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부 작가가 쓴 녹나무의 비밀
[김민철의 꽃이야기]
<2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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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은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술술 읽혔습니다. 주인공 레이토는 직장을 잃고 복수심으로 공장 기계를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힙니다. 이때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부자 이모 치후네가 나타나 레이토를 유치장에서 나가게 해주는 조건으로 녹나무 파수꾼으로 일하라고 합니다.
◇녹나무 동굴에서 하는 ‘기념’?
녹나무는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 간 다음 다시 버스로 20여분 더 달려야 나오는 신사에 있었습니다.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을 가진 나무였습니다. 소설엔 이 나무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덤불숲을 빠져나가면 문득 시야가 툭 트이고 그 앞쪽에 거대한 괴물이 나타난다. 정체는 녹나무다. 지름이 5미터는 되겠다 싶은 거목으로, 높이도 20미터는 넘을 것이다. 굵직굵직한 나뭇가지 여러 줄기가 구불구불 물결치며 위쪽으로 뻗어나간 모습은 큰 뱀이 뒤엉켜 있는 것 같다. (중략)
거목의 옆구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나 있다. 그 크기는 어른이라도 조그만 몸을 숙이면 너끈히 드나들 수 있을 정도다. 레이토는 신중하게 발을 들이밀었다. 나무 기둥 안쪽에는 동굴 같은 공간이 있고 그 넓이가 한평 반쯤이나 된다.>
사람들은 예약을 하고 이 동굴 공간에 들어가 ‘기념’을 합니다. 레이토는 아빠의 불륜을 밝히려는 유미, 아버지 유언을 받으려 하는 소키 등을 만나면서 녹나무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갑니다. ‘기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믐 즈음 오는 사람과 보름 즈음 오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주인공의 궁금증을 따라 가다보니 금방 소설 후반부에 이르렀습니다.
판타지 소재여서 그런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는 1985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100여권의 소설을 냈다고 합니다. ‘용의자 X의 헌신’, ‘매스커레이드 게임’ 등 익숙한 제목의 소설이 많습니다. 추리소설 기법을 쓰면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 내 발행 부수만 1억 부가 넘는다고 합니다. 단순 계산하면 소설을 내기만 하면 100만부 가량 팔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지난 10년간 소설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 1위라고 하니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저 같은 세인은 인세(보통 책값의 10%)로 얼마를 벌었을까 계산해 봅니다.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잎이 3주맥이고 샘점 있으면 녹나무
상록활엽수인 녹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섬에서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키 20m, 밑동 둘레가 4m 넘게까지 크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전에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녹나무가 많았는데 요즘엔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대신 이 나무를 제주 시내와 서귀포 등에 가로수로 심어 놓았고 공원이나 관광지에 꽤 많이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녹나무는 현재 제주시 가로수의 4.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녹나무는 제주도 등 남부지방 나무를 공부할 때 자주 마주치는 나무입니다. 녹나무과는 녹나무는 물론 후박나무, 비목나무, 새덕이, 육박나무, 생달나무, 생강나무, 털조장나무, 감태나무, 센달나무, 참식나무, 까마귀쪽나무 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이 비슷비슷해 구분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작정하고 이 나무들이 거의 다 있는 한라수목원에 가서 공부하지만 돌아서면 또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수도권 사람들은 평소 자주 볼 수 없는 나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나마 녹나무는 뚜렷한 구분 포인트가 있습니다. 제주도 가로수 중에서 회갈색 나무껍질이 세로로 갈라지는 나무가 있으면 녹나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언뜻 잎 모양, 수피 등 전체적인 모습이 살구나무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또 녹나무는 잎에 뚜렷한 3주맥(한 개의 주맥과 두 개의 측맥)을 갖고 있습니다. 녹나무속인 생달나무, 참식나무속인 참식나무와 새덕이도 3주맥을 갖고 있지만, 녹나무는 잎 아래 주맥과 측맥이 만나는 곳에 샘점이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나무에서 녹나무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이 샘점이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녹나무라는 이름은 어린나무의 줄기가 녹색을 띠는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피가 세로로 갈라지고, 어린 가지가 녹색이고, 잎이 뚜렷한 3주맥에 샘점이 있으면 녹나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녹나무 가지나 잎, 뿌리에서 추출한 정유를 ‘장뇌(camphor)’라고 하는데, 이것이 살충제, 방부제, 인조향료의 원료, 비누향료, 구충제 등으로 널리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녹나무 영어 이름이 ‘Camphor tree’입니다.
녹나무는 4~6월 연한 녹색의 꽃이 피어서 가을에 지름 1㎝ 정도인 둥글고 까만 열매가 달립니다. 나무 전체에서 독특한 향기가 나는데,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녹나무의 파수꾼’에도 ‘이윽고 녹나무 특유의 장뇌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와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리에 있는 녹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 41호이고, 제주시 삼도동 제주의료원 안에 있는 녹나무 두 그루는 제주도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녹나무는 일본·중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일본 가고시마현 가모 신사에는 수령 1500 년의 녹나무 거목이 있는데, 나무기둥 안에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넓이 약 13제곱미터의 빈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 수령과 규모의 나무라면 소설에서처럼 신령이 깃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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