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꽃길 내일은 얼음길, 유라시아 대륙 여섯번 횡단
입력 2024.04.13 00:01
업데이트 2024.04.13 06:3
서산 부석사 벚꽃 찾은 탐험가 김현국
탐험가 김현국씨가 충남 서산시 부석사 운거루에서 벚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김홍준 기자
4월, 환장하겠네.
이렇게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 지속하는 건, 그 꽃 때문이다. 벚꽃. 야하다고 하면 ‘불순하다’는 핀잔을 듣고, 순결하다면 ‘그렇게까지?’라는 반문을 받게 하는 꽃. 게다가 핌이 화려하면서, 짐이 애처롭기도 하니 양면의 ‘마력’을 품은 꽃이다.
벚꽃이 대단할 이즈음에, 수수한 절을 찾았다. 충남 서산시 부석사에는 벚꽃의 고즈넉함이 피어났다. 사찰 관계자가 밝힌 ‘벚꽃 중에도 왕벚나무꽃’이 이번 주말 절정을 고하고 있었다.
“벚꽃은 설렘으로 시작 고요로 들어가”
“벚꽃이 구름처럼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탐험가 김현국(56)씨가 비탈 따라 솟아있는 운거루(雲居樓)에서 벚꽃 속으로 시선을 묻고 있었다. “벚꽃은 온갖 감정을 불러내요. 설렘으로 시작해서 고요로 들어가게 해요. 제 탐험처럼 말입니다.” 봄의 생동을 알리면서 사방연속무늬 같은 꽃들의 운집이 마음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말일 게다. 벚꽃의 여러 꽃말 중 절세미인·매혹·순결 등을 아우른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 김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벚꽃이 지자마자 시베리아로 향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찍고 되돌아왔다. 장장 3만5000㎞의 대장정을 마친 11월 하순, 벚나무가 낙엽을 떨구고 있었다.
김현국 탐험가가 충남 서산 부석사 요사채 앞에서 약수를 뜨고 있다. 김홍준 기자
운거루에서 벗어나 돌계단을 밟았다. 부석사는 도비산(352m) 비탈에 들어섰다. 억지로 비탈을 깎아 세우지 않아, 사찰이 산보다 먼저 생긴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비탈에는 지금 자주광대나물 천지다. 꿩의바람꽃·노루귀 등 봄꽃도 볼 수 있다. 전각 규모는 소란스럽지 않다. 김씨가 “사찰이 참 소박하다”고 말한 이유다.
“유라시아 가상세계 구축 작업도 진행”
지난 겨울 여섯 번째 유라시아 횡단을 마치고 돌아온 김현국 탐험가가 벚꽃 가득한 충남 서산 부석사 앞에서 대장정을 함께 한 차량과 함께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그러더니, 그는 털썩 캐스퍼 보닛 위에 올라 세상 편하게 웃었다. 사찰을 찾아 벚꽃 그늘에서 하늘을 찾으려던 여행객들이 뭔 일인가 싶어 쳐다봤다.
사실, 서산 부석사는 데이터상의 벚꽃 명소에 들어가지 않는다.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에이닷이 ‘혼잡도’로 분석한 벚꽃 명소는 석촌호수·수원화성·윤중로가 2022년과 지난해 1~3위를 지켰다. 경복궁과 일산호수공원·양재천 등에도 사람이 몰린다. 부석사 벚꽃은 번잡에서 저만치 벗어난 고요로 안내한다. 명소의 벚꽃은 끝물이지만, 부석사 벚꽃은 산 중턱이라 늦게 피어 지금이 절정이다. 게다가 곧 겹벚꽃도 핀다. 벚꽃 시즌1과 시즌2가 중간 광고시간 없이 연속 방영하는 것. “겹벚꽃 피는 다음 주에 또 여행 오셔야겠네.” 부석사 다원보살 노미숙(60)씨의 말에 김현국 탐험가는 “겹경사가 따로 없겠군요”라는 말로 답했다.
김현국 탐험가가 오토바이와 경차를 이용해 유라시아 횡단을 할 때의 모습. [사진 김현국]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김씨는 ‘오늘’ 꽃길을 걷고 있지만, 그는 ‘내일’ 다시 동토 시베리아의 길을 달릴 것이다. 오늘은 일주문 앞 왕벚나무꽃이 활짝 피어 있지만, 내일은 일주문 뒤 겹벚꽃이 터질 것이다.
사물(四物·범종과 법고·운판·목어)이 있는 부석사 금종각(金鐘閣) 뒤편에도 벚꽃 흐드러졌다. 사찰을 벗어나고서야 품고 있던 속된 생각을, 박제영 시인의 말글을 빌려 뱉어냈다. 환장할! 봄은 얼마나 야한가.
김현국 탐험가의 작은 캐스퍼가 야하면서도 순결한 벚꽃 속으로 사라졌다.
충남 서산시 부석사에는 왕벚꽃이 지기가 무섭게 겹벚꽃이 핀다. 사진=부석사랑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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