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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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톤에서의 하루(4)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6. 8. 20. 23:34

4. 사랑하기 위하여

 

가을 호수

 

 


이제
가을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리움의 들 물길이
외로움의 날 물길보다
깊어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없습니다

길이 없어
흰 구름만이 철새처럼
발자국을 남기고
눈도 씻고 가는 곳
당신의 얼굴
가득히 담아
바람은 가끔
물결을 일렁이게 하지만
당신이 놓아준
작은 숨결들을
속으로만 키우는 기쁨입니다

 


이제
가을 호수가 되었습니다
당신만을 비추는
손바닥만한
거울이 되었습니다

 

 

나는 우민(愚民)이면서 나는 우민(憂民)이다. 세상은 더럽고, 누추하고, 오물 덩어리 같다. 그 오물을 몸에 묻힌 채로 참 오래 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럽다 더럽다 외치면서 나는 브루조아의 달콤함을 잊은 적 없다.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남북이 통일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해체되고, 해체된 이성은 이제는 제멋대로 갈 길을 가는데, 나는 브루조아가 아닌데,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때도 되었는데, 우리 애들 보다도 철이 부족하다. 시인이라면 적어도 불의의 세상에 돌멩이 하나라도 날릴 수 있어야 하는데, 취로봉사 나가는 구부정한 노인들의 옆을 매연을 풍기며 지나가는 아침에도 나는 꿈만 꾸고 있다. 할 말이 많은 것이 시인의 첫 번 째 자격인데, 변혁과 혁명과 미의 찬미자 이어야 하는데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사랑에 대해서 탐구하는 일 일 뿐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네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네 옆에 내가 서 있을 때 내가 아름다워지기 때문이고, 네가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네 곁에 서 있을 때 네가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해놓고도 잊어버린 말을 어느 학생이 다시 내게 들려주었다. 몇 해 전 봄 학기 강의 때였을 것이다. ‘딱딱한 철학 얘기 집어치우고 사랑 얘기나 합시다’ 라고 떼쓰는 학생들에게 아무 생각없이 떠든 이야기를 용케도 기억하고 있는 그 학생에게 나는 은연중에 나의 시 쓰기의 일단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랑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이 말은 어느 시집의 짧은 글에 수록했던 기억이 나고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면서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영원히 향유할 수 없는 인간의 이상일지 모르기 때문에 그 비극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나는 느낀다. 마더 테레사처럼,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을 구해 내려고 전생을 바친 독일인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선행, 예수나, 석가모니나 공자같은 성인들, 그 모두가 인간임을 안간힘을 쓰며 찾아내려고 했던 구도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욕망의 분출이 왜 금기시 되어야 하는가? 그들 또한 상대방을 향해서 형극의 사막을 걸어가는 순례자가 아닌가? 정의를 내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관념이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끈질기게 인간의 유전자에 달라붙는 그 관념에 대해서 말을 걸고 싶어진다.
절친한 시인과 장충동 족발 집에 간 적이 있다. 무엇이든 잘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원조의 간판을 내어 단다. 냉면, 갈비,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설렁탕, 순두부..... 원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내밀한 욕구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 해본다. 가짜에 너무 많이 속았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면서 사리사욕을 채운 정치 지도자들, 배움 따로 실천 따로인 지식인들, 그러고 보니 나도 가짜 시인일 지 모른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손님들로 가득한 첫 번 째 집에 주차를 부탁했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내다보지도 않고 문전박대다. 저 만큼 아래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손짓을 한다. 차를 옮기고 족발을 먹으면서 그 시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을 모나게 산다는 것은, 내가 모남으로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둥글게 산다는 것은 세상을 적당히 살자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만큼 둥글어져야 한다는 거지요’ 나는 반성한다. 올바로 걸어간다고 하면서 나는 타인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사랑은 직접적인 대상을 향해서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간접적으로 이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는 이렇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가 아니라 ‘ 고맙습니다. 맛있게 드셨습니까? 손님, 돈 많이 버세요’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씀 ‘돈 많이 버세요’ 이런 말은 처음 들었다. 돈을 주는 것이 아니지만 그 인사말은 며칠동안 내 머리에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시가 무엇이란 말인가? 시를 쓰는 내가 즐겁고, 내 시를 읽는 독자들이 즐거우면 나는 그들에게 무량의 사랑을 주는 것이다. 어느 시를 쓰고 난 후 30분이 즐거운가 하면 어느 시는 하루가 가고, 삼일 동안 기분 좋아지는 시가 있다. 그러나 일 주일이 기분 좋고, 한 달이 기분 좋아지는 시를 아직 나는 쓰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시인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