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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몸에 대한 편견 바꾸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22. 15:58

몸에 대한 편견 바꾸기

중앙일보

입력 2024.03.22 00:24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TV를 보며 몸에 대한 나의 편견을 바꾸게 된 계기가 몇 번 있다. 맨 처음은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이었다. 천상의 연기를 펼치는 그의 완벽한 경기를 보고 나면 ‘다리 짧은’ 동양인 혹은 서양인의 이상적인 팔등신 비율 같은 고정관념은 깨끗이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뛰어올랐다가 미끄러운 빙판에 안전하게 내려앉으려면 백인의 긴 다리는 좀 거추장스러운 게 아닐까 하는 ‘역 편견’이 생길 정도였다.

육체엔 각자 시간과 노력 새겨져
몸 만들며 한계 극복해 가기도
도전할 때 새로운 정체성 생겨

 

                                                                                             판앤펀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는 ‘섹시함’이란 단어에 대한 편견을 지워주었다. 자신의 몸으로 그렇게 당당하고 진지하게 아름다움을 뿜어낼 수 있는 여성들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러자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쓸어올리는 몸짓에 어쩐지 가져야만 할 것 같았던 민망함이 갑자기 촌스럽게 느껴졌다. 흉내 내기에는 너무 둔한 중년의 몸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엉성하게 따라 해보기도 했다. ‘골때리는 그녀들’은 정성을 다하면 공과 함께 굴러다니던 여자들도 대포알 슛을 날리고 빌드업 축구를 해내는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몸치의 무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죽도록 이기고 싶어하는 여자들의 몸짓은 월드컵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피지컬:100’(사진)은 ‘초콜릿 복근’이나 겨우 떠올렸던 ‘패션’으로서의 근육과 몸에 대한 편견에 KO 펀치를 제대로 날려버렸다. 완벽한 피지컬을 찾는다는 모토 아래 경연을 펼치는 이 쇼프로그램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지점은 몸싸움에 종종 등장하는 슬로우모션이다. 땀에 젖거나 웅덩이 물에 젖어 반짝반짝 빛나는 탄탄한 몸들이 강렬한 승부욕으로 맞부딪힐 때 그것은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에서 맹수들이 포효하며 혈투를 벌이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이때 클로즈업한 카메라가 포착해내는 일그러진 표정과 섬세한 여러 겹의 근육들. 그때 보는 이들은 그 한겹한겹의 근육이 만들어지는 동안 그들이 쌓아 올렸을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덧대어 생각하게 된다. 힘자랑이라는 전경 뒤에 펼쳐진 보이지 않는 시간의 배경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육체의 스펙터클은 경의를 불러일으키고야 만다. 참가자들이 서로의 신체적 능력에 감탄하며 응원하는 모습은 ‘빌런’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 세련된 연출에 있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서로의 육체에 새겨진 시간의 의미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네트 베닝

서양의 언론들은 특히 이 프로에서 ‘아시아인들의 몸에 대한 자신감’이 중심에 놓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건장한 남성들의 몸을 다룬 그들의 리얼리티 쇼나 영화 드라마들이 전형적인 백인의 근육을 이상적인 형태로 놓고, 체구가 작은 아시아인들은 수동적이고 약한 모습으로 그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통쾌한 반전이다. 고정관념을 깨치는 동양인의 아름답고 강인한 몸 뿐 아니라 여기서는 근육질이나 뚱뚱한 몸, 혹은 날씬하지만 탄탄한 몸, 심지어 여성들까지 힘의 다양한 원천이 동등하게 경쟁한다. 팀을 이룬 참가자들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엄청난 힘과 근육뿐 아니라 균형감각과 지성과 헌신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는 모습도 보기 좋다. 시즌1의 우승자 우진용이 큰 체격을 가진 사람들에 맞서 끈질긴 인내로 승리를 따내는 모습이 이 스토리의 결말을 아름답게 증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힘자랑과 육체미가 떠올릴 법한 마초적 경쟁과 허세 같은 손쉬운 연관어들 대신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몸을 향한 의지를 진지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그걸 보던 나의 ‘몸뚱이’도 조금은 아름답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난생 처음 PT를 끊게 되었다.

그러나 중년의 몸은 쉽사리 희망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몸매는 감탄과 경의의 대상으로 즐기기만 하자는 좌절 모드에 접어들 때쯤, 넷플릭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보게 됐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아네트 베닝이 올라있어서 그 예쁜 얼굴이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해서였다. 영화는 60대 나이에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바다 수영으로 횡단한 실존 인물 나이애드의 이야기를 다뤘다. 나이 든 사람의 늙지 않는 도전 이야기는 이미 흔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65세의 아네트 베닝이었다. 그 나이에 처진 몸매가 드러난 수영복을 입고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더구나 바닷속 해파리를 피하기 위해 얼굴에 고무 마스크를 덮어쓰고 횡단을 끝낸 배우의 얼굴은 퉁퉁 부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그때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현명하게 늙어가는 몸이란 미추의 잣대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 그 육체에 ‘도전’과 같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할 때 그 몸과 얼굴은 아예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 횡단은커녕 50m도 겨우 헤엄치는 수준이지만 일단 수영복 몸매 부끄러워 말고 내 몸과 마음에 어떤 새로운 임무를 던져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