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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탈출해 보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4. 1. 15:12

언어의 감옥에서 탈출해 보자

중앙일보

입력 2024.04.01 00:57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옛날에는 암에 걸렸다고 하면 사형선고로 받아들였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암 진단을 받은 후에는 몇 개월이나 더 살 수 있는지나 생각했지 완치된다는 것은 바랄 수 없었다. 요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 종합병원 암 병동에 가도 멀쩡해 보이는 환자들이 대다수다. 이것은 근래에 여러 가지 암 치료법이 눈부시게 발달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병이 커지기 전에 일찍 발견하여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철저히 검사해서 잡아내는 예방의학의 쾌거다.

암이라고 다 똑같지 않아

그런데 이렇게 암을 조기 진단하여 잡는 데 뜻밖의 폐단이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진단만 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진단이 나온 후 거기에 적합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암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특히 유방암 같은 경우 암세포가 몸에 있어도 종양이 커지지도 않고 아무 증상이 없이 오랜 기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암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술을 하거나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를 할 경우 얻는 것은 없이 도리어 환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언어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들
‘암’이란 말 자체로 공포심 느껴
양자역학에 ‘입자’는 없어
상황 따라 언어도 바뀌어야

                                                                                               과학하는 마음

 

미국의 저명한 유방암 전문가 로라 에서만과 전립선암 전문가 스콧 에그너는 작년에 뉴욕타임스에 공동으로 기고한 칼럼에서, 무차별한 ‘암’이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암이라는 단어는 죽을 병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암은 그냥 둘 수 없고 꼭 근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나온 통계를 보면 전립선암과 유방암 진단을 받는 경우 20~25%가량이 거의 위험하지 않고 전이 가능성도 작은 케이스라고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 수술이나 다른 치료를 받으며,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과 위험은 명백하다. 의사도 환자도 가족들도 모두 암이라는 말에 따라다니는 강박관념 때문에 과잉 치료를 선택하게 된다. 암이라 하는데 어떻게 그냥 방치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치료해서 무사할 경우에는 사실 그냥 두어도 괜찮았을 경우라도 치료해서 나았다고들 현대의학에 감사한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에서만과 에그너는 위험을 주지 않는 종류의 암세포가 생겨 있는 상태는 ‘암’이라 부르지 말자고 제안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암을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 위험하고 어떤 상황이 위험하지 않은지를 잘 파악할 수 있는 병리학적, 유전학적 지식을 더 발전시켜서 환자 개인의 상황에 적합한 대응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맞춤형 의학(personalized medicine)을 향해 나아가자는 주장이 된다.

소립자는 정의된 모양 없어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익숙한 용어를 사용할 때 거기에 딸려있는 고정 관념을 그대로 가져올 위험이 있다.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과학 용어를 봐도 그렇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들이 노상 사용하는 ‘입자’(粒子)라는 단어를 보자. 영어로는 ‘particle’인데 그 말에는 조그맣고 단단한 알갱이라는 함의가 있고, 그래서 한문의 낟알 립(粒)자를 써서 번역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에서부터 17~19세기 물리학의 고전역학까지 모든 이론은 그러한 입자를 다루었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물질의 기본적 구성물들은 그런 알갱이가 아니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자와 같은 소립자는 날카롭게 정의된 모양이 없을 뿐 아니라 운동량과 위치도 동시에 정확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정설이다. ‘입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곡식 알갱이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이런 신비한 양자역학적 존재들을 언급할 때 계속 ‘입자’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때 그 의미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조차도 입자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히 고전적인 알갱이의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생물학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리학과 생물학 연구를 하다가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대가가 된 켈러(Evelyn Fox Keller)는 ‘유전자’(gene)라는 말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단어에는 아주 옛날부터 내려온 결정론적이고 환원론적인 유전학 이론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켈러는 그러한 유전자 개념이 20세기를 풍미하였지만 21세기 유전학에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생체의 모든 것은 DNA 구조로부터 환경적 요소와 상관없이 단순하게 결정된다는 환상을 버려야 생물학이 더 수준 높게 발전할 수 있으며,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나 ‘유전’이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서유럽의 우익은 보수와 거리 멀어

정치적인 맥락에서도 언어의 잘못된 사용은 우리의 사고를 오도하며 판단을 흐리게 한다. 예를 들어 우익은 보수이고 좌익은 진보라고들 생각하는데, 사실 근래 서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 퍼지고 있는 우익세력들을 보수라고 칭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들은 전통적 정치 체제를 보존하자는 것이 아니라 파괴해 버리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파라고 해서 보수라 부르면 무언가를 보존하고 지킨다는 ‘보수’의 진정한 의미는 증발해 버린다.

언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말 한마디마다 숨겨진 고정관념이 따라다닌다. 생각 없이 쓰는 언어는 참되고 유연한 생각을 막는 감옥이 될 수 있다. 거기에서 필요할 때마다 탈출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적 태도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