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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호소…중처법 강화, 일할 기회 없어질 수 있어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22. 15:50

일용직 노동자 호소…중처법 강화, 일할 기회 없어질 수 있어요

중앙일보

입력 2024.03.20 00:05

 
이두수작가, 건설노동자

앞보다는 뒷모습이 그이 본 모습일지 모른다. 겉모습에 너무 휘둘리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우리 반장처럼... 그림=이두수

4.10 총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를 정치의 꽃이라 하기도 하고 민주주의 축제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광고 카피에 불과한 것 같다. 각 당의 공천 갈등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가 정말 민주화되긴 한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언제나 국민이 답이다’ ‘국민이 옳다’라며 국민을 주인으로 추켜세우지만, 정말 그럴까.

금리 인상과 부동산 불경기로 올해만 건설업체가 844곳이나 폐업 신고를 했다고 한다. 수많은 관련 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고 여기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릴까. 반도체 생산 주도권도 주변국에 빼앗기고, 제조업은 장기 불황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 이슈에는 어디에도 국가의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도 많이 바뀌었다. 소비에 있어서도 기능이나 성능을 중시하는 기술 우선 시대에서 디자인이 더 중시되고 있고, 요즘엔 이미지에 따른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기호가치’가 더 중시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사회는 팩트보다는 이미지만 넘쳐나는 시대, 즉 시뮬라시옹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현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하이퍼리얼리티(시뮬라크르)에 포위되어버린 현대사회의 존재론적 조건에 직면해 있다.

겉만 번지르르해지는 세상이다. 이미 걸프전 이후 전쟁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의 전쟁의 실상은 더 참혹해지겠지만 화면에 보이는 모습은 불꽃놀이처럼 예쁘게 보일 것이다. 정치나 노동의 현실은 녹록지 않음에도 내용은 무시되거나 가려지고 겉 표면만 아름다운 말로 예쁘게 치장될 것이다.

영남 지역 50여개 경제단체가 지난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그럴싸한 이름만 떠돌지 알맹이가 없다. 겉모습에만 치중하지 본질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일용직이라는 말을 한자어로 쓰면 괜찮은 말로 들리지만 한국말로 하면 ‘날품팔이’라는 뜻이다. 건설노동자는 어느 한 기업에 소속된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일하고 일당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말 그대로 그 때 그때 노동력만 제공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받을 뿐이다. 실제 대한민국의 160만 건설노동자는 모두 날품팔이 노동자다.

노동력의 유연성이란 아름다운 말 속에는 노동의 가치가 들어 있지 않다. 근로자의 사기 진작과 노동 전문화를 위해서는 고용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일용직은 노동력의 유연성이 용이하지만 전문성은 기대할 수 없다. 통상 아파트 건설에서 청소와 할석을 직영으로 운영하는데 완공까지는 1년 반 정도 업무를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1년이 되기 전 회사에선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1년이 되기 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아주 기분 나쁜 일이며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전문가 양성 측면에서 봐도 좋은 제도는 아니다. 피고용자를 회사의 자산으로 여기고 전문가로 양성하려는 노력 없으면 제품의 질은 떨어지고 사고는 더 늘어난다.

생각해보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는 의사지만, 사람이 사는 건축물을 다루는 전문가는 건설노동자다.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 육체라면, 인간이 깃들어 사는 곳이 건축물이다. 이렇게 보면 건설노동자의 입장을 그렇게 허투루 볼 상황은 아니다.

현장의 안전 의식 고양이 중요
사측, 노동자를 자산으로 여겨야
해외인력 수입, 국가적 전략 필요

지난달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 시행할지 유예해야 할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이미 중대형 건설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지만 건설현장에서의 안전사고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50인 이하 사업장에서도 시행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법으로 규제를 가하면 사고가 준다고 하는 가설이 어떻게 채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원래 산업현장에는 그동안 안전·보건에 관한 강한 규제법령이 있었지만 재해가 계속되자, 기업에 안전 보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권을 확보하자는 것이 법의 제정 이유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자료=고용노동부]

그러나 규제와 처벌에 의해서만이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행동과학이론은 현대에 들어 설득력이 떨어졌다. 오히려 많은 규제와 처벌은 사람들의 의욕만 상실하게 하여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일하는 당사자에겐 아무런 제재가 없이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묻는다고 사고가 줄어들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관리 비용의 증가로 될 수 있는 한 신규 채용을 꺼릴 것이고 새로운 고용 창출은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현장 근로자들의 안전의식 고양을 위한 대책 없이 규제만 강화되면 노동자는 안전사고 이전에 일할 기회마저 박탈당할 것이다.

요즘 의대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사협회가 강 대 강 대립을 하며 국민만 불안에 떨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도 올해 필요 노동력이 17만 명이나 부족하다고 한다. 업계에선 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 많이 데려오기 위해 정부기관을 압박하고 있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어떻게 교육하고 적절히 배치할지에 대한 구체안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제는 인권이 강화되어 외국인이라고 값싼 노동비를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외국인 인력 활용에 대한 세밀한 국가적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인력은 비용이 싸다고 해서 대충 수입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차탁마라는 이 아름다운 말은 원래 노동용어였다. 지금은 학문이나 인격을 수양해 가는 사람을 격려하는 상찬의 말이지만, 하나의 옥을 만들기 위해서는 돌을 자르고, 깎고, 쪼고, 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쁜 옥을 얻기 위해서는 먼지 나고, 더럽고, 위험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자기 수양과 연마는 하지 않고 그저 예쁜 말만 난무하는 사회. 이를 정치용어로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이두수 작가·건설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