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연한 5
눈 깜짝할 사이
여행을 다녀왔다
삼 박 하고 나흘 동안
수만 리 만행을 떠난 승려가 된 듯
고요히 적막에 면벽한 피정인 듯
감금과 해방 사이를 들락거렸다
수인이 되어
염려를 가장한 감시와
안녕을 빙자한 검사 속에서
언제인가 한번을 마주쳐야 할
죽음과 만났다
일 년의 내구연한을 선고받은 사람과
내일도 모르면서
천년을 살듯이 이스트처럼 부푼
헛꿈을 꾸는 동안
와르르 벚꽃이 지고
구름은 한바탕 눈물을 쏟고
산을 넘어갔다
분명히 집을 떠나왔는데
여전히 나는 아집 속에 떠돌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 문학 2024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