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쓸쓸을 숫돌 삼아 붓을 간다
스윽슥 헛된 그림자가 날이 서고
한 발짝 건너면 다른 세상
너에게로 간다
여립이 가고
봉준이가 걸어갔던 길은 보이지 않고
신기루 같은 중얼거림이
깃발로 나부끼는 저 먼 곳
먹물로 살았는데 벼루는 말라
단지를 하려니 목숨이 위태롭다
벼 옆에 들러붙은 피를 누가 나무랄 수 있나
한 발짝 딛기도 전에 기우뚱거리는
대동의 깃발
영영 붓은 무딘 칼도 되지 못하려는지
혀를 동여맨 말들이 봉두난발 엉켜 춤춘다
글쎄, 한발짝 내딛기 평생이 모자란다
2022년 12월 공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