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찍는 남자, 라일락 같은 남자... 25세 여성의 선택은?
[김민철의 꽃이야기]
<2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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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이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년도 더 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 소설인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 책은 1998년에 처음 나온 소설이다. 26년 전이다.
◇26년전 나왔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보니 이 소설이 국내소설 4위였고 2판 84쇄를 팔고 있었다. 26년 전이면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해이고 IMF로 온 국민이 고통받던 시기였다. ‘역주행’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부침은 있었겠지만 적어도 최근 몇 년간 이 책이 꾸준히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에 나오는대로 이 책이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힘은 참 불가사의하다.’ 더구나 대대적인 마케팅이나 광고도 없이 유튜브 소개 등 입소문만으로 스테디셀러가 됐다고 한다. 양귀자의 ‘연금 소설’이 ‘원미동 사람들’이 아니라 이 책인 것도 놀랍다. 책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는데 저자 입장에선 꿈의 경로를 가고 있는 것 같다.
알라딘 구매자 분포를 보면 85.5%가 여성이고 그중 20대 38.9%, 30대 28.3%를 차지하고 있다. 구매자의 3분의2(67.2%)가 20~30대 여성인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재인기 비결을 페미니즘 열풍에서 찾는 글도 보이는데, 이 소설을 읽어보면 페미니즘 소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순’의 주인공은 25세 미혼 여성 ‘안진진’이다. 소설의 뼈대는 안진진이 착하지만 가난한 김장우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매사 계획적인 나영규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용이다. 이런 틀에서 안진진과 엄마, 이모 등 여성의 삶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다.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지만 반대의 인생을 산다. 엄마는 시장에서 내복 등을 팔며 술주정뱅이 남편, 사고뭉치 아들을 부양하는 신세지만 이모는 지루한 삶이 고민이라면 고민인 부잣집 사모님이다. 주인공은 늘 엄마보다 이모가 행복해 보였지만 막판에 뜻밖의 반전이 있다.
여대생 딸이 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다시 읽었다는 50대 여성도 있었다. 그는 “20대 여성들이 고민하는 지점,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딸 세대도 공감하는 것 같다”며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냐, 이수일의 사랑이냐 같은 질문은 어느 시대에나 먹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 전문가는 “양귀자 소설을 보면 시대의 니즈(needs), 독자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쓰는 것을 볼 수 있다”며 “‘모순’의 스테디셀러 비결도 거기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야생화와 라일락 사이, 여주인공 선택은?
이 소설에서 안진진이 고민하는 두 남자 중 한명인 김장우가 야생화 사진작가라 꽃이 많이 나온다. 그는 선운산에서 안진진에게 구절초를 알려주며 “쑥부쟁이 종류나 감국이나 산국 같은 꽃들도 사람들은 그냥 구별하지 않고 들국화라고 불러 버리는데, 그건 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꽃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이름을 자꾸 불러 줘야 해”라고 말한다. 구절초는 사람들이 흔히 들국화라 부르는 꽃들 중에서 흰색 또는 연분홍색이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또 구절초는 잎이 벌개미취·쑥부쟁이와 달리 국화잎처럼 갈라져 있어서 구별하기 쉽다.
같은 장소에서 나오는 매미나물은 매미꽃을 말하는 것 같다. ‘가느다란 줄기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노란 꽃이 애달프다’고 표현했다. 매미꽃은 피나물 비슷하게 생겼다. 줄기를 자르면 붉은 유액이 나오는 것도 같다. 둘의 차이는 꽃자루가 어디에서 나오느냐다. 줄기에서 돋으면 피나물이고 땅에서 따로 돋으면 매미꽃이다. 주로 피나물은 경기도 이북에서, 매미꽃은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다.
김장우가 데이트하다 주차장 화단에서 무더기로 피어있는, ‘꽃망울이 촘촘하게 붙은’ 일월비비추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도 있다. 비비추는 작은 나팔처럼 생긴 연보라색 꽃송이가 꽃줄기를 따라 옆을 향해 피는 것이 특징이다. 비비추 종류 중에서 꽃들이 꽃줄기 끝에 모여달리는 것이 일월비비추다. 높은 산의 습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잎이 넓은 달걀 모양이고 가장자리는 물결치는 모양이고 잎자루 밑부분에 자주색 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소설엔 라일락도 인상적으로 나온다. 쌍둥이 이모는 주인공이 5학년 때 어머니 대신 일일교사로 학교에 왔다. 이모는 선생님에게 멋진 크리스털 화병을 드리면서 “보라색 라일락을 한 무더기 꽂으면 예쁠 것 같아서 사봤어요. 받아주세요”라고 했다. 어머니라면 비싼 크리스털 화병을 사지도 않겠지만, 샀다 하더라도 그렇게 멋진 말을 할 줄 모를 것이라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그후 주인공은 봄이 오면 늘 라일락에 주목했다. 김장우가 전화를 받지 않자 전화기 앞을 떠나지 못할 때 ‘조용조용 꽃가지를 흔들고 있는 라일락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밤공기 속에 흩어지는 이 라일락 향기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은은하기만 한데…’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내가 나무라면 라일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목도 있다. 김장우가 야생화라면 나영규는 라일락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주인공이 어머니가 아닌 이모의 삶을 좋게 보았다는 점에서 두 남자 중 누구를 택할지 짐작할 수 있다.
라일락은 젊은 연인들의 꽃이다. 라일락 잎은 거의 완벽한 하트 모양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비교적 큰 라일락나무는 대개 서양에서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토종 라일락이 있는데 바로 수수꽃다리다. 황해도, 평안남도, 함경남도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란다.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 모양이 수수 꽃을 닮아 ‘수수 꽃 달리는 나무’라고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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