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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희 시집 『고구마껍질에게 고함』:독락獨樂을 포획하는 찰나의 시어詩語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1. 6. 14. 13:43

독락獨樂을 포획하는 찰나의 시어詩語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나의 시는

뒤돌아보는

기억 한 점

 

- 「기도 ·1」

 

1.

 

진명희 시인은 시마詩魔가 들린 사람이다.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던 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십 여 년 전에 등단한 이후 시집 『고구마껍질에게 고함』을 포함하여 여섯 권의 시집을 생산했다. 어찌 보면 이십 년의 시력 詩歷에 여섯 권의 시집을 낸 시인에게 시마가 들렸다고 하면 과한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희로애락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삶의 와류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 부조리가 횡행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오롯이 시로 육화肉化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마가 들린 사람으로 시인 진명희를 호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잠시 그의 시업詩業을 돌이켜 보면 첫 시집 『하얀 침묵이 되어』(2001)와 『강물은 머문 자리를 돌아보지 않는다』 (2004)에 드러난 든든한 서정성 抒情性은 이후 세 번째 시집『달빛, 홀로 서다 』(2010)에서는 ‘진실 또는 지혜의 발견’(이은봉)의 세계로 나아가고, 이러한 자아성찰은 네 번째 시집 『사람을 만나다』(2016)를 지나면서 ‘유목민적 사유와 공동체 의식’(김현정)의 심화로 확대되었으며, 충청도의 여러 문화유산을 즉물적 터치로 그린 기행시집『여정』( 2018)에 이르러서는 향토의 유물과 유적이 함축하고 있는 시간의 묵언을 신 내림을 받듯 받아 적은 시집으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 다섯 권의 시집을 통과하는 시마詩魔의 실체는 시인의 의식을 둘러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사유’, ‘시적 발화發話를 위한 언어의 쓰임’에 대한 탐구, 그리고 끊임없는 ‘타자他者와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라고 요약해서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시인의 ‘시간에 대한 사유’는 변화 속에 놓인 존재를 사랑과 화해 ·결속의 관계맺음으로 귀결되는 필연적 존재로 바꾸는 힘으로 영속하는 것으로서 ‘어둠 속으로 / 길을 떠나는’(「시간」)순환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발화를 위한 언어의 쓰임’은 ‘짧은 시에 관심을 갖고 호흡이 짧다는 둘레의 지적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그 작업을 지속해 왔다’(「유목민적 사유와 공동채 의식」: 구재기)는 언급에서 볼 수 있듯이 시에 필요한 언어의 쓰임을 직관을 포착하는 도구로서 지시적 언어의 경계를 허무는 인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직관의 언어를 ‘강열한 폐쇄적인 언어’, 또는 견과堅果의 언어로 파악한다. 이렇게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기의記意를 깨뜨리겠다는 타자와의 관계맺음이 서로 연기緣起되는 화엄세계를 찾아가는 시인의 행로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다섯 권의 시집 중에서 특히 세 번째 시집『달빛, 홀로 서다 』를 주목하는 바. 이 시집이야말로 진명희 시인이 추구하는 시관詩觀과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시세계를 예감할 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시집『고구마껍질에게 고함』은 윗글에서 파악한 시인의 창작론이나 세계관을 응축시킨 시집으로 읽힌다. 추측하건데 이순耳順에 다다른 시인이 시의 정의는 이러하다.

 

나의 시는

뒤돌아보는

기억 한 점’

 

- 「기도 ·1」

 

이 단호한 정언명법定言命法으로 규정된 시의 정의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독락獨樂의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시인의 행적으로 읽어야 마땅한 것이다.

 

『고구마껍질에게 고함』에 수록된 팔십 편의 시들은 4부로 나뉘어 있는데, 차례차례 ‘기억하기’. ‘돌아보기’, ‘마주보기’, ‘소리내기’와 같은 소제목이 붙어 있다.

 

소제목 ‘~ 하기’는 어떤 행동의 실천을 요구하는 언명인데. ‘기억’, ‘돌아보기’, ‘마주 봄’, 그리고 ‘소리 냄’은 각각 별개로 분지分枝되어 있는 개념이기도 하고, 시인이 겪은 여러 사건들로부터 파생된 상념들을 하나의 관념으로 묶는 연쇄의 단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시인이 의도하든, 아니든 간에, 시인이 감춰놓았거나 탐색해야 할 어떤 대상이 하나의 관념이거나 시인이 추구하는 ‘독락’의 저장소라고 가정할 때「편지」,「이별의식」,「탱자꽃」,「눈사람의 말」,「겨울, 뜰에 서다」.「그리움」, 등의 시에 등장하는 ‘그대’ 또는 ‘당신’은 전혀 짐작할 수도 없고, 구체화되지 않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의 사람아’(「갈등 1」), ‘사랑하는 사람아’(「갈등 2」)와 같은 친밀한 호명呼名으로 인하여 ‘웃음소리마저 숨죽였던 어머니의 기품’ (「어머니와 모시적삼」)에 드러난, 어머니와 같이 현존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시편에 드러난 ‘그대’ 또는 ‘당신’은 이 세상에 부재不在하거나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서 시인을 ‘~하기’로 분기奮起시키는 상징된 존재로 시집『고구마껍질에게 고함』에 자리 잡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어째든 ‘~ 하기’는 ‘그대’ 또는 ‘당신’이라는 모호한 대상을 향해 펼치는 시인의 독락의 행위이다. 이런 즐거움은 기억하고, 돌아보고, 마주보고 그리고 침묵으로 부르지 못한 ‘그대’ 또는 ‘당신’을 부르는, 모든 초혼招魂의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슬픔과 아픔과 외로움을 통과하고, 여과되고 난 후의 ‘기쁨은 넘치는 / 슬픔에서 온다, 슬픔은 / 터지는 기쁨에서 온다’( 「그리움」 1연 )는 ‘소리내기’는 세상을 득음得音하는 시인이 추구하는 사유의 마지막 독락인 것이다.

 

3.

 

이제『고구마껍질에게 고함』의 ~ 하기‘의 실체를 찾아가기 전에 앞에서 짧게 언급한 시인의 언어관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시인이 택한 언어는 간결한 소통의 열쇠가 아니라 오히려 폐쇄적인 자물쇠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시인의 언어는 지시指示가 아니라 지시 너머에 꿈틀거리며 너울대는 그림자와 같은 ‘느낌’을 보여주는데 있다. 진명희의 시 작업은 모든 촉수를 순간 순간에 열어놓고 감응하는 열정에 다름 아니며 이는 생활과 시를 한 묶음으로 대하는 진지함의 총화일 것이다.

 

위의 글은 필자가 시집『달빛, 홀로 서다 』를 ‘시간을 각인하는 몸의 언어’로 명명한 글의 일부분이다. 오늘날의 우리 시단의 시류時流나 시류詩類는, 시가 마땅히 지녀야 할 생략과 압축을 통한 운율의 조화를 경시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 많은 시인들이 post –탈脫, 넘어서는, ~후에- 의 접두어가 붙은 현란한 수사에 이끌려 갈 때에도 진명희 시인은 자신의 어법을 바꾸지 않는 올곧음을 보여주었다.

 

분명히 진명희 시인은 긴 호흡으로 시를 쓰는 유형이 아니다. 그의 대부분의 시들은 짧고 수식어를 배제한 단호흡을 지향하고 있다. 시인은 자아의 성찰로부터 출발하여 자연을 둘러싼 생명生命의 존귀함과 4차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인간의 소외에 이르기까지 한껏 시의 공간을 넓혀오면서도 그의 필법筆法은 여전히 견과堅果의 언어, 느낌의 언어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명희 시인이 추구하는 짧은 시는 어떤 사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잠시 사진 이야기로 시선을 돌려보자. 오늘날과 같이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기술은 CG computer graphics를 기반으로 하여 자유자재로 원본을 조작하고 합성하여 새로운 장면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의 초기 작업은 사진 한 컷에 작가가 추구하는 메시지를 담는 것 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흑백사진 「결정적 순간」의 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 Bresson은 ‘숨어 있는 의미를 포착하는 것’으로 사진을 정의했다. 그는 ‘찰라’를 대상 자체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으로 인식함으로서 선禪의 경지에까지 사진의 의미를 고양시켰다. 이를 쉽게 풀어서 말한다면 사진작가 구본창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스쳐 보내는 수많은 사물들, 풍경, 인물, 장소를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눈으로 재해석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대상물이 지니는 히스토리를 작가의 눈으로 읽어 내는 것, 숨겨져 있는 히스토리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사진예술이다.

 

그렇다! 진명희 시인은 바로 사진예술이 수행하는 작업, 현상과 관념이 일치하는 찰나를 포착하는 직관의 언어, 어떠한 외부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찰나의 신 내림을 받아적는 시승詩僧이 되기로 한 것이다.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직전까지 자신의 감각을 휘발시키려 하는 것!.

 

4

 

시집『고구마껍질에게 고함』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하기’. ‘돌아보기’, ‘마주보기’, ‘소리내기’로 나뉜 80편의 시는 시인의 소요逍遙 - 꽃과 계절의 감상-의 일상을 소재로 삼은 3부 ‘마주보기’를 중심으로 원융圓融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즉. 기억하지 않으면 돌아볼 수 없으며, 돌아보아야만 마주할 수 있고 마주하는 소통이 있어야 소리 내어 서로를 호명할 수 있다는 인새의 시월에 다다른 시인의 깨달음으로 받아들이면 족하지 않을까?

 

‘익어가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눈부신 하늘빛으로 행복을 안겨주며 넘치는 사랑을 깨닫게 해 준 그대’(「편지」)는 시인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돋게 만든다. ‘어느덧 삼월 지나고 / 오월도 지났는데 / 구월 지날 즈음이라고 / 귀띔해주는 // 친절한 무릎통증’(「세월」)을 서운하게 받아들이고 난 후, 시간은 이런 휴지休止의 선물을 건네어 준다.

 

점이란 글자에서

한 획을 빼면 짐이 된다

자리를 옮기면 잠이 된다

 

삶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잠을 즐기고 싶다

 

짐과 잠 사이

해가 돋고 해가 지는

나의 길을 되돌아 본다

 

- 「점을 빼면서」3

 

말놀이의 즐거움을 주는 재미있는 이 일화逸話를 단순히 시월에 다다른 체념의 술회로만 이해할 수 없다. ‘언덕을 넘으려면 숨이 차오르는 것/ 내려오는 길을 서두르지 말자...중략... 숨찬 언덕을 오르고 / 쉽게 내리는 길을 삭히며 가는 것’(「갈등(葛藤)」 2)이라는 토로나 ‘자리가 있다는 것은 / 살아있다’ (「자리에 대하여」)는 달관의 포즈는 치열한 내성內省의 분투 끝에 얻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내성 內省, 즉 자아를 투명하게, 엄밀하게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자책自責을 넘어서서 ‘마주보기’ 의 새로운 국면으로 자신을 인도하는 것이다. 시 「굼벵이」를 읽어 보자.

 

숨을 쉬고 있음이

부끄럽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

 

눈을 뜨고 밝은 세상을 보고 있음이

과분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세상은 찬란한데 나만이

누추하게 여겨질 때가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소망의 빛이 번뜩일 때

땅속 어둠에서 눈물을 마신 때가 있었다

 

세상에 나오면 강물은 흐르고 흘러가고

울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서고

 

잔인하게 뜨거운 햇살에 온몸을 태우고 나면

다시 땅속, 한 줌의 어둠이 된다

 

- 「굼벵이」전문

 

굼벵이는 애벌레, 매미나 딱정벌레와 같은 곤충의 유충이다. 길게는 몇 년을 땅 속에서 탈바꿈의 시간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만일, 그 인내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땅 위로 올라오게 되면 곧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성숙의 시간을 인내하지 못하고 자신을 원망하며 헛꿈을 꾸는 그 순간 ‘다시 땅속, 한 줌의 어둠이 되’는 어리석음을 알게 되는 생生을 어찌하면 좋을까?

 

 

뜨거운 고구마를

감싸고 있는 껍질을 보았어

 

참고 견뎌온

무수한 생채기들

부르짖을수록

굵어지는

몸부림의 침묵

 

감싸고 있는 껍질

그 깊은 무의미를 보았어

 

- 「고구마 껍질에게 고함」 전문

 

한 때 가난한 식탁에 올라 주린 배를 채워주던 구황식물 고구마는 이제는 심심한 군것질의 대용으로 사랑받는다. 솥 속에서 열기를 견딘 고구마가 익으면 우리는 무심히 껍질을 벗긴다. 시인은 껍질에 문신처럼 새겨진 생채기를 유심히 바라본다. 무기력하게,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껍질을 바라보며 문득. 안쓰러운 우리의 삶을 반추한다. 쓸모가 다하여 버려지는 물건과 사람들,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체면과 위선의 껍질들, 어찌 보면 세상을 살아가며 부딪치는 아픔과 상처는 저 고구마껍질처럼 아낌없이 버려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생각한다. 버림, 또는 버려짐은 슬픈 것이 아니라 엄숙한 것이다.

 

이 엄숙함을 체득한 자만이 ‘삶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잠을 즐길 수’있는 것이며, ‘자리가 있다는 것은 / 살아 있’는 감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버림’ 과 ‘버려짐’은 그 주체가 무엇이든 간에 자아의 통렬한 자각이 수행될 때 허무와 좌절의 아픔을 견디는 힘이고 삶의 또 다른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눈부신 것은 없다’(「경계」) 는 시인의 언명은 이것과 저것을 나누는 분별심으로 세상의 가치를 가늠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는 것이다.

 

5.

 

『고구마껍질에게 고함』은 시법詩法의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찬 시집이다. 즉물적 인상 印象을 사진 촬영의 기법으로 단숨에 포착하려 하려는 시인의 언어는 고정된 의미망 –언어의 그물-을 벗어남으로써 세속적 가치판단을 무화시킨다. 『고구마껍질에게 고함』의 시편들은 감성의 궁극에서 의식을 판단중지epochē 시킴으로서 타자他者에게 사유의 선택을 허락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시인이 그동안 일관되게 수행해 왔던 시법은 오로지 시인 자신에게로 던져지는 아픈 화살이기도 하다. 그러한 까닭에 ‘ ~ 하기’의 실체, 즉 ‘그대’나 ‘당신’은 시인이 지향하는 ‘꿈꾸는 나’ 더 나아가서는 ‘물아일체의 나’에 다름 아니다. 시「나의 우주宇宙」와 「선인장」은 『고구마껍질에게 고함』의 백미白眉로서 진명희 시인의 새로운 앞날을 기대하게 하는 시편으로 손꼽을 수 있다. 시「선인장」은 그동안 진명희 시인이 쌓아올린 ‘독락獨樂을 포획하는 찰라의 시어詩語 ’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가시로 표상되는 태어남의 고통이 이루어내는 불꽃은 죽음을 불사하는 한 송이 사랑이라는 절제의 미학으로 한껏 눈부시다.

 

날을

세운다

 

가시와

가시 사이

 

불꽃처럼

빨갛게

 

치솟는

사랑

 

꽃, 한 송이

피다

 

- 「선인장」전문

그런가 하면 「나의 우주宇宙」는 지금껏 보지 진명희 시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진술에 다름없는 독백을 보여준다. 인생의 끝을 향해 가는 우리 모두의 슬픔을 이겨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려고 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목적지가 없는, 걷는 행위의 목표가 없는 동네 한 바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고 다다르고 싶어 했던 낙원이 아니었던가!

 

하루에 한 시간씩 동네 한 바퀴 걷기로 한다. 걷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한다. 바람이 불어도, 새가 날아도 간혹 자동차가 지나쳐도 앞만 보기로 한다. 발끝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들의 부딪히는 소리조차도 듣지 않기로 한다. 내 안에서 요동치는 수십 갈래의 고뇌조차 그저 꾹꾹 밟기로 한다. 눈앞에 보이는 예쁜 꽃들의 유혹마저 외면하기로 한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곁눈질조차 안 하기로 한다.

 

이렇게 눈물 나게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간혹 지워지고, 때론 잊게 되고 더러는 사라지고 그러다가 끝내 멈추어질 것을 안다. 뼈저리게 잘 안다. 혼자서 영글어 가는 산속의 머루처럼 까맣게 익어갈 것도 안다. 이렇게 가여운 생각마저도 걸으면서 세우고, 다독이며 만들어가는 나의 작은 우주인 것도 안다.

 

- 「나의 우주宇宙」전문

 

시「나의 우주宇宙」는 삶의 희로애락을 이겨내려고 하는 달관達觀의 경지에 다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소외의 슬픔, 늙어감의 슬픔, 상실과 이별의 슬픔을 걷는 행위를 통해서 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슬픔과 하나가 되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이 시는 진명희 시인이 맞이해야 할 새로운 세계를 향해가는 첫 걸음일 것이기에, 우리는 마땅히 시인의 다음 행보를 기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