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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개통하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10. 12. 14:32
내달 개통하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
벼랑 옆에 끼고 한탄강 굽어보며 27만년 신비 속으로 '아찔한 산책'
강원 철원 순담계곡의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 구간. 수직 벼랑을 끼고 이런 길이 3가 넘게 이어진다. 왼쪽에 아치형으로 허공에 띄워 놓은 길이 전망대다. 전체 구간에 똑같은 모양의 전망대가 3개 있는데, 그중 한 곳은 발을 디디는 바닥이 투명 유리다.
 

 



수직 절벽에 파이프를 박아 선반을 매달 듯이 놓은 길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잔도(棧道)’입니다. 수직의 높이와 극대화한 개방감으로 아찔함이 느껴지는, 그런 길입니다. 모름지기 길이란 한 곳과 다른 곳을 잇는 ‘수단’이지요. 중국에서 기원한 잔도의 시작도 험준한 산악 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 만들어진 잔도는 ‘길 자체가 목적’으로 놓인 길입니다. 충북 단양 단양강 잔도도, 전북 순창 용궐산 하늘길 잔도도 그렇습니다. 길이 목적이 됐으니 자극의 크기를 놓고 경쟁합니다. 잔도가 점점 더 아찔해지고 자극적이 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새로 놓이고 있는 강원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는 그 절정에 있습니다. 내달 개통 예정인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를 미리 다녀왔습니다. 자그마치 만 4년째 발 디딜 자리 하나 없는 한탄강 변의 깎아지른 벼랑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며 잔도를 놓고 있는 곳입니다. 잔도 구간과 보행 덱 구간, 거기에 협곡을 건너는 13개의 출렁다리에 3곳의 전망대까지 합쳐서 3.6㎞ 남짓. 경치를 보며 걸으면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긴 벼랑길입니다. 아직은 다 짓지 않은 잔도를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봤습니다.


# 뜨거운 용암이 식은 자리에 벼랑길을 내다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검은색 현무암 수직 절벽의 허공에 아찔한 길이 놓였다. 한탄강 철원 구간의 명소로 ‘철원 8경(景)’에 이름을 올린 순담계곡. 그 계곡을 두른 병풍 같은 수직 벼랑에 잔도가 놓이고 있다. 중국 장자제(張家界)에서나 본 무협지 속 풍경 같은 아슬아슬한 그런 잔도 말이다.

잔도가 놓인 순담계곡의 비경에 대해 말하려면 그 계곡을 끼고 흐르는 한탄강이 왜 지금의 기이한 풍경을 품고 있는지를 얘기해야 하고, 그러자면 도리 없이 27만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좀 지루해도 참고 읽어보자. 이걸 알고 봐야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탄강 일대의 독창적인 경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한탄강이 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는지, 그리고 한탄강에서 또 무엇을 더 봐야 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27만 년 전, 그러니까 백두산과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이 일제히 폭발했던 이른바 한반도의 제4계 화산활동 시기. 한탄강 일대에 시뻘건 불길과 함께 끓어 넘치는 용암이 흘러내렸다.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로가 북한 땅으로 접어들어서 다섯 번째 기차역이 견불량역이다. 처음 화산이 폭발한 건 역에서 북동쪽으로 4㎞쯤 떨어진 해발 680m 높이의 이름 없는 산이다. 뒤이어 역시 북한 땅인 평강 서남쪽 3㎞ 지점의 오리산에서 화산이 불을 뿜었다.

견불량역 쪽에서 폭발한 화산의 용암은 진득해 금세 식어서 굳어졌지만, 오리산이 뿜어낸 용암은 묽어서 끓어 넘치면서 추가령 계곡을 넘고, 한탄강의 물길 자리를 타고 흘러 임진강 하류까지 무려 90㎞를 달렸다. 화산이 토해낸 용암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서울 면적보다 더 넓은 650㎢(1억9600여 만 평)의 땅을 용암이 다 뒤덮었다. 용암이 식으면서 막힌 물길은 무른 화산석의 틈새를 가르고 침식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물살은 땅의 틈새를 뚫고 점점 더 깊이 파내려갔다. 그 결과 강바닥은 점점 낮아졌고, 물살이 깎아낸 강변은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수직 벼랑을 이룬 지형이 됐다. 기기묘묘한 지금의 한탄강 협곡 비경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한탄강이 다른 강의 지형이나 풍경과 완전히 다른 건 이런 생성 배경 때문이다. 한탄강은 너른 들판 아래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며 푹 꺼진 자리에 있다. 그러니 한탄강을 보려면 수직의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평야의 땅 아래 갈라진 계곡 사이로 지하 수로처럼 강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순담계곡에 놓고 있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는 이렇게 푹 꺼진 아찔한 벼랑의 중간쯤에다 매달아 놓은 길이다. 한탄강의 풍경만 해도 다른 강에서는 본 적 없는데, 잔도는 한탄강을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야로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게 얼마든지 댈 수 있는 열 개쯤 되는 ‘잔도를 걸어 봐야 할 이유’ 중 한 가지 이유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공사구간. 비계를 설치해 놓고 발 디딜 자리 없는 벼랑에 길을 내고 있다.


# 고도감과 개방감으로 아찔한 길

한탄강 아래서 보면 까마득한 벼랑 위에 걸린 것처럼 보이지만, 잔도로 이어지는 주상절리길은 평지에 가깝다. 들머리는 살짝 내리막의 느낌마저 들 정도다. 한탄강이 저 아래서 흐르니 강을 끼고 있는 벼랑이 평지의 높이와 비슷해서다. 그 덕분에 노약자도 주상절리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차장 가까운 자리에 차를 댄다면 대략 마흔 걸음쯤이면 잔도 입구로 들어설 수 있을 정도다. 교량 구간이나 보행 덱의 접속구간에 오르내림이 있긴 하지만, 힘겨울 정도는 아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전체 구간은 3.6㎞ 남짓. 이 중에서 잔도 구간이 709m이고 보행 덱 구간이 이의 세 배쯤 되는 2.24㎞ 정도. 나머지는 들머리와 접속 구간이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잔도 구간. 직벽에 쇠파이프를 박아 매달아 만든 잔도 구간이 709m라면 짧지 않은 거리인데, 이보다 훨씬 긴 보행 덱 구간도 아찔하기는 마찬가지다. 걷다 보면 그게 잔도인지 보행 덱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거의 전 구간에서 잔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주상절리길의 잔도 구간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웬만한 곳에서는 겁을 내는 편이 아닌데도 그랬다. 걷다 보니 좀 나아지긴 했지만 몇몇 구간에서는 와락 무섬증이 들기도 했다. 이런 아찔함을 만드는 건 기본적으로 ‘높이’. 잔도 구간의 발 디딤판은 성글게 구멍이 뚫린 철제 구조여서 그 사이로 아찔한 벼랑 아래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고도감 못지않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건 개방감이었다. 난간의 높이가 팔꿈치쯤이었는데, 아래는 성근 철망으로 돼 있는 데다 철제 난간이 살짝 V자 형태로 벌어져 있어 사방이 트인 곳에서 의지할 것 없이 허공에 서 있는 듯했다. 개방감의 극대화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잔도 구간의 난간에서도, 발 디딤판의 형태나 재질에서도 개방감을 높이려는 의도가 보였다.

잔도의 압도적인 구간은 단연 전망대였다. 벼랑을 끼고 이어지는 잔도 길 바깥에다 위쪽의 직벽에 파이프를 막고 철제 로프로 매달아 지탱한 반원형의 길을 허공에 띄워 놓았는데 그게 전망대다. 허공에 떠 있는 반원형의 길에 올라서니 높은 고도감에다 사방으로 터진 개방감에 아찔했다. 이런 똑같은 형태의 전망대가 잔도에 세 개 있다고 했다. 나머지 두 개는 공사 중인데 특히 마지막 전망대는 허공에 띄워 놓은 길의 바닥이 투명 유리라고 했다. 아직 지어지지 않았지만, 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어지간한 담력으로 과연 허공에 띄워 놓은 투명 유리 바닥의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협곡의 전체 구간에는 13개나 되는 출렁다리가 놓였는데, 다른 곳에 있었다면 하나하나가 명소였겠지만 전망대의 아찔함과 비교되니 여기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 수직면에다 길을 놓은 이유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이달 말쯤 공사를 끝내고 내달 초순쯤 문을 연다. 지난 2018년부터 진행됐으니 올해로 만 4년째 잔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웬만한 관광 시설쯤은 반년 만에 뚝딱 짓고 마는 게 보통인데, 잔도 공사에 4년씩이나 걸린 건 시공의 어려움 때문이다. 깎아지른 직벽에다 길을 놓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재 운반이었다. 고심 끝에 강 건너편 협곡 정상에 자재 운반 전용 삭도(케이블카) 3개를 설치해 놓고 거기서 공사 자재를 실어날랐다.

이 구간의 한탄강 물줄기는 철원과 경기 포천을 나누는 경계다. 잔도가 놓인 철원의 강 건너편은 포천 땅. 그곳에 설치한 삭도 앞에서 마무리 공사 중인 잔도 구간의 시공 모습을 내려다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벼랑에 길을 놓느라 촘촘하게 엮어 세운 비계 규모만 봐도 그게 얼마나 난공사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이렇듯 험준한 지형에 어렵게 길을 놓게 된 건 한탄강 관광자원화 사업의 일환이었다. 지난 2017년 행정안전부는 한탄강 물길이 지나는 경기 연천과 포천, 철원 등에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 중 하나로 ‘한탄강 주상절리길 조성사업’을 확정했다. 남북관계 경색 등으로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접경지역 경제 사정이 악화하자, 한탄강의 지질 자원을 활용해 만든 트레킹 코스로 지자체들이 저마다 관광객을 유치해 ‘먹고살 거리’를 만들라는 뜻으로 시행하는 사업이었다. 전체 120㎞ 남짓의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 포천 구간이 53㎞로 가장 길고, 이어 철원 구간이 43㎞, 연천 구간이 24㎞ 순이었다.

지자체의 경계를 넘어 한탄강 트레킹 코스를 하나로 엮는 데 관건이 됐던 건 지형이나 기존 시설 등으로 단절된 구간을 어떻게 잇느냐였다. 철원이 고민했던 건 순담계곡 쪽 코스였다. 수직 절벽을 끼고 있는 퍼블릭골프장인 한탄강CC가 도보 코스를 막았다. 골프장을 크게 에둘러 돌아가는 길을 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자니 한탄강길이란 이름이 무색했다. 고심 끝에 수평면이 아닌 수직면에다 길을 놓자는 제안이 나왔다. 절벽에다 길을 놓자는 잔도 아이디어가 그렇게 나왔고, 만 4년여의 공사를 거쳐 이제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가을꽃이 만발한 철원 고석정 꽃밭. 축구장 33개 크기의 너른 공간에다 가득 심어 놓은 가을꽃이 지금 한창이다. 꽃이 가장 좋은 시기는 이달 중순까지다. 다른 지역에도 관광지로 조성한 꽃밭이 있지만, 규모나 화려함 면에서 고석정 꽃밭은 단연 압도적이다.
 


# 지금 철원에 가야 할 이유 몇 가지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를 걷겠다면 철원에는 한 달쯤 뒤에나 가봐야 하지만, 그때가 아니라 지금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가 철원 고석정 인근의 꽃밭이다. ‘고석정 꽃밭’. 이거야말로 멋 하나 부리지 않은 직설적인 이름이다. 축구장 33개 크기의 옛 포사격장 부지에다 이런 이름을 달아 놓은 건, 모르긴 해도 지금만큼 인기를 누리는 관광지가 될지 몰라서였을 것이리라. 고석정 꽃밭에는 2016년에 처음 꽃을 심기 시작했고 2019년에 풍성한 꽃밭을 가꿔 제법 이름을 날렸는데,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에다 문화재시굴조사, 코로나19까지 겹쳐 꽃밭을 가꾸지 않았다가 올해는 지난달 꽃밭을 열었다.


꽃이 코로나19로 지친 이들을 위로해줬던 것일까. 올해 고석정 꽃밭은 속된 말로 ‘대박’이다. 지난 9월 초 개장 이후 개천절 연휴까지 총관람객 수가 21만7450명이다. 개천절 연휴 사흘 동안에만 6만6000여 명이 꽃밭을 찾았다. 코로나19 이전이라면 이런 꽃밭에서는 ‘다른 건 없고 꽃만 있다’는 얘기가 나왔음직 한데, 지금은 화려하게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꽃만으로도 다들 충분히 감동을 느끼는 듯했다.


꽃밭이 수십만 명을 불러 모으니 전국의 지자체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줄지어 고석정 꽃밭을 찾고 있었다. 청송군, 정선군, 삼척시, 평창군, 연천군, 포천시, 양주시 등의 지자체 관계자들이 꽃밭을 방문했다니 조만간 전국적으로 지자체의 꽃밭 조성 붐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고석정 꽃밭에는 코스모스와 버베나, 억새, 구절초, 국화가 만개했다. 이달 말까지는 꽃이 남아 있겠지만, 만개한 가을꽃을 보려면 이달 중순까지는 가야 한다.


철원 주상절리길이 아직 공사 중이라 걷지는 못하지만, 지금 그곳에 간다면 잔도의 아찔한 경관을 한탄강 맞은편 포천 땅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탄강 포천 구간의 지질명소인 화적연에서 대교천 현무암 협곡까지 이어지는 편도 13㎞ 남짓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이제 막 조성된 곳이라 지도에는 없지만 보행 덱도 잘 정비돼 있고 길도 잘 닦여 있다. 한탄강 강변을 따라 줄곧 이어지는 길은 사과밭을 지나고 익은 벼가 물결치는 논둑길을 지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교천 협곡까지 간다. 코스 중간쯤이 한탄강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 철원 주상절리 잔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구간이다. 거기서 보면 강 건너편의 아찔한 벼랑에다 잔도를 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사 중인 모습이 완성된 잔도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포천의 화적연은 한탄강을 여행한다면 꼭 들러봐야 할 명소다. 화적연은 강변에 거대한 물개처럼 생긴 기이하게 누워 있는 바위 일대를 이르는 이름. 보는 방향에 따라 볏단을 쌓아놓은 듯하다고 우리말로 ‘볏가리 소’로 불렸다. 화적연 바위도 좋지만 가을날 오전 볕이 들 때쯤의 주변 풍경이 자못 황홀하다. 포천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금강산 유람을 가던 길인 ‘경흥로’가 지나는 곳이었는데, 겸재 정선은 금강산 가는 길의 명승을 그린 화첩에다 여기 화적연을 그림으로 남겼다. 겸재는 역시 한탄강 지질명소 중의 하나인 철원의 삼부연 폭포도 그림으로 남겼는데, 철원까지 간 길이라면 그곳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밖에도 한탄강 변에는 포천의 비둘기낭폭포나 멍우리 협곡, 지난해 공원으로 말끔하게 정비한 연천의 재인폭포도 있다. 모두 어디가 더 낫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경관을 가진 명소들이다. 오래 걷지도 않고, 찾아가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저 여행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거기 가기에 충분한 시간을 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