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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의자이정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1. 29. 15:06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의자가 될 수 있다면

 

서울 성북동 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길상사는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씨가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여 탄생한 사찰로 늘 불자들이나 사진작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법정스님께서 생전 사용하시던 나무껍질이 붙어있는 낡은 의자가 햇살을 쪼이며 졸고 있습니다. 의자에 앉자 신음을 내는 의자의 비명에 벌떡 일어선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지금도 법정스님의 생전 삶이나 무소유라는 책은 많은 이들에게 의자가 되고 있습니다.

둘러보면 가진 것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진 것 하나 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의자가 되어 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의자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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