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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마을 모든 생명의 유일한 젖줄인 우물을 지켜온 큰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7. 15. 17:46

[나무편지]

마을 모든 생명의 유일한 젖줄인 우물을 지켜온 큰 나무

  ★ 1,241번째 《나무편지》 ★

   회화나무 꽃송이가 길 위에 한가득 내려앉았어요. 이맘 때의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풍경이겠죠. 꽃 피고 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건만 새로 피어난 꽃을 바라볼 때와 달리 길 위에 시들어 떨어진 꽃을 바라볼 때의 느낌은 참 다릅니다. 바라보는 사람 없이 적적히 피었다가 떨어진 꽃송이는 더 그렇습니다. 본성에 따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람들의 비질에 씻겨 청소차에 실려 추방되어야 하는 쓰레기 신세인 걸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나뭇가지에 열매 맺힐 흔적만큼은 남겨놓았으니, 떨어진 회화나무 꽃으로서야 할 일 다 하고 떨어진 셈이겠지요.

   수북이 쌓인 사진첩에서 그 동안 만났던 회화나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가까이는 지난 봄에 신문 칼럼에 소개했던 〈당진 삼월리 회화나무〉가 있고, 이른 봄의 《나무편지》에 담았던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도 있습니다. 사진첩의 사진들에는 오래된 선비의 고택 앞마당에서 훤칠하게 솟아오른 커다란 회화나무도 있고, 도시의 살림집들 사이에 찌들린 채 서 있는 회화나무도 있으며, 마을 살림집들 사이로 난 조붓한 골목 끝의 언덕 위에서 마을의 랜드마크처럼 서 있는 나무도 있습니다.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누각 앞마당, 선비의 마을을 상징하듯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회화나무도 있습니다.

   그 동안 만났던 회화나무를 되짚어 보며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나무 곁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홀로 떠올렸던 사람들까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오래 기억하게 되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입니다. 그 가운데 한 그루를 뽑아내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립니다.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입니다. 보호수 목록에 기록된 나무의 지번주소를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찾아갔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 주소지에 해당하는 구역이 무척 넓은 데다 비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곳이어서였습니다. 진작에 마을 어귀의 공터에 자동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야 했지 싶었지요.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자동차를 되돌릴 도리가 없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바로 앞의 축사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 한 분이 나오셔서 내 사정을 듣더니, 친절하게 길 끝에 오두마니 자리한 자신의 집으로 먼저 들어와 쉬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댁 마당에 자동차를 세우고 시원한 냉차까지 한 잔 얻어마시는 동안 그 분은 내가 찾아나선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가 마을의 젖줄이었다는 게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의 모든 식수는 나무 아래에 있는 우물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상수도 시설이 마련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 앞에는 늘 물 긷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자리에서 마을 살림살이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자연히 나무는 마을의 중심이었지요. 물지게를 진 어머니를 따라 나선 조무래기 아이들에게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 앞 우물가는 놀이터이기도 했지요. 조각 얼음이 가득 담긴 냉차를 마시는 동안 집주인인 그 분의 이야기는 풍성하게 이어졌습니다. 물을 길어 물지게에 지고 돌아오다가 물을 다 쏟아뜨린 일에서부터 나무 그늘에서 동무들과 뛰놀다 넘어져 다친 일까지 그 분의 어린 시절은 거의 전부가 나무 그늘에서 이뤄진 겁니다.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마을 끝자락 낮은 동산 중턱입니다. 동산 아래 쪽으로 이어진 아담한 논과 나무 곁의 과수원까지 마을 풍광은 아늑하고 평안합니다. 집주인이 이야기한 우물은 나무 줄기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먹을 수 없게 됐지만, 집주인의 이야기대로 우물은 마을 모든 생명의 젖줄이었습니다. 스무 가구가 채 안되는 마을 끝의 윗마을은 물론이고, 골짜기 아래 대망천이 흐르는 아랫마을까지 먹을 수 있는 물을 구하는 방법은 오로지 이 우물에서였습니다. 해발 400미터의 꺼먼재산에서 장태골 골짜기 땅 속으로 흘러내리며 사람이 먹어도 좋을 만큼 맑고 건강한 물이 되어 나무 아래 우물에 가득 고이면, 사람들은 두레박으로 길어내 물을 마신 겁니다.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이어온 우물을 지킨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는 나무나이 4백20년, 나무높이 15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3미터 쯤 됩니다. 산림청 보호수 기록에는 나무높이를 7미터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아무리 봐도 틀렸습다. 혹시 하고 몇 차례 다시 돌아보았습니다만 7미터의 두 배는 족히 됩니다. 우물 위로 넓게 펼친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의 나뭇가지는 자연스레 우물의 지붕이 됐습니다. 또 우물 곁으로 뻗었을 뿌리도 산에서 내려온 물이 우물에 들기 전에 한번은 꼭 거쳐야 했겠지요. 걸러내고 또 걸러내서 맑은 물만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했습니다.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는 그야말로 우물 지킴이였고, 결국은 마을 생명의 지킴이였던 셈이지요.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대망리에는 이 나무 외에도 오래 되고 커서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가 더 있습니다. 마을 아래 쪽으로 돌아나오면 마주치게 되는 작은 교회 앞에는 커다란 왕버들이 있습니다. 워낙 비좁은 골목 안에 자리잡은 탓에 생육 환경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좁은 골목에서도 나무에게 최대한의 공간을 내어주려고 나무 주변에 경계석을 쌓아 잘 보호하는 상태이지요. 또 골목을 지나면 넓은 논이 나오는데, 그 논 끝자락에도 보호수로 지정한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그리 오래된 나무는 아니지만, 마을 앞논 가장자리에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상징으로 우뚝 서있는 모습이 꽤 근사합니다.

   사람의 보금자리 안과 밖에 서있는 회화나무와 왕버들 노거수는 들녘의 정자나무로, 혹은 골목의 쉼터로, 또 마을 모든 생명의 젖줄로 살아온 오래 보존해야 할 나무들입니다. 사실 더 돌아보면 〈구미 대망리 회화나무〉처럼 이 땅의 사람의 살림살이를 지켜온 나무는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흔적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옛날 사람살이를 지켜준 소중한 기억이 하나 둘 사라진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 엄연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는 것일 뿐이겠지요.

   회화나무 꽃 떨어진 거리를 걸으며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지켜주는 큰 나무들을 더 소중하게 떠올리는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7월 15일 아침에 1,241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