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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쑥부쟁이 / 박해옥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1. 15. 13:39

쑥부쟁이

 

박해옥

 

 

저녁놀 비끼는 가을언덕에

새하얀 앞치마 정갈히 차려입은 꼬맹이 새댁

살포시 웃음 띤듯하지만

꽃빛을 보면 알아

울음을 깨물고 있는 게야

 

두 귀를 둥글게 열어 들어보니

내 고향 억양이네

정성스레 냄새를 맡아보니

무명적삼서 배어나던 울엄니 땀내

울먹대는 사연을 들어보니

무망중에 떠나온 길이 마지막이었다는

 

고향집 언저리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쑥부쟁이야 쑥부쟁이야

층층시하 시집살이가 고달픈 거니

오매불망 친정붙이들 그리운 거니

 

옮겨 앉은 자리가 정 안 붙고 추운 것은

돌아갈 옛집을 갈 수 없기 때문이야

 

 

 

돌아갈 곳을 두고 온 사람들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날씨에 일본의 경제침략까지 더해져 올 여름 더위는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사상 최악입니다. 그럼에도 귀농한 시골집 버려둔 텃밭 예초작업을 하다 보니 가을을 준비하는 쑥부쟁이 가득합니다.

 

귀촌 귀농한 사람들이 개인적 사정이건 지역의 지나친 텃세 때문이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나가는 일이 부쩍 늘었습니다. 아마도 돌아갈 곳을 두고 온 사람들이겠다 위로를 가집니다. 어쨌건 한 때 열풍처럼 불었던 그 일도 이제 수그러지는 듯합니다.

 

“옮겨 앉은 자리가 정 안 붙고” 추워 “돌아갈 옛집을 갈 수 없”는 사연이야 어디 시집살이 뿐일까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타국으로 끌려간 꽃다운 이름들과, 주검으로 조차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이들..... “울음을 깨물고 있는” 쑥부쟁이 한 송이에 담긴 사연의 서슬이 아직 퍼렇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다시 받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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