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의령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와 함께 살아온 큰 나무
지난 주의 《나무편지》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7호’이었다가 ‘천연기념물 제493호’로 승격한 ‘의령 세간리 현고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그 《나무편지》에서 제가 중간에 “나무가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경우는 이 나무 외에 없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이건 고쳐야 하겠습니다. 그 글을 쓸 때에도 사실은 좀 긴가민가했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쓰고는 지난 자료들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게 좀 찜찜했습니다. 《나무편지》를 띄우고 곧바로 제 글을 살펴 보신 한 분께서 게시판에 댓글로 다른 정보들을 정성껏 알려주셨습니다. 지금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만 두 그루의 나무를 적어주셨어요.
○ 〈문화재자료〉로 지정 보호하는 또 하나의 나무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4호인 〈광주 수완동 왕버들〉이 그 나무입니다. 또 한 그루는 문화재자료는 아니지만 ‘나무’라는 키워드로 잘 검색되지 않는 광주광역시의 〈괘고정수(掛鼓亭樹)〉입니다. 이 두 그루의 나무 이야기도 다시 찾아보고, 《나무편지》에서 전해드리도록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나무편지》의 초고를 작성하면서, 오래 된 자료들을 더 세심히 살펴보지 못해 잘못된 정보를 전해드려 죄송합니다. 더 꼼꼼히 챙기겠다는 마음,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앞으로도 더 많은 지적과 더 좋은 정보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무편지》를 아껴 살펴봐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의령 세간리 현고수〉 이야기가 그래서 마음에 남아, 오늘은 같은 마을, 같은 어른의 이야기를 담고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이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의령 세간리 현고수〉와 같은 마을에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입니다. 〈의령 세간리 현고수〉 보다 훨씬 먼저인 1982년에 이미 천연기념물 제302호로 지정된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입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사진으로 담은 은행나무가 바로 그 나무입니다.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의령 세간리 현고수〉와 마찬가지로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와 관련 있는 나무입니다.
○ 2005년에 복원한 곽재우 장군 생가 앞 마당에 서서 ○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곽재우 장군의 생가 바로 앞입니다. 곽재우 장군 생가는 조선 중기 사대부의 살림집의 전형적인 구조로, 지난 2005년에 복원한 고택입니다. 처음 이 나무를 찾아보았던 2000년 봄에는 생가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그냥 나무 앞에 약간의 공터만 있었을 뿐이고, 곽재우 장군의 생가 자취는 찾을 수 없었지요. 다만 이 마을이 곽재우 장군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이야기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단장하고 역사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의령 세간리 현고수〉 근처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마을의 골목길을 돌아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나무 주변과 진입로를 잘 정비하고, 주차 공간까지 마련했습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단장한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600년 세월을 이 자리에서 살아온 나무로 짐작합니다. 곽재우 장군이 1552년에 태어났고, 이 자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게 1592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장군이 이 마을에서 자라던 때에 이미 100년을 넘은 꽤 큰 나무 가운데 하나였으리라고 볼 수 있겠지요. 나무는 지금 높이가 25미터 가까이 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9미터를 넘습니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가운데에는 굉장히 큰 나무 가운데 한 그루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마을 사람들의 극진한 보호 덕에 나무의 생육 상태는 무척 건강합니다. 이 나무는 특히 굵은 가지에 발달한 기근氣根과 그에 얽힌 전설로도 유명한 나무입니다.
○ 독특한 모양의 기근과 그에 얽힌 전설이 널리 알려져 ○
기근은 특별한 게 아니고, 은행나무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현상인데,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에서 발달한 기근은 여느 은행나무의 기근과 다소 다르다는 거죠. 나무의 가지에서 두 개의 기근이 삐죽 나와서 그리 크지 않게 자란 상태입니다. 두 개의 기근이 바짝 붙어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옛 사람들은 여자의 젖꼭지를 떠올렸던 모양입니다. 다른 은행나무의 기근이 남자의 성기를 닮은 것과 비교되는 형태이지요. 아마도 이 나무의 생김새가 여느 은행나무에 비해 단아한 여인네처럼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모양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젖이 나오지 않으면 이 기근 아래에서 정성을 들이면 젖이 잘 나온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 왔습니다.
예전에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 바로 옆에 작은 살림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화재가 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목길 안쪽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살림집들이 연달아 화재 피해를 받고, 또 은행나무 가지의 일부도 불에 타는 피해를 보긴 했지만, 다행히 나무의 생육에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불에 탔던 가지를 내려놓고, 다시 새 가지를 틔워올리면서 나무는 이제 언제 그런 참화가 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의령 세간리 현고수〉와 함께 이 마을의 자랑이자 자부심인 곽재우 장군의 영령의 자취로 남게 됐습니다. 봄 바람 차츰 우리 곁에 다가오는 듯하지만, 나무는 아직 푸른 잎을 틔우지 않았습니다. 잎 한 장 없이 나무는 이 땅의 싱그러운 삶의 역사를 증거하며 푸르게 살아있습니다.
○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더 큰 성원 이어주시기를 …… ○
새 책 《나무를 심은 사람들》 이야기 보탭니다. 잦아드는 듯했던 바이러스 사태가 혼돈스러운 날들이 이어집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여전히 무거울 수밖에 없겠네요. 한 순간의 평안을 구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지 싶습니다. 더 건강에 신경쓰시며 평안한 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새 책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성원 이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성원하시는 모든 분들께 의미있는 ‘한 권의 책’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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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살이의 들고남을 담고 푸르게 살아있는 나무를 생각하며
2월 24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
솔숲닷컴(http://solsup.com)의 '추천하기'게시판에 '나무 편지'를 추천하실 분을 알려 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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