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삶의 여정旅情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1.
모든 예술은 시간의 기록이며 기억의 표현이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의 모든 사람은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그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존재이며, 그 표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예술가라 불려지고 자아실현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일찍이 미당未堂 서정주 선생은 모든 사람은 시심詩心을 지니고 있으며, 형식과 내용에 구애받음 없이 누구나 펜과 종이만 있으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시심을 한 마디로 말하면 ‘애틋한 마음’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될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사람, 더 나아가서 보이지 않는 관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희로애락의 대화를 나누되, 슬픔보다는 기쁨을,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건너가는 소통을 갈구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최연하 시인의 시집『햇볕의 지문』도 위와 같은 측은지심으로부터 촉발된 여러 생각들을 진솔하게 펼친 시집이다. ‘밤마다 나를 해부하는 칼’, ‘흘러가는 시간만큼 탈색되어가는 주민등록증’, ‘밤마다 나의 애를 태우는 방화범’이라고, 시 쓰기의 괴로움이라고 시인은 「詩」에서 토로한 바 있지만, 이는 측은지심이 저절로 발화하는 것이 아니라 숙고의 시간과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 성찰이 수반되어야 함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최연하 시인은 시「속눈썹에 걸린 잠」에서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오로라처럼 / 피어오르던 시절’로 되새기면서 앞으로의 삶이 꿈이 사라지는 무채색으로 사라져 갈 것임을 예감한다.
나이 따라
잠도 색깔이 입혀지는지
오로라처럼
피어오르던 시절은 지나고
먼 곳을 응시하던 무채색의 잠이
초저녁 선잠으로 뒤척이게 한다
- 「속눈썹에 걸린 잠」 1연
그러나 시인은 ‘무채색의 잠’에 무력하게 함몰되기를 거부하고 ‘별들이 총총 박히는 / 나의 마지막 장을 위하여 / 오늘도 하얗게 밤을 세우’(「자화상」마지막 연) 는 시 쓰기를 열망한다, 이와 같이 최연하 시인은 우리의 삶은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준비과정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시 쓰기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열망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오늘날의 우리의 삶은 소외疎外라는 재앙과 맞서 싸워야 하는 형국에 처해 있다. 오래 전 막스Karl Marx는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소외와의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예측할 수 없는 지진, 화산 폭발, 태풍, 가뭄 등의 재해에 속수무책인 인간, 각 개인의 재주와 능력이 무시되는 인간 간의 차별, 현대에 들어와서는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로 만들어지는 각종의 상품들, 급기야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디지털의 세계가 던져주는 소외가 우리 앞에 엄습해 있는 것이다.
이런 소외의 상황에서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코비드Covid19 는 복면의 사회로, 불신의 사회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이런 소외는 ‘심장의 두근거림도 못 느끼는 거리 / 사랑의 온도를 측정할 수 없는 거리 2m’(「코로나 19) 너머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고 ‘나를 쓰고서야 알았어요 / 발효되지 않는 말의 모서리가 날카롭다는 것을 / 말도 삭아야만 달콤하다는 것을 / 눈으로 말해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
마스크」)게 되는 고독의 상태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소용돌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게 흘러가는 사회적 관계는 농경사회의 두레의 미덕에 익숙한 시인에게는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외를 느끼게 만든다.
편의점에서 혼술을 마셔도
혼밥을 먹어도
겨울밤 이불 속에서 홀로 티브이를 보아도
룰루 날라 콧노래를 부른다
짓무른 침묵 속
자그마한 창문으로
햇살이 튕겨 들어오는 한 평짜리 원룸에도
만족하며 룰루날라 한다
시대의 장벽에 갇혀
미래의 시간마저 녹슬까
카타콤 같은 원룸에서
목을 빼 기웃거려도 본다
바닥 긁는 소리가 들리는 텅장**
무심으로 세월을 낚고 있는 소확행
온라인 카페에서 즉석 동행인을 찾아
같이 밥을 먹고
사진을 찍어 주는 일회용 만남도 서슴없다
한 알갱이의 빛을 찾아
도시 골목골목을 누비는 아이들
소소한 바램에 마음을 얹어본다
*20 30세대로 인생은 한번뿐 현재를 즐기며 살자
** 텅 빈 통장
- 「욜로족*」전문
어쩌면「욜로족」의 출현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아날로그의 시대가 저물고 무의미한 속도의 쾌감과 가벼움으로 무장한 디지털로 탈바꿈한 이기적인 익명匿名의 즐거움이 지배하는 세계가 먼저 당도해 있던 것이다. 손 편지 보다 이 메일, 전화보다 카톡이나 메신저로 소통하는 비대면의 편리함이 코비드 19와 같은 역병疫病의 창궐과 맞물리면서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과는 더 먼 곳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고 목숨 걸었던 / 순정은 전설이 되어가고 / 섬과 섬이 되어가는 / 사람과 사람 사이’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며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는 시인에게 두려운 일은 아이디ID와 닉네임nick name 으로 감추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꺼워하는 행위이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서로에 가닿는 길을 만드는 사랑의 느낌으로 전율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시집오시던 날
꽃가마에서 내리자 신부로 또 새댁으로
자식 출산 후엔 엄마로
일 년에 한 번씩 자식들 학적부에
넓을 홍 광택 윤潤 구슬 옥玉
그의 이름은 빛났으나
아무도 부르지도, 기억하지도 않았다
한평생 두려움도 모르고 혹한의 빙벽을 뚫고
금맥 같은 자식 가꾸기에 목숨을 걸었다.
꽃 같은 큰 언니는 부모의 가슴에
눈물에 절인 무덤 하나 덩그러니 안기고 떠난 뒤
지친 몸 찢기어 검불처럼 메말라갔다.
생애 끝임을 알리는 의사 선생님께서
홍윤옥 할머니 운명 하셨습니다
비문 인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러 진 이름
그날 이후의 시간은 영원히 닫혔어도
평생 홀로 살아야 했던 가슴 아픈 상처
삼백예순 밤을 목이 메는 그리움에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그 마음 이제야 알 것 같다
- 「이름」전문
이 시의 얼개는 희생과 눈물로 한 평생을 살다간 어머니를 회상하는 슬픈 시이다. 그러나 이 슬픔의 껍질 속에는 깨지지 않는 눈물이 감춰져 있으니, 그 눈물은 홍윤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신부. 새댁, 엄마로서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호명된 존재인 것, 그리고 시인 자신도 그 길을 따라 살아왔다는 자각自覺에 다름 아니다. 저 김춘수의 시「꽃」을 떠올려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전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며,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다는 이 빛나는 시는 칸트 Kant가 설파한,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이름이 붙여짐으로써 존재한다는 인식론을 형상화한 것이다. 꽃이 된다는 것은 빛난다는 것이다.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은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을 짚어보면『햇볕의 지문』에도 – 주로 시집의 2부에 수록되어 있는 – 꽃을 소재한 시들이 다수 발견되거니와 이는 단순히 서정적 자아의 투사投射가 아니라 그 꽃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에 열리는 만남과 마주침의 희열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 「미틈달」을 눈여겨 보자.
햇볕 한 점 끌어당기며
매달려 있는 연시
미세한 바람에도 떨어질 듯 흔들리고
노을은 내 발끝을 따라오다 멈추고
나무들은 11월의 발소리에 귀를 세우며
긴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낙엽은 어제보다
더 깊은 빛깔로 물들어 가고
가을숨소리 잦아들고
헐렁한 미틈달이
내 나이만큼 서늘하게 흘러간다
-「미틈달」전문
이 시에서는 시인 자신의 삶을 11월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말하자면 가을을 지나 소멸과 침묵의 계절(겨울)로 들어서는 그 쯤의 소회를 그린 시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틈달’이란 명칭에 있다. 우리 말은 참으로 세밀하고 정겨운 말들이 많다. 바람은 그저 바람이 아니다. 갈마바람은 뱃사람들의 은어로, 남서풍을 이르는 말이라 하고 높새바람은 봄부터 여름 사이에 태백산맥에 부는 바람이다. 샛바람(동풍), 하늬바람(서풍),마파람(남풍), 된바람(북풍)등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이 이름들은 바람의 하나 하나에 인격人格을 불어넣듯이 호명해 왔던 정겨움이 깃들어 있다. 일 년 열두 달도 그저 1월, 2월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매월每月의 특성에 맞춰 이름을 붙여 놓았으니 해오름달(1월), 시샘달(2월), 물오름달(3월), 잎새달(4월), 푸른 달(5월), 누리달(6월), 견우직녀달(7월), 타오름달(8월), 열매달(9월), 하늘연달(10월), 미틑달(11월), 매듭달(12월) 로 널리 불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은 자신의 인생의 절기를 11월이라 하지 않고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뜻의 ‘미틈달’을 차용하는 재치를 선보이고 있다. 11월과 미틈달의 어감 語感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러줄 때 의미 없는 몸짓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꽃이 되는 것처럼 어느 한 시절과의 진정한 교감交感을 이루는 정겨운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3.
최연하 시인의 『햇볕의 지문』을 시인이 지나왔던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감상感想으로만 읽어서는 안된다. 시인은 시간 너머로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 존재들이 여전히 시인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며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시인의 회상이 비록 뼈저린 슬픈 이야기라 할지라도 결코 감상感傷에 빠지지 않는 까닭은 잊혀지고 사라진 존재들이 남긴 사랑의 불씨가 오롯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구꽃이 눈처럼 날리던 날
은빛 꿈 날개에 싣고 날아가셨다
한 움큼의 삶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사라져간 아버지
샤먼의 주술에 귀를 열고 미세한 소식에도
경끼 하시던 어머니
절규보다 체념으로
세월의 길이만큼 깊어가는 상처
녹슬지 않는 그리움과 이름 석 자
빈 관에 새겨 넣고
죽어서야 옆에 눕는다
방랑으로 부르튼 서로의 발
꼭 안아 주며
애처롭게 보듬는 더운 숨소리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 「더운 숨소리」전문
오늘날과 달리 농경農耕의 가부장적 시대를 살다간 우리의 선조들은 어긋난 삶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묵언으로 버티어 내었다. 소리없는 절규가 미덕이었던 시대, 대책 없는 복종이 부덕婦德으로 받아들여졌던 그 시절을 다 보내고 한 자리에 누운 부모를 애처롭게 보듬는 더운 숨소리로 읽어내는 따스한 마음이 든든하지 않은가!
시인이 회상하는 것은 단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술 빚는 날」의 풍경, 집에서 해 먹던 「손칼국수」, 두레박을 내리다 갓난 아기를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 젊은 처자의 슬픔이 어린「우물」과 같은 시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 삶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희망이며, 삶의 소중한 가치를 공고히 하려는 다짐이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자아실현을 향해 가는 시인의 분투는 한낱 신기루에 머물지도 모른다.
4.
그리하여 시집『햇볕의 지문』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은 ‘꿈’과 ‘사랑’이다. 그 옛날 공자公子는 인간은 평생 공부를 행行하여야 하는 존재임을 역설했다. 배우고 (學) 익히는(習) 행위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기를 권고했던 것이다. 꿈이 없다면 인간은 성장을 멈춘 짐승에 불과하다. 꿈은 꿈의 완성에 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꿈을 꿀 수 있는 힘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하늘을 나는 꿈, 꾼다
갇혀 있어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꽃들이 피고 지는 동안
풍경소리 따라 은은하게 피어나던 첫사랑
다시 올 것만 같아
출렁이는 잎새처럼
창공을 나는 새처럼
나, 그렇게 날고 싶다
- 「날고 싶다」전문
난다는 것은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골든에이지 Golden Age에 가능한 일이다. 골든 에이지는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시기, 즉 70~ 80대를 이르는 말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어느 연령대가 가장 행복할까' 하는 논문을 발표한 적 있다고 하는데 70~80대가 가장 행복한 연령대로 조사됐다고 한다. 공부의 중압감, 취업, 결혼, 승진 등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자유로워지는 시기가 바로 이 때이기 때문이다. 날고 싶다는 꿈을 갖는 이상 우리는 더 이상 늙지 않는다. 이 꿈이 꺼지지 않고 오래 영롱한 꽃으로 피기 위해서는 또 무엇이 필요할까?
어디에도 있고
어딘가에도 있는
읽을 수 없어 말할 수 없는 말들은
허기를 달고 멀리멀리 튕겨만 나가지
반음만 내려도 팽팽해지는 숨결
푸석한 길 위에
꽃바람이 불어와 불꽃을 지폈지
사과처럼 빨갛게 익어
날마다 새로 태어나 꿈처럼 날아오르지
- 「사랑할 때」 전문
시집 『햇볕의 지문』은 우리에게 어디에도 있고 , 어딘가에도 있는 사랑을 찾아가기를 권유한다. 저 측은지심에서 시작해서 아가페의 초월적 사랑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새로 태어나 꿈처럼 날아오르는’ 힘을 염원한다. 페르시아 시인 잘랄루딘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 가 ‘사랑은 우주 모든 것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했듯이 최연하 시인의 꿈과 사랑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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