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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입추 처서 다 지나고 백로 앞에서도 시들지 않는 장한 생명력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8. 26. 15:54

[나무편지] 입추 처서 다 지나고 백로 앞에서도 시들지 않는 장한 생명력

  ★ 1,247번째 《나무편지》 ★

   여름. 참 긴 여름입니다. 입추 처서 다 지나고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여름입니다. 다음으로 찾아올 절기는 ‘백로(白露)’네요. 곧 달력도 한 장 넘어가기도 하겠고요. 긴 세월 동안 계절의 흐름을 아주 정확하게 일러주던 절기였지만, 이제 절기를 어떤 표지로 여길 만한 시대는 아니라고 봐야 하지 싶습니다. 올 가을 단풍은 어떤 모양으로 찾아지 궁금합니다. ‘초록 낙엽’이 유난했던 지난 해 가을이 떠오릅니다. 단풍 빛깔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당연히 날씨의 흐름인 걸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서네요.

   팔월 초에 준비해놓고 아직 전해드리지 못한 나무 이야기가 ‘무궁화’였습니다. ‘무궁화의 날’인 8월 8일 앞뒤에 전해드리면 알맞춤하겠다 싶어서, 우리 수목원의 무궁화원에서 갖가지 무궁화들을 찾아보고 사진으로 준비했는데, 그 사이에 전해드려야 할 식물이 많았습니다. 7백 년 세월의 무게를 거뜬히 이겨내고 꽃 피운 함안연꽃테마파크의 아라홍련도 그랬고, 밤에만 피어나 열대지방 습지의 원시 생명 이야기를 노래하는 빅토리아수련도 그랬습니다. 한창 무궁화 꽃이 아름답던 때를 놓쳐서 좀 늦었지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팔월 달력이 뜯기기 전에라도 무궁한 생명력으로 아직 꽃 피고 지는 무궁화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하나하나 짚어보기 시작하면 세상의 모든 식물들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 무궁화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나무도 없습니다. 특히 우리의 사람살이와 이어지는 무궁화 이야기는 여느 나무를 훨씬 넘을 겁니다. 만일 ‘나무와 문화’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만한 나무를 찾으려면 필경 무궁화가 첫 손에 꼽힐 겁니다. 제가 에전에 써낸 책 가운데 《천리포수목원의 사계》라는 두툼한 분량의 책이 있습니다. 두 권으로 나눠 펴낸 그 책의 ‘봄여름편’에 담은 무궁화 이야기는 무려 24쪽이나 이어졌습니다.

   《나무편지》에 다 담을 수 없는 무궁화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만 전해드리는 걸로 하는 수밖에요. 짧게 전해드려야 하는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무궁화 꽃이 얼마나 예쁜 꽃이고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지내온 꽃인지를 말씀드립니다. 아름다움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고, 사람과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궁화 꽃은 자세히 보면 정말 예쁜 꽃입니다. 무궁화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이라는 걸 알아 두셔야 하겠지요. 무궁화는 적어도 점심 전에 찾아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정오 쯤 지나면 서서히 꽃잎을 다물기 시작해서 그 싱그러움을 느끼기 어려워집니다.

   ‘나라 꽃’이라는 까닭에 오히려 선입견이 앞서고, 그래서 더 자세히 더 오래 바라보는 일에서 멀어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얄궂게도 무궁화를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나라꽃 국화(國花)로 지정한 적은 없습니다. 나라꽃으로 지정한 근거는 없습니다. 심지어 흰 색에서 보라색까지 빛깔도 다양하고 꽃송이 안쪽에 붉은 단심이 있는 종류와 없는 종류처럼 생김새도 여러 가지인데, 이 가운데 어떤 걸 우리의 국화라고 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만일 ‘나라 꽃 그리기’ 대회를 연다면 거기에 ‘정답’이 될 기준이 없습니다.

   꽃잎이 온통 하얀 색이어도, 꽃 송이 가운데에 붉은 단심(丹心)이 없어도 그걸 맞았다고도 틀렸다고도 할 근거는 없습니다. 어쩌면 사람들마다 제가끔 떠올리는 무궁화의 이미지는 있을 겁니다. 그 무궁화의 이미지는 분명히 다양할 겁니다. 옛날에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에 꼭 보여주던 ‘애국가’ 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은 아마도 그 영상에 반드시 포함되던 보랏빛 꽃잎에 가운데에 자줏빛 단심이 들어있는 꽃을 떠올릴 게 뻔합니다. 그러나 제 작업실 곁의 초등학교 학교 담벼락에 새겨놓은 아이들의 그림에 등장하는 무궁화는 단심이 없는 하얀 꽃입니다. 그 학교 담장 곁으로 줄지어 심어 키우는 무궁화가 그 종류이거든요.

   국화와 관련한 법은 둘째 치고라도 뭔가 기준은 있어야 하지 싶습니다. 법으로 지정한 적은 없지만 무궁화는 분명한 우리의 나라꽃입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요즘은 다양한 무궁화 품종을 선발해 우리 문화의 주요한 키워드를 품종명으로 붙인 종류가 적지 않습니다. ‘제주’ ‘서울’ ‘안동’ ‘남원’ 처럼 지역 이름도 있고, ‘춘향’ ‘사임당’ ‘아사달’ ‘아사녀’ ‘처용’ ‘고주몽’ ‘선덕’ ‘원술랑’ ‘아랑’처럼 전설과 역사 속 인물 이름을 붙인 것도 있습니다. 또 ‘산처녀’ ‘첫사랑’ ‘한사랑’ ‘옥토끼’ ‘파랑새’ ‘평화’ ‘통일’ ‘배달’처럼 우리 문화의 키워드도 무궁화 품종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아! 시인 김소월을 떠올리게 하는 ‘소월’도 있습니다. 모두가 우리 문화의 상징입니다.

   무궁화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정치적 이유로 나무를 탄압한 예는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벌인 무궁화 탄압이 유일할 겁니다. 일제 참략자들은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면서 무궁화를 탄압했습니다. 사실 조선의 왕실을 상징하는 꽃은 이화(李花), 즉 자두나무꽃이었습니다. 침략자들은 눈에 핏발이 선다고 하여 ‘눈에피꽃’이라느니,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기는 ‘부스럼꽃’이라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별명을 붙이면서 무궁화를 폄하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화를 짓밟으려 했던 그들의 비루한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일제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저절로 자라거나 혹은 학교에서 정성껏 심어 키우는 무궁화들을 뽑아 없애고 불을 지르기까지 하면서 무궁화를 아예 없애려 했습니다. 그런다고 나무가 금세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같은 어이없는 탄압은 거꾸로 더 큰 연민과 애정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죄 없는 무궁화를 탄압하는 침략자들의 간악함을 확인하면 할수록 무궁화에 대한 애정은 커졌고, 마침내 무궁화야말로 민족의 문화를 상징하는 ‘우리 꽃’이라는 생각을 차음 굳혀온 것입나. 탄압과 애정이 교차하는 굴곡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무궁화는 우리 땅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자연스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라꽃’이 된 겁니다.

   무궁화 이야기는 많이 남았습니다만, 이제 마무리해야 할 자리입니다. 나무 이야기를 온전히 전해드리기에 《나무편지》는 언제나 너무 짧지 싶습니다. 어차피 《나무편지》는 나무 이야기로 안부 나누는 말 그대로의 《편지》일 뿐, 밑줄 그어가며 천천히 읽어야 하는 《식물 교과서》는 아니니까요.

   고맙습니다.

2024년 8월 26일 아침에 1,247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