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적당한 힘 / 김정미
박숙인 2025. 1. 4. 17:30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적당한 힘 / 김정미
적당한 힘
김정미
새를 쥐어 보았습니까?
새를 쥐고 있으면
이 적당한 힘을 배우려 학교엘 다녔고 친구와 다퉜고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온갖 소리를 가늠하려 했었던 일을 이해하게 된다
온기는 왜 부서지지 않을까.
여러 개의 복숭아가 요일마다 떨어지고
떨어진 것들은 정성을 다해 멍이 들고 꼼지락거리는
애벌레를 키운다
서로 다른 힘을 배치하는 짓무른 것들의 자세
새로운 패를 끼워 넣고 익숙한 것을 바꿔 넣으면
손을 빠져나간 접시가 깨졌고
칠월이 손에서 으깨어졌고
몇몇 악수(握手)가 불화를 겪었다
세상의 손잡이들과 불화하든
친교를 하든
모두 적당한 힘의 영역이었을 뿐
몰래 쥐여준 의심과 아무렇게나 손에 쥐고 있던 새의 기록에서
별똥별을 본다
적절한 힘을 파는 상점들이 있었으면 해
포장도 예쁘게 해서
심지어 택배로 보낼 수 있었으면 해
평평하고 고요한 힘
고요해서 막다른 골목만큼 지루하고 착한 힘
모자라거나 딱 맞는 힘이 아니라
오르막을 오를 때 내리막 힘을 딛고 올라가려 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일들을 데려오거나
데려간 그 힘.
손닿는 곳마다 손잡이가 있는 건 아니니까
하루를 조금 더 올라가 보려는 거겠지
한 발 한 발 올라간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삐딱하게 어둠이 잡음으로 끼어들어도
멈추지 않으려는 거겠지
불편한 새를 손에 쥐어 보기 전에
적당한 힘 하나 손금으로 열어두어도 괜찮은
..........................................................................................................................................................................
[당선소감]
쓰면서 쓰린 곳이 덤덤해졌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자기 방열(放熱) 방식처럼 쓰린 곳들이 덤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온기라 귀띔해주었습니다. 실망이, 좌절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결국 시의 점등구간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일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도 같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일을 데려오거나 데려갔던 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 끼이는 일이 부쩍 잦아집니다. 당선통보를 듣던 그날도 그랬습니다. 용기 잃지 말라는 토닥토닥 등 두드려 주는 위로의 손 하나 울컥, 답장으로 받았습니다.
겹겹의 파동과 가파른 언덕들. 그 경사의 반환점을 도는 일은 여전히 바람이 불고 큰 비가 내리고 땡볕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쓸쓸하겠지만 부서지지 않고 가다 보면 적정한 온도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살면서 간절해지는 것은 절대 만들지 말자는 다짐을 매번 무너뜨리는 시 쓰기.
이 몰두의 적절한 힘과 평온 앞에서 감사함을 전할 분이 많습니다. 내 시의 처음이신 은사님 이영춘 선생님. 산문 정신을 일깨워 주신 전상국 선생님. 기꺼이 내 꿈을 응원해준 남편 이두호씨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마침내 긴 공부를 마친 아들 윤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윤수, 긍정적인 이쁜 동그라미 지은, 그리고 학순언니, 동생정혜, 먼 곳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 엄마. 내 안의 습기마저 시가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를 뿌리다, 미디어 시in그 밖 많은 동료. 늘 응원해 주시는 윤금자 샘 이경은 샘 감사합니다. 김언 이제니 정익진 심사위원님들. 크고 너그러운 품을 가진 국제신문사와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의 시작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정미
필명 김도은. 1968년 춘천 출생.
2015년 ‘시와 소금’ 시 신인상 . 202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수료. 춘천 거주
[심사평]
오랜 시간 시의 언어 단련한 흔적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시는 자기만의 언어를 동반하면서 나온다.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를 발굴하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는 말도 가능하겠다. 자기만의 언어는 시적인 언어만 단련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언어일 때 비로소 자기만의 언어가 되고 시가 된다. 저마다 달라야 하는 시의 언어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개개인의 삶을 터전으로 하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부쩍 늘어난 응모작을 읽어나가며 유심히 챙겨 본 것도 자기만의 언어였다. 자신의 삶을 관통한 자기만의 언어. 다수 응모작이 익히 알고 있는 엇비슷한 시적 언어를 못 벗어나고 있는 가운데, 자기만의 언어를 발견하기 위해 분투하는 작품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띄었다.
심사 막바지까지 남아서 거론된 작품은 ‘큐브의 방향’, ‘야간 산행’, ‘적당한 힘’이었다. 우선 ‘큐브의 방향’은 발상이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으나, 충분히 숙성하지 못한 채 발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야간 산행’은 질문 하나로 시작해 그 질문을 끈기 있게 끌고 가는 솜씨가 좋았으나, 중간중간 시상을 산만하게 하는 장면이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을 남겼다.
‘적당한 힘’ 역시 질문 하나로 시작해 그 질문을 끝까지 끌고 가는 방식으로 시상이 전개된다. 뒤로 갈수록 질문에 응답하는 문장들이 조금 더 폭발하듯이 쏟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적절히 시상을 확장하면서 한 편의 시를 완성도 있게 제어하는 솜씨가 마지막에 신뢰를 주었다. 오랜 시간 시의 언어를 단련한 흔적이 역력한 ‘적당한 힘’을 논의 끝에 당선작으로 뽑았다. 축하드리며 오래 정진하시기를 빈다.
심사위원 : 정익진 • 김언 • 이제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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