 아침에 1,244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