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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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뒷굽 / 허영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5. 6. 13:46

 

뒷굽

      허영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 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

 

균형 잡힌 세상이란 나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이 아니다

 

정치의 계절이 봄보다 먼저 왔습니다. 화사한 벚꽃보다 먼저 와 자리 잡은 선거는 다시 ‘좌빨과 우빨’이라는 이념논쟁으로 확산되고 있고, 하나 더 늘어 ‘중도’라는 색까지 끼어들어 난리법석입니다. 아무리 ‘새는 좌우의 날개를 가지고 난다’고 떠들어 봐야 쇠귀에 경 읽기 입니다.

무게중심을 잡고 똑바로 서 있다고 해서 좌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 가는” 이유는 다리도 두 다리가 한 짝이고 구두도 두 짝이 한 켤레이므로 오른쪽 뒷굽은 오른 쪽으로, 왼쪽 뒷굽은 왼쪽으로 닳아야 신체의 균형이 맞기 때문은 아닐까요. 균형 잡힌 세상은 나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고 배려하는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라는 수선집 주인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여도 되는 날을 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