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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삶의 무게가 힘겨울 때면 찾아가 쉬고 오는 참 좋은 느티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0. 10. 18:00

[나무편지] 삶의 무게가 힘겨울 때면 찾아가 쉬고 오는 참 좋은 느티나무

  ★ 1,254번째 《나무편지》 ★

   찾아볼 나무가 많아 머뭇거림 없이 ‘나무 답사 1번지’라고 이야기하는 충북 괴산에 다녀왔습니다. 괴산은 이른 봄부터 한겨울까지 사철 내내 찾아볼 큰 나무가 참 많습니다. 문화재(아, 참! 이제는 ‘자연유산’이라고 불러야 하겠습니다만)로 지정한 나무는 물론이고,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를 비롯해 길을 가다 저절로 만나게 되는 그냥 그저 그런 나무들까지도 하나하나가 정겹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한 고장입니다. 물론 개인적 경험에 따른 주관적 생각이겠지만, 괴산은 그 이름에서부터 나무를 답사하는 데에 첫손에 꼽을 만한 곳이입니다. 괴산을 찾게 되면 언제나 제일 먼저 찾게 되는 나무가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입니다. 역시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우리의 모든 느티나무 가운데에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느티나무입니다.

   새로 펴낼 책(아마도 내년 봄 새싹 트기 전에 출간될 예정)에 쓴 글에서 당산나무를 우리 민중문화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 글에 당산나무를 흔히 정자나무와 동일하게 여긴 것도 마을의 큰 나무 한 그루가 마을 민중 문화의 중심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썼습니다. 정자나무는 말 그대로 정자(亭子)입니다. 마을 사람 누구라도 또 언제라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천연의 정자였던 거죠. 마을 어귀라든가 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큰 나무는 넓은 그늘을 이뤄 마을에서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고, 마을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자나무 가운데에 가장 많은 나무 종류는 단연 느티나무입니다. 꽤 오래 전인 2012년에 펴낸 책 《나무가 말하였네 2 - 나무에게 길을 묻다》에서 느티나무 그늘을 예찬한 적이 있습니다.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는 5백만 장의 잎이 달린다. 벌레에게 양분을 나눠주고 구멍난 잎, 덜 자란 앙증맞은 이파리, 통통하게 물 오른 잎사귀. 제가끔 서로 다른 잎이 겹겹이 쌓이고 엉키며 그늘을 지어낸다. 살아 움직이는 그늘이다. 농담(濃淡)과 심천(深淺)이 있는 흰 그늘이다. 가장 밝은 어둠에서 가장 어두운 밝음까지, 빛의 흐름이 춤춘다. 부는 바람 따라 5백만 장의 잎이 살랑이며 짙은 그늘을 지었다가, 이내 흩어지며 옅은 그림자를 짓는다. 움직이는 빛을 품은 그림자다. 다른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생명체의 너그러움이 싱그럽다. 가늣하게 스치는 산들바람 따라 새 소리 스며든다. 하루 노동에 지친 사람도 들어선다. 나무 그늘은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의 쉼터다. 언제나 부딪히는 사람의 마음도 잦아드는 안식처다.”

   길게 인용한 위의 글은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1886 ~ 1965)가 그의 아름다운 에세이집 《음예공간예찬》에서 예찬한 ‘음예(陰?)’ 개념에 대응하여 ‘흰 그늘, 검은 그늘’ 그리고 ‘살아있는 그늘’이라는 개념으로 느티나무 그늘을 예찬한 글이었습니다. 우리말 가운데에 다니자키가 예찬한 ‘음예’에 가장 가까운 건 ‘그늘’이 되겠지만, 정확히 하자면 우리 말로 번역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음예는 그늘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집안의 그늘에서도 햇살이 비치는 창문 가까운 자리에 드는 그늘과 방 안쪽 깊숙한 곳의 그늘은 그 깊이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 현상을 다니자키는 이 작은 책에서 일본인들이 즐기는 미소 된장국을 흰 바탕의 그릇이 아니라 어두운 검은 색 바탕의 그릇에 먹는 상황에 비교하며 그늘도 그 스펙트럼이 크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공간을 즐기는 깊은 멋이 있는 그의 글을 보던 중에 느티나무 그늘이 떠올랐습니다. 느티나무 그늘은 5백 만 장의 잎과 나뭇가지와 나무줄기가 어울리며 지어내는 그늘입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는 잠시도 멈춰 있는 법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잠시도 멈춰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지요. 그 움직임을 통해 여러 장의 느티나무 잎과 나뭇가지가 겹치며 짙은 그늘을 지어내기도 하고, 겹쳤던 잎들이 나뭇가지에 떨어지면서 옅은 그늘을 짓습니다. 때로는 나뭇가지 끝에 새로 돋아난 난 작은 잎 한 장에 의해 ‘그늘 아닌 듯한 그늘’이 드리워지기도 합니다. 그 모든 그늘은 잠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느티나무가 살아있는 생명체인 까닭입니다. 느티나무 그늘을 ‘살아 움직이는 그늘’이라고 이야기하게 된 겁니다. 살아 움직이면서 다니자키가 이야기한 것처럼 깊은 그늘과 옅은 그늘을 수시로 바꾸어냅니다. 흰 그늘 검은 그늘이 수시로 옮겨다니는 느티나무 그늘은 ‘살아 움직이는 그늘’입니다.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는 아예 나무 이름을 ‘정자’라고 한 나무입니다.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모여있어서 삼(三), 정자를 이룬 나무가 느티나무여서 괴(槐), 그래서 ‘삼괴정(三槐亭)’이라고 부르는 느티나무입니다. 우리의 거의 모든 정자 이름처럼 세 글자를 이용해 ‘삼괴정’이라 했습니다. 나무 곁으로 이어지는 마을은 우령마을입니다. 이 자리에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이룬 건 800년 전입니다. 그때 마을을 세운 옛 사람들은 마을 살림채들 곁으로 흐르는 개울가에 나무를 심었다고 전합니다. 평화로운 살림살이가 이뤄지는 마을을 가리키는 표지도 되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정자도 되는 느티나무였습니다. 마을의 살림집들이 이어지는 초입에 나무를 심어 키운 건 느티나무가 크게 자라서 마을에 찾아들 지도 모를 잡귀 잡신을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겠지요. 세 그루 나무 가운데 아래쪽에 서있는 나무를 하괴목(下槐木), 중간의 나무를 상괴목(上槐木)이라고 부릅니다. 상괴목과 하괴목의 건너편 언덕 위에 이 두 그루와 함께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룰 만한 자리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더 있지만, 이 나무는 다른 두 그루에 비해 규모가 작아 별다른 이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삼괴정이라는 특별한 이름의 정자를 이룬 세 그루 느티나무 가운데 하괴목은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 전날 밤에 당산제를 지내온 당산나무입니다. 하괴목 당산제는 여태껏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하괴목은 나무높이 19미터, 가슴높이줄기둘레 9.4미터에 이르는 큰 나무인데, 오래 전에 굵은 줄기가 부러져 외과수술로 메웠습니다. 이번에 찾아보니, 이 외과수술 부위를 새로 고쳤는데, 나무의 건강에 좋은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바라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편입니다. 세 그루의 나무 가운데 가장 수려한 몸집을 보여주는 건 단연 상괴목입니다. 앞에서 우리나라의 느티나무 가운데에 최고의 느티나무라고 한 건 바로 이 상괴목입니다. 느티나무의 전형적인 생김새를 지닌 상괴목은 나무높이가 25미터나 되고, 가슴높이줄기둘레도 8미터나 됩니다. 줄기는 땅에서부터 곧게 올라왔고, 적당히 올라온 부분에서부터는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펼치면서 커다란 버섯 모양으로 잘 자랐습니다.

   요즘은 좀 뜸했습니다만, 한때는 삶의 무게가 견디기 어려워질 때면 이 나무, 삼괴정을 찾아와 상괴목 느티나무의 그늘에 들어 하염없이 머무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상괴목 그늘 한쪽으로 돌로 쌓아둔 축대가 이어지거든요. 그 축대의 서너번째 바위 위 초록 이끼가 소복히 덮인 자리가 그렇게 한참 앉아있던 자리였어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촘촘히 돋아난 나뭇잎들이 지어내는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의 검은 그늘 흰 그늘 아래에서만큼은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서 살아 춤추는 나무 그늘을 바라보고, 또 나무 줄기 깊숙이 담긴 세월의 무게를 바라보다가 땅거미가 뉘엿뉘엿 다가올 즈음에 주섬주섬 일어나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게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 느티나무는 줄기에서부터 나뭇가지 끝까지 곳곳이 익숙합니다. 어쩌면 눈 감고도 그려지는 그런 나무입니다.

   비교적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만, 나무는 여전했습니다. 물론 이 나무에게도 숱하게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요. 살아있는 생명이니까요. 내게는 더없이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나무줄기에서 나뭇가지까지 그때와는 다를 겁니다. 어떤 나뭇가지는 하늘 향해 더 뻗어올랐을 것이고, 더러는 비바람 눈보라 맞으며 부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무는 크고 작은 세월의 흔적을 의뭉스럽게 감추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의연히 서 있는 나무가 그래서 더 좋습니다. 8백 년을 살아온 큰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건 그래서일 겁니다. 나무가 말 없이 버텨온 세월의 무게 앞에서 온갖 허튼 소리로 이어가는 사람의 세월이 가지는 무게가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은 겁니다.

   언제나처럼 나무에서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나무 앞 마당에는 작은 변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상괴목 그늘에 그네를 큼지막하게 설치했는데, 이는 ‘우령행복마을 2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전통그네를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 그늘 안쪽이어서, 혹시라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다면 나무 뿌리 부분의 답압이 걱정되는 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어서 아직은 걱정되는 상황은 아니고, 풍광을 그리 해치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잘 살피기는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잘 지켜온 나무이니, 앞으로도 잘 지켜내리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들에 대해서 설명을 붙여야 하겠네요. 맨 위의 사진(1)은 상괴목과 하괴목을 한꺼번에 담은 사진으로 왼쪽 나무가 상괴목, 오른쪽 나무가 하괴목입니다. 둘째부터 다섯째까지 넉 장의 사진(2)(3)(4)(5)이 상괴목이고, 그 다음 여섯째부터 여덟째까지 석 장(6)(7)(8)이 하괴목입니다. 그 다음 아홉째 열째의 두 장(9)(10)은 따로 이름을 갖지 않은 또 하나의 느티나무이며, 맨 끝 사진(11)은 상괴목과 이름없는 느티나무를 함께 담은 사진으로 오른쪽이 상괴목이고 왼쪽이 이름을 갖지 않은 느티나무입니다.

   오늘의 《나무편지》도 보기 힘드실 만큼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다음 《나무편지》는 정말정말 짧고 간단하게 적으려 마음먹으며(마음 먹은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10월 7일 아침에 1,254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