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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상〉후보인 인도 작가가 짚어본 기후위기의 본질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26. 15:32

[나무편지] 〈박경리문학상〉후보인 인도 작가가 짚어본 기후위기의 본질

  ★ 1,252번째 《나무편지》 ★

   엊그제 《나무편지》에서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주중에 《나무편지》 한번 더 올립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특별한 책 《육두구의 저주》 이야기입니다. 나무 이야기를 기다리시는 분들께는 번거롭게 해 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무를 이야기하면서 ‘기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 번거로워 마시고 편안히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지난 주 추석 연휴를 보내시면서 ‘날씨’ 이야기를 하지 않은 분이 없으실 듯도 한 계제이니, 맞춤한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갈수록 붕괴 일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무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기후 상황에 대한 관심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소개한 《대혼란의 시대》 《육두구의 저주》를 쓴 사람은 인류학자이며 소설가인 인도의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 1956 ~ )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고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렸는데, 눈에 띄는 소식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권위 있는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박경리문학상〉의 2024년 수상자로 아미타브 고시가 강력한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입니다. 최종 선정 소식은 9월 말에서 10월 초에 발표된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문학상의 후보로 오른 다른 작가들에 비해 아미타브 고시의 수상을 기대합니다. 상을 받는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그의 작품이 더 널리 읽힐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입니다. 그런 뜻에서라면 10월 초에 발표할 노벨문학상에 대해서도 같은 기대를 걸어 봅니다. ‘평가’의 의미가 아니라, ‘기대’의 의미에서입니다.

   아미타브 고시는 문제작 《대혼란의 시대》로부터 5년 뒤인 2021년에 드디어 《육두구의 저주》를 펴내면서 기후 위기에 대한 그의 입장을 보다 구체화했습니다. 코비드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얼어붙은 시기였습니다. 고시의 노모도 돌아가신 것도 이 책을 집필하던 중입니다. 이 책은 첫 문장, 첫 단락부터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소설가로서,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풀어헤쳤던 경험이 그렇게 한 거겠지요. 1621년에 펼쳐진 인도네시아 반다제도에서의 대학살 사건, 이른바 제노사이드(인종말살)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건은 육두구(이게 서구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향신료인 모양인데, 우리에게는 좀 생경하지 싶네요)를 독점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만행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구 환경의 위기가 초래되는 근본 원인이 담겨있으며, 이는 지금의 지구 생태 위기, 기후 위기를 살펴볼 근거가 된다는 해석입니다.

   반다제도에서의 대학살 사건은 1621년 4월 21일 밤, ‘송크’라는 이름의 동인도회사의 네덜란드 관리의 침실 램프가 바닥에 떨어진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고시는 이야기합니다. 그때 램프가 바닥에 떨어진 것 외에는 확실히 밝혀진 이야기는 여태까지 하나도 없습니다. 고시는 이 책에서 그 밝혀지지 않은, 그러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서구와 비서구의 불균형 발전의 근원이 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일컬을 수 있는 반다 대학살의 진상을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풀어나가는 겁니다. 소설가의 상상력에 의해 이 사건의 내막의 상당 부분이 밝혀지지 싶은 기대감이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합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이 그렇지요. 그러나 문서 기록으로 남겨진 게 없어서, 더 이상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건의 흐름 속에 담긴 본질을 살펴볼 수 있을 뿐입니다.

   송크의 침실에 램프가 떨어진 갑작스런 상황을 현지인들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침략에 대한 반격으로 여기고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 송크와 그 일당은 무차별 사격을 퍼붓습니다. 칠흑같은 밤이어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누구도 제대로 겨냥하지 않은 그야말로 터무니없을 정도의 광적인 사격이었습니다. ‘반다 대학살’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순간부터 10주 사이에 “자부심 넘치고 진취적인 무역공동체였던” 반다족은 종말을 고합니다. 서구 침략자들에 의해 자행된 제노사이드는 그렇게 ‘완성’됩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육두구 생산지였던 반다 제도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네덜란드 사람들이 저지른 만행을 고시는 여러 자료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을 싸그리 불살라라”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결의안을 비롯해 “반다인을 모조리 �i아내는 게 최선”이라는 총독의 이야기, 그리고 동인도회사에서 현지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온갖 잔혹한 고문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폭로합니다.

   반다 대학살은 지금 우리 지구가 맞고 있는 기후 위기의 본질의 바탕에 들어있는 서구인들의 침략 본능을 폭로하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고시는 향신료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 ~ 1506)의 항해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고시는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한 경쟁은 “그 시대의 우주 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다”고 이야기하며 향신료를 얻기 위한 서구인들의 경쟁 과정과 그 안에 담겨진 현지 침략 과정을 진지하게 짚어냅니다. 그리고 현지 침략 과정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근대성’ 개념에 숨겨진 폭력성과 침략성을 거침없이 폭로합니다. 이 과정이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건, ‘역사적 방법론’이라는 게 언어 문자문화 저술에 의존한다는 데에 있다고 고시는 지적합니다. 즉 언어가 없거나 혹은 침략자에 의해 언어가 말살된 부족의 역사는 ‘역사적 방법론’에 의해 서술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서구의 비서구에 대한 침략 과정에 대한 비판에 고시는 가차없습니다.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를 이끌어간 바탕인 아담 스미스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데카르트 베이컨 맨더빌은 물론이고, 심지어 셰익스피어조차도 고시의 서구 문명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나무 이야기를 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에 붙인 제네럴 테쿰셔 셔먼 장군에 대한 비판은 물론입니다. 서구인들은 식민지 침략 과정에서 인간 외의 모든 존재를 ‘무언의 자원’ 즉 말 없는 자원으로 보았고, 그래서 그것들은 늘 약탈의 대상일 뿐이었다는 거죠. 그 생각은 식민지 원주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고시의 생각입니다. 결국 제노사이드로 결과지어지는 식민지 부족에 대한 대학살과 침략을 정당화하며 침략 전쟁을 이어갔다는 겁니다. 이같은 침략 과정은 결국 ‘테라포밍’으로 이어집니다. ‘테라포밍’은 지역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됩니다.

   테라포밍은 결국 지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풍경은 살아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원주민들 사이에 부단히 전승되어온 생각이지만, 서구인의 테라포밍은 그 지역을 자원 약탈 대상지로 바꾸어놓습니다. 테라포밍은 마침내 지구 전체의 대기를 망가뜨리게 됐다는 게 고시의 분석입니다. 테라포밍이 가장 집중적으로 구현되고 가장 크게 성공한 곳이 바로 북아메리카 지역이었음을 고시는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고시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을 타개할 대안으로 서구인들의 피해가 가장 극심하게 나타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각을 끄집어냅니다. 그는 먼저 아메리카 야노마미 부족의 샤먼인 다비 코페나와(Davi Kopenawa, 1956 ~ )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코페나와가 이야기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존재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인식을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는 겁니다. 코페나와의 책 《추락하는 하늘》은 한글로 번역된 것이 없는데, 최근에 출판된 《세상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에서 그 책의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침 다비 코페나와의 책을 바탕으로 해서 제작한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 《추락하는 하늘(The Falling Sky)》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내일인 9월26일부터 열리는 〈제16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이 영화가 출풉돼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경기도 고양시의 메가박스킨텍스에서 9월29일과 10월1일에 상영한다고 합니다.

   특별한 책 《육두구의 저주》을 이야기한 오늘의 《나무편지》도 무척 길어졌습니다. 그래봤자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다 소개하기에 《나무편지》의 분량은 모자라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기후 위기에 대한 거의 모든 저술이 서구인, 그것도 주로 미국인의 관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비서구인의 관점에서 기후 위기의 본질을 짚어본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아미타브 고시의 책은 정말 특별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왕에 책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중이니, 다음 《나무편지》에서도 책 이야기, 더 이어갈까 합니다. 다음에 소개할 책은 그래도 ‘나무 이야기’입니다. 기대해 주셔도 좋을,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9월 25일 아침에 1,252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