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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숲에 펼쳐진 생명의 비밀과 Wood Wide Web 의 치명적 ‘오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30. 14:17

[나무편지] 숲에 펼쳐진 생명의 비밀과 Wood Wide Web 의 치명적 ‘오류’

  ★ 1,253번째 《나무편지》 ★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싶어, ‘가을인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낮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송송 솟아오르는 건 여전합니다. 물론 햇살이 덜 따가운 게 사실이기는 해요. 기상청의 ‘가을’ 기준에 이르려면 앞으로 보름 쯤 더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루 평균 기온이 높아서는 아무래도 올 가을 단풍도 그리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따라옵니다. 엊그제 소개해드린 책 《육두구의 저주》은 이런 시기에 맞춤한 책이었지 싶습니다. 안타깝게도(이건 내게만 그런 거겠지만요) ‘박경리 문학상’의 최종 수상은 프랑스 작가에게 돌아갔습니다만, 그래도 아미타브 고시는 주목해야 할 작가인 게 분명합니다. 오늘도 또 한 권의 책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책은 나무를 이야기하는 데에 꼭 필요한 좋은 책입니다. 재미로 쳐서도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보셨을 듯한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입니다. 흥미롭게 보신 분들은 한번 그 책의 내용을 되짚어본다는 뜻으로 보셔도 좋겠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소개하는 책 소개의 내용은 추석 연휴 중에 SNS 담벼락에 이어가던 책 소개 페이지에 썼던 글을 리라이트한 것입니다. 추석 연휴 중에는 《나무편지》에서 소개했던 몇 권의 책을 보다 자세히 소개했지요. 흑인 노예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알려진 세계》, 죽음에 가까워진 나이에 ‘추방당한 숲’으로 스스로를 유폐한 뒤에 우연히 만난 한 마리의 학대당한 개 ‘예스’를 통해 세상의 다른 생물종을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내 식탁 위의 개》, ‘마침표 없는 문장’으로 유명한 노벨상 수상작가 욘 포세가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그려낸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생명 원리를 소설 못잖은 흥미로움으로 그려낸 과학책 《세포의 노래》, 그리고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던 책 《클라우드 쿠쿠 랜드》까지 비교적 상세히 책의 내용과 특징을 적었습니다.

   그 끝에 수잔 시마드의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도 썼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는 그 내용을 리라이트해서 담아 띄웁니다. 이 책의 저자인 숲생태학자 수잔 시마드가 널리 알려진 사람이어서, 이 책 역시 많은 분들이 이미 보셨을 겁니다.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게 바로 수잔 시마드의 연구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Wood Wide Web라는 말은 수잔이 직접 만든 용어가 아니고, 그의 논문을 실은 《Nature》 편집자와 논문 심사위원이 지어낸 용어입니다. 아마도 World Wide Web 과 비교해 독자 대중에게 숲의 생태를 더 잘 알리려는 전략적 용어였죠. 그 전략은 일정하게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숲 이야기를 하는 분들 사이에는 이미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쓰이는 용어가 됐으니까요. 하지만 이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를 무작정 사용할 때에는 약간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용어는 인터넷 즉 World Wide Web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용어인데요. 두 용어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는 Wood Wide Web을 이야기할 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차이입니다. 일단 인터넷을 뜻하는 World Wide Web 은 단순히 하나의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데에 불과하지만 Wood Wide Web 은 분명히 살아있는 생명인 균류의 균사라는 조직에 의해 숲의 생명체들이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World Wide Web 은 수동적으로 연결만 담당하는 수동적 네트워크에 불과하지만, Wood Wide Web 은 연결 네트워크 스스로가 여느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능동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거죠. 가만히 보면 둘 사이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큰 차이입니다. 실제로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가 처음 만들어지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수잔 시마드는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World Wide Web 과 네트워크 형태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본질에서는 수평적으로 연결짓기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뒤에 펴낸 이 책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에서는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를 스스로 쓰기도 합니다. 책 전체를 통해 딱 한번 활용하는 데에 그칩니다. 생각만큼 적극적으로 쓰지는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는 뭔가 머뭇거림이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Wood Wide Web 이 수잔 시마드가 지어낸 용어인 것처럼 생각했던 독자들은 그가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이 용어를 쓰는지에 대해 조금 의아해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앞에서 말씀드린 결정적 차이를 생각하시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책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의 성격을 뭐라 이야기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과학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문학적이고, 문학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과학적입니다. 이 책이 독자를 사로잡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아주 잘 짜여진 플롯과 스토리텔링 방식에 있을 겁니다. 수잔의 어린 시절부터 Wood Wide Web 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과정, 그리고 그가 개인적으로 겪는 ‘어머니’로서의 갈등과 고난까지, 전체적으로는 수잔 시마드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스토리텔링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소설만큼 재미있습니다. 수잔의 인생편력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냥 자전 소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소설적입니다. 문장에서 문학적 특징이 있다기보다는 치밀한 스토리텔링의 플롯이 여느 소설 못지않습니다.

   스토리텔링 구성에 조금은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과학자인 그가 자신의 이야기와 ‘우드와이드웹’ ‘어머니나무’ 이야기를 어떻게 이토록 치밀하게 구성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가 숲의 생태를 밝혀나가는 과정은 그의 가족사와 절묘하게 평행선을 그려가며 이어집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의 가족사, 그리고 자신의 인생편력 모두가 아주 치밀하게 연결됩니다. 보통의 소설에서도 쉽지 않을 만큼의 구성입니다. 그럼에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그가 진심을 다해 이 글을 썼기 때문일 겁니다. 심지어 어린 시절에 처음 땅 속에서 균류의 활동을 확인하는 과정(이건 그가 TED 강연에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과 나중에 그가 실제로 숲에서 균류의 균사 확산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러하며, 심지어 수잔이 한 남자를 만나는 과정, 그리고 두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과정까지. 대단한 스토리텔링 구조입니다.

   일반적인 스토리텔링 구성에서 이야기하는 ‘갈등’과 ‘반전’이 담겨있고, ‘반전’을 위한 ‘복선’도 치밀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라도 책을 보실 독자들의 흥미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대단합니다.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그가 나무와 나무 사이에 탄소가 이동하는 걸 확인하는 실험을 상세히 묘사하는 과정에도 그가 나중에 겪을 고난에 대한 복선이 들어 있습니다. ‘파국’도 있습니다. 이건 스토리텔링 구성법을 전문적으로 학습하고 연습한 사람이 아니라면 구현하기 힘든 방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의 가족 이야기가 군더더기처럼 여겨지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그건 실제 숲의 생태와 사람살이의 생태를 연결시키기 위한 복선이거나 갈등 요소였음을 확인하면서 놀라게 됩니다. 증조부에서부터 생태학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수잔의 딸에 이르기까지 그의 가족사는 그 자체로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수잔이 우드와이드웹의 실체를 규명하는 과정은 ‘운명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숲은 그저 여러 그루의 나무가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분명하게 연결된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온갖 실험과 연구를 통해 밝혀내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 이 책은 숲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될 겁니다. 균사를 통해 단순히 연결된 것을 확인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연결망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는지를 밝히기 위해 탄소에 표지를 해서 그 이동 과정을 살피는 과정을 볼 때에는 손에 땀이 납니다. 그의 생동감 넘치는 현장 묘사가 그렇습니다.

   Wood Wide Web 으로 상징하는 연구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수잔이 겪어야 했던 숱하게 많은 갈등과 질곡의 이야기는 참 많은 느낌을 줍니다. 연구 초기부터 여태까지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행정가들과 현장연구자와의 갈등은 그곳에서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숲과 나무를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싶어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연구 과정에서 그는 지치고 병까지 얻었지만, 그의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나무와 나무의 연결까지가 그 동안 그의 연구였다면 아직은 초기단계인 그의 현재 연구는 다른 생물종과의 연결로 확장돼 진행하는 중입니다. 이를테면 연어와 숲의 나무가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겁니다. 초기 결과에 대해 그는 긍정적인 단서를 얻었다고 이 책의 뒤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맨 뒤에 그가 쓴 ‘감사의 글’에서 이 책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 풀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전문가급의 스토리텔링 구성에는 적지않은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수잔이 직접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합니다. 그런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한데 모여 이처럼 아름다운 책을 지어낸 것이었네요.

   최근에 본 여러 책들 가운데에 밑줄 그은 부분이 가장 많은 책이 바로 이 책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였습니다. “책은 눈이 아니라 손으로 읽어야 한다”는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처럼 모두 연필 한 자루씩 들고 읽어야 할 좋은 책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9월 30일 아침에 1,253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