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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의 미학’ 장욱진, 사진 같은 풍경도 그렸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9. 22. 16:26

‘단순함의 미학’ 장욱진, 사진 같은 풍경도 그렸네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입력 2023.09.22. 03:00업데이트 2023.09.22. 09:59
 
 
 
 
 
 
장욱진, ‘공기놀이’(1938). 65 80.5㎝.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사장상을 수상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

화가 장욱진(1917~1990) 그림 앞에선 어린아이도 이런 말을 내뱉는다. 작고 가난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가족, 둥근 나무, 하늘을 나는 새..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동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은 이런 편견을 깨뜨리는 통쾌한 경험을 선사한다.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60여 년간 이어온 장욱진의 화업 인생을 총망라한 회고전이다. 최근 일본에서 발굴한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인 ‘가족’(1955)부터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까지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여 점을 전시했다.

                         장욱진, '월목/반월·목',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53.3 × 38.4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이 이런 걸 그렸다고?’ 싶을 정도로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그림도 많다. ‘공기놀이’는 양정고보 5학년 시절인 1938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사장상(社長賞)을 수상한 작품이다. 서울 내수동 집을 배경으로 네 명의 소녀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소녀들의 머리카락과 댕기, 아기 얼굴까지 빛의 흐름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얼핏 김환기 느낌이 나는 1963년작 ‘반월·목(半月·木)’은 장욱진 그림 가운데 가장 문자 추상에 가까운 작품이다. 나무를 상형화해 얻은 것으로, 서체의 예서에 가까운 이미지를 띠고 있다.

                                      장욱진,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 '가족', 1976, 캔버스에 유화 물감, 13 × 16.5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전시는 까치, 나무, 가족 등 그의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티프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까치는 그의 유화 730여 점 중 60%인 440여 점에 들어있을 정도로 분신 같은 존재였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까치가 장욱진의 페르소나였다면, 나무는 그의 온 세상을 품은 우주였고, 해와 달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였다”며 “전시를 통해 이런 대표 도상들이 작품 속에 어떻게 구성되고 변모해 가는지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그림에선 소리가 들린다. 1958년작 ‘까치’는 그믐날 밤 둥근 나무에 서 있는 까치에서 ‘깍깍’ 대는 울음이 퍼지는 것 같다. 날카로운 필촉으로 캔버스에 두껍게 발린 물감층을 수없이 긁어내 까치의 소리를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다. 1964년 일본인 소장가에게 팔렸다가 60여 년 만에 돌아온 ‘가족’(1955)은 또 다른 ‘가족’ 그림과 나란히 걸려있다. 작가가 이 그림을 판 것을 아쉬워하며 비슷한 구도와 크기로 그린 1972년 작 ‘가족’이다. 미술관은 오사카 낡은 벽장 속에서 이 그림을 찾아낸 스토리를 전시장에 재현해, 마치 벽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공간을 꾸몄다.

 
                               장욱진, '자화상', 1951, 종이에 유화물감, 14.8×10.8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제목인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고 이야기한 화가의 말에서 착안했다. 장욱진은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고 할 만큼 오래도록 붓을 놓지 않았다. 배 학예사는 “그림 속 점 하나, 선 하나 엄격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완성해 나간 완벽주의자로서 작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린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 × 31cm,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린 ‘밤과 노인’에는 흰 도포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인이 있다. 화가가 평생 사랑했던 집과 까치, 나무와 아이도 있다. 화가 본인을 상징하는 듯한 노인은 세속에 초탈한 표정으로, “내가 사랑한 것은 저 아래에 있지만,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기에 내 마음은 평화롭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한평생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을 갈아넣었기에, 마침내 ‘누구나 흉내낼 수 있을 것 같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270점 작품이 말해준다. 장욱진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소장품 6점을 내놨다. 다만 RM은 자신의 소장작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우려해 어떤 작품인지는 함구해 달라고 미술관에 부탁했다. 작가가 국제신보 연재 소설 염상섭의 ‘새울림’에 그렸던 삽화 56점도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내년 2월 12일까지.

편집국 문화부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