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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 이야기

“사과나무 열매 맺는 인생 시기는 바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1. 30. 11:24

103세 김형석 교수 “사과나무 열매 맺는 인생 시기는 바로···”

[김민철의 꽃이야기]

<199회>

입력 2023.11.28. 00:00업데이트 2023.11.2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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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은희경 장편 ‘새의 선물’에 나오는 사과꽃 이야기를 쓸 때 사과꽃 향기를 어떻게 묘사해야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맑고 시큼하다’는 것 말고는 사과꽃 향기에 대한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사과꽃을 주의깊게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글로 향기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러다 기대도 하지 않고 찾아간 사과농장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팔 사과를 담는 주인아줌마에게 사과꽃 향기는 어떤 향기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잘 익은 사과 박스를 열 때 나는 향기 있죠? 그 향기와 똑같아요”라고 말해준 것입니다. 제가 찾던 표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이 표현 이상으로 사과꽃 향기를 잘 묘사한 말이나 글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사과나무꽃. 처음에는 분홍색을 띠다가 활짝 피면서 흰색으로 변한다.

 

◇사과나무 열매 맺는 60세 이후가 황금기

103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생을 사과나무에 비유한 것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김 교수는 책 ‘김형석의 인생문답’에서 “내가 사과나무면 이제 사과나무 하나를 심어놓고 그 나무를 키워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책과 강의에서 인생을 3단계로 나눕니다. 1단계인 30세까지는 교육을 받는 단계, 60세까지는 직장에서 일하는 단계, 60세 이후에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열매 없는 사과나무는 의미가 없다”며 “그렇게 본다면 인생의 열매를 맺는 3단계가 가장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가 살아보니 60세에서 75세까지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60에서 75세까지가 모든 것이 성숙하고, 내가 나를 믿고 살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나이여서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60세가 넘으면 무조건 공부하고, 봉사 활동을 해도 좋고 무슨 일을 해도 좋으니 절대로 놀지 말고, 취미 활동을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50세부터 건강을 잘 관리하면 60을 넘어 90까지는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다. 사회적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90 이후는 주로 건강 때문에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더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17세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직접 들었고, 광복 후 초등학교 선배인 김일성과 평양에서 아침을 같이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 윤동주 시인과 중학교 같은 반 친구였고, 황순원 작가는 2~3년 선배인 인연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과나무꽃. /남강호 기자

 

◇수줍은 아가씨 볼 같은 사과꽃

사람들은 흔히 사과꽃이나 사과꽃 향기는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사과꽃 필 무렵엔 사과꽃 말고도 온갖 꽃들이 만발할 때여서 과일꽃인 사과꽃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사과꽃은 하얀 5장의 꽃잎에 황금색 꽃술이 달립니다. 꽃봉오리는 처음에는 분홍색을 띠다가 활짝 피면서 흰색으로 변하는데, 분홍색이 아직 남아있을 때 사과꽃은 수줍은 아가씨의 볼을 연상시킵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 나오는 사과꽃 향기도 재미있지만 윤대녕 소설 ‘도자기 박물관’에 나오는 사과꽃도 참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 사과는 아그배나무나 야광나무를 접붙이기 밑나무로 사용해 얻은 것입니다. 두 나무는 사과나무와 같은 속(Malus)입니다. 이렇게 접붙이기를 한 나무는 3년 정도 지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만, 씨앗을 심어 가꾸면 13년 넘게 자라야 꽃이 핀다고 합니다.

아그배나무와 야광나무는 꽃이 사과나무와 비슷합니다. 꽃봉오리가 분홍빛을 띠다가 점차 흰빛으로 피는 것도 같습니다. 아그배나무는 숲에도 있지만 꽃이나 열매가 좋아 집 근처에 심어 놓은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엔 콩만한 붉은색 계통의 열매가 긴 열매자루에 달려 있습니다. 아그배나무라는 이름은 아기처럼 작은 열매가 열리는 배나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그배나무. 일부 잎에 결각이 있다.

 

야광나무도 5월에 작은 가지 끝에 흰색 또는 연분홍빛이 도는 흰색 꽃이 무더기로 핍니다. 야광나무라는 이름은 새하얀 꽃이 나무를 뒤덮다시피 피어 밤에도 환하게 빛난다고 해서 붙였다고 합니다. 야광나무 열매도 콩만하고 붉은색 또는 노란색으로 익습니다. 아그배나무와 야광나무 열매는 배꼽이 남지 않습니다. 대신 꽃받침이 떨어진 흔적으로 열매 아래쪽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습니다. 반면 꽃이 두 나무와 비슷한 꽃사과나무의 경우 붉은 열매에 배꼽이 남아 있습니다.

                                                                  야광나무. 잎에 결각이 없다.

 

그럼 아그배나무와 야광나무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잎을 보면 차이가 납니다. 일부 잎에 결각이 생겨 갈라져 있으면 아그배나무, 잎들이 갈라져 있지 않으면 야광나무입니다. 아그배나무 잎은 대부분 둥근 타원형이지만 일부 잎은 2~5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야광나무 잎은 모두 갈라지지 않는 타원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