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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인론·시평

김정희 시집『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 : 봄꽃, 고래, 여럿이 부르는 노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9. 8. 30. 09:42

跋文

봄꽃, 고래, 여럿이 부르는 노래

나호열 (시인, 한국문인협회 표절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

 

 

 

시와 시인

 

 

한 편의 시는 그 시가 담고 있는 내용과 형식 그리고 비유의 적절성에 의해 그 값어치를 평가 받는다. 그에 비해 한 권의 시집은 개별 작품의 수월성을 넘어서서 마치 완성된 그림조각퍼즐처럼 큰 이미지 하나를 보여준다. 개별 작품에서 언뜻 비쳤던 시인의 그림자가 시의 집, 시집詩集에 이르러 보다 선연한 풍모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 편의 시가 다루는 사건과 사물의 이야기가 감지하지 못했던 시인의 세계관과 삶의 대응방식, 더 나아가서 시인이 꿈꾸는 세계가 담겨질 때 한 권의 시집은 반짝이는 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언명은 보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시인을 포함하여 예술가는 안일한 구습 舊習을 타파하는 형식과 내용을 아우르는 새로움에 대한 열망과 긴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이 새로움과 더불어 자신이 구축한 세계인식의 일관성과 통일성이 길항 拮抗한다는 사실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문학은 의미(뜻)를 지니고 있는 언어의 속성 때문에 언행일치 言行一致의 트라우마를 견뎌내야 하는 의지의 실험임을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독자의 호불호 好不好에 상관없이 시인은 일관성과 지속성을 작품을 통해 투시하는 노력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희 시인의 시집『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는 이전의 시집 『너도 봄꽃이다』 (2013),『고래에게 말을 걸다』(2015)와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연관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봄꽃’이 상징하는 인내와 부활, ‘고래’가 함축하고 있는 광활한 자유, 그리고『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여럿’ 즉 함께하는 삶에 대한 희망과 실천이 만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봄꽃과 같은 존재의 의미

 

 

겨울이 길수록 봄에 대한 열망은 크다. 다시는 소생할 것 같지 않아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어서 봄은 끝끝내 희망의 상징인 것이다. 북 아메리카의 체로키족은 3월을 ‘마음을 움직이는 달’이라고 했고,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아라파흐 인디언들은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는 세상을 깊게 바라보았다. 시집『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의 75 편의 시 중에서 ‘봄’과 관련된 시들이 다수 목도되고 있는 바, 이를 뒤집어 본다면 오늘날 다중 多衆의 삶이 찬 바람이 불고 얼어붙은 동토와 같은 신고 辛苦로 가득 차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며 그만큼 낮은 곳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그 자리에 서서, 그럼에도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시인의 꿋꿋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12형제 중 가장 못난 손가락

무거운 겨울옷 하나하나 벗으며

깊은 향을 풍기는

레드와인 닮은

속 깊은 2월

따사한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희멀건 너의 얼굴에서

3월의 그림자를 보았다

 

가진 것 다 내주고

애꿎은 손등만 비비던 네가

소파에 누워 깜빡 잠이 든다

잔잔하게 꽃송이 톡톡 터지는 꽃길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시 「레드와인」 전문

 

 

시인은 2월을 붉은 와인으로 물화 物化하면서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 고통의 끝과 희망의 시작을 달콤한 술이 주는 취기醉氣와 그 취기로 말미암아 깜박 든 잠으로 이어가는 감각적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 꽃송이 톡톡 터지는 꽃길에서 춤추는 또 하나의 자아를 출현시킨다. 꿈은 심리적 압박이나 결핍에서 피어나는 꽃, 아직 피어나지 않은 봄꽃이다. 절망 없이 희망은 피어나지 않는다. 희망이 간절하지 않으면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이 소중한 이유는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며. 행복은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래가 품은 바다와 같은 세상을 꿈꾸며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봄꽃은 신산한 삶을 견디며 꿈을 잃지 않는 우리 이웃을 닮았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 나가는 젊은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장애자들,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독거노인들, 그들 모두 불러지는 이름은 다르지만 사람다운 삶 - 동등한 자존감을 보장받는 삶-을 추구하는 꿈은 하나의 대동사회 大同社會(유토피아), 공동체적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김정희 시인은 그의 두 번째 시집『고래에게 말을 걸다』에서 공동체의 삶, 평등한 삶을 바다로 표징하고, 그 바다를 향해가는 우리를 ‘고래’로 인식하므로써 휴머니티의 실체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다시 시인이 포착한 ‘고래’의 의미를 반추해 보자.

 


그렇게 쉽지는 않다

언젠가는 먹이가 될 줄도 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목에 힘을 주고 앞에 선다

이 곳에서

함께 숨 쉬고 걷고 싶다고

눈짓을 보내다

어렵게 한마디 한다

더불어 살자


-「고래에게 말을 걸다」 전문

 

 

고래는 포유류이면서도 바다에 사는 거대 동물이다. 바다는 육지와는 달리 역동적이며 그 역동적 바다를 고래는 유유히 떠다닌다. 우리에게 바다와 고래는 자유의 상징이면서 머무를 수 없는 이상 理想의 세계이다. 나무와 꽃과 같은 식물적 이미지로 전환되는 국면은 시인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 조금 멀리서 정적 靜寂으로 관조하기엔 급박한 상황임을 암시한다. 바다에서 고래는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다. 바다를 지배하고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고래는 시인에게 있어서는 이루고 싶은 꿈의 상징인 동시에 나를 겁박하는 갑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갑이 되고 싶은 열망은 시인 앞에 공포스럽게 서 있는 갑(고래)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난경에 처해 질 수 밖에 없어 ‘어렵게 한 마디 한다/ 더불어 살자’는 화해의 한숨으로 뒤바뀐다. 『너도 봄꽃이다』에서『고래에게 말을 걸다』로 이어지는 시간의 영역은 오늘의 세계가 더 냉혹하고 부조리한 국면으로 치달았음을 증언하는 전쟁터가 된다. 말할 나위 없이 그와 같은 국면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곳곳에 또아리 틀고 있다는 사실에 다름 아닐 터이다. 턱밑까지 차오른 부조리 앞에서 동화 同化와 투사 透寫라는 서정시의 본령은 제 자리를 찾기 힘들다. 세상사를 수긍하고 관조하기엔 오늘의 삶은 핍진 그 자체라는 인식이 곳곳에 선혈처럼 남아 있음은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봄꽃에서 고래 사이의 삶의 기록」에서 발췌

 


우리는 마땅히 고래가 되어야한다. 망망한 대해를 가로지르고 자맥질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자유!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 수 천 번 만난 순간과 굴러가다 / 곱디고운 모래로 강가에 앉아 있는’(「모래알」마지막 부분)힘 없는 수동적 존재이며. 처음 엔 멋진 신사였다가 반백 년 가까이 살면서 ‘넓어진 이마에 / 몇 가닥 남은 머리카락 쓸어올리는 / 훨씬 더 오래된’ (「낡은 집」 부분) 쇠락해가는 낡은 집이 되어가는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 점을 짚어본다면 여기 고령화 사회가 야기하는 수명연장의 이면 裏面에 자리잡은 수동태의 삶, 낡고 쇠락해가는 아픔을 조명한 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소변 몇 번 보셨어요

김치가 없어서 못 먹었어요

아니 소변 몇 번 보셨냐고요

글쎄 김치가 냉장고에 없었다고요

화장실 몇 번 다녀오셨어요

아 밥을 못 먹었다니까

저녁 못 드셨다고요

잘 드셔야 빨리 집에 가시는데

김치가 없어서 밥 못 먹었다

오늘 밤도 어제와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오늘 다섯 번은 갔다 온 것 같아요

옆 침대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렇지 맞아 앞 침대에서 맞장구를 친다

간호사는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대화는 허공을 떠돌다

파란 잉크를 채운 볼펜으로

종이 위에서 헛발질하다 미끄러진다

 



언제부터인가 어렵지 않게 우리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간판을 마주하게 된다. 공동체 삶, 다시 말해서 농어촌의 와해로 빚어지는 도시화. 핵가족화는 가족의 의미마저 퇴색시켰다. 건강을 지키고 무력한 이들을 보호한다는 이른바 복지사회의 구현이라는 상찬 賞讚도 있지만 신 고려장이라는 냉소 또한 혈연의 무색함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족 간의 단절과 소외는 우리가 마주한 또 하나의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울에 젖게 한다. 위의 시는 치매를 앓는 노인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대화는 겉돌고 무의미하다. 대화는 허공을 떠돌고 의미 없는 대화는 삭제되고 의례적 확인 점검의 절차만이 남는다. 그럼에도 시인은 이 시에「아름다운 슬픈 소통」이라는 제목을 달아놓았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등가 等價이지만 모순개념은 아니다.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문장과 ‘슬퍼서 아름답다’는 문장은 진술의 차원에서는 사실이 아니지만 정서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의미망을 포착할 수 있다. 아마도 시인이 의도하는 바는 대화자 간에 서로의 언명(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즉 ‘늘 소변 몇 번 보셨어요?’라는 질문에 ‘김치가 없어서 못 먹었어요.’라는 답변은 불통이지만, 간호사는 답변하는 대화자가 치매환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공고한 불통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불통은 슬프지만, 아름답지 않지만 상대에 대해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여겨 본 시인의 아름다운 소통이 버스 요금을 카드로 냈다고 우기다가 마지못해 오 천원 지폐를 꺼내든 노인을 바라보는 「흔들리는 마른 가지」에 까지 닿아 있음을 지나칠 수 없다.

 


곱게 접은 오 천 원 짜리 지폐

야원 가지에 메달려 떨고 있다

잔돈이 없다는 목소리 따라

노신사가 휘청대며 자리에 앉는다

 

- 「흔들리는 마른 가지」마지막 부분

 

여럿이 함께 하는 삶의 구도 求道

  


  

앞에서 ‘고래’는 자유의 징표로서 꿈을 실현하는 을 乙로 간주하면서 그 을이 갑 甲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분석한 바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쥬 noblesse oblige는 권력이나 부 富를 가진 사회의 지도층에 필요한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는 우리 속담의 뜻도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 배금주의 拜金主義에 대한 성찰의 부족으로 가진 자 / 없는 자 간의 불신과 증오가 점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것, 부를 쟁취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되거나 징벌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지만 탐욕을 버리지 못한 을 乙을 정의로운 존재로 정당화 할 수 없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탐욕의 정체는 무엇일까? 러시아의 문호 文豪 톨스토이의 단편 중에 ‘바보 이반’ 이야기가 있다. 머슴을 살던 이반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달려간 곳까지 너의 땅으로 주마.’ 이 말을 들은 이반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숨차도록 달려 다시 주인집 대문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 명심보감 明心寶鑑에도 탐욕을 경계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큰 집을 가지고 있어도 누워 잠들 자리는 한 평에 불과하고 문전옥답이 있어도 하루 먹는 음식은 쌀 한 홉에 불과하다.!’

 

 

시집『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는 시인 김정희의 삶을 둘러싼 풍경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의 그늘의 스산한 풍경을 그린 「대신 터미널」 같은 시도 있고, 변화하는 시류 時流에 떠밀려가는 삶을 그린 「너의 사막에도 봄은 온다」와 같은 시들, 그런가 하면 목가적 삶을 따라가는「옥천 하계리」같은 시들도 있다. - 여러 계열의 시들이 있으나 그 중 필자에게 인상깊게 남겨진 시들이다 - 그러나『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의 뼈대를 이루는 중심축으로 「담쟁이의 일기」와 「이 발자국 들꽃 같기를」이 두 편의 시를 주목하여야 한다고 본다. 일견 여성적 화자 話者를 빌어 식물적 상상력에 의지한 서정시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이 시들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탐욕은 누구에게나 깃들어 있는 유령과 같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최소한의 욕구라 자위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정당화하기 마련이다. 옛 글에 만초손 겸수익 滿招損 謙受益이라 하였다. 가득 차면 흘러 넘치고, 겸손하면 이익이 있다는 말인데 절욕 節慾은 인간에게 있어서 넘어설 수 없는 도道의 경지일 지 모른다. 그리하여 탐욕은 반드시 분쟁을 일으키고 남을 해치며 결국엔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물욕, 성욕, 명예욕 등등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행위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초를 감내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탐욕은 스스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로서 극기 克己의 수행을 요구한다.

 

발자국 남기는

걸음 걷기가 두렵습니다

쏟아낸 말이 새겨진 발자국에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니까요

 

한발 내딛고 좌우를 살펴봅니다

혹시 이발에 다친 생명이 있는지

발자국 때문에 상처 입은 이가 없는지

한발을 살며시 들었다 내립니다

 

다시 걷는 걸음이

다른 이의 아픔을 그대로 밟고 갈까봐

또 두렵습니다

 

오늘 걷는 이 한걸음은

누군가의 뜰에서

여유롭게 피고 지는

들꽃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 발자국 들꽃 같기를」전문

 

이 시는 공자가 설파한 인 仁의 실천 방도로서 제시힌 충서 忠恕를 바탕으로 둔다. 충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서는 타인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소극적 태도이다. 시「이 발자국 들꽃 같기를」는 충보다는 서 恕를 연상하게 한다. 서 恕는 내가 싫어하는 일은 타인 또한 싫어하는 일일 것이므로 스스로 욕심의 행동을 거두는 것을 말한다. 수신 修身이 무엇인가? 자신의 언행을 감히 두려워하는 마음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다음으로「담쟁이의 일기」를 읽어보자.

 

내 잘못이 아니랍니다

바로 설수 없어서

기대어 섰을 뿐입니다

땅으로 내려놓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곧 완성되는

푸른 소매가 달리 외투에

연두색단추를 달아 입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시원하게 여름을

지낼 수 있고 비도 피할 수 있답니다

저도 그 옆에서

당신 그늘 고마워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다

혹시 그대 눈빛이 어두워진다면 내 눈이

그대가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또는 친구로 하루 종일 쫑알대며

종달새처럼 곁에 머물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 시는 이 발자국 들꽃 같기를」과 달리 충 忠, 의 측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즉 적극적으로 이타심을 일으키고 행동하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타심 利他心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미미한 존재로서 담쟁이는 마땅히 상승욕구를 가져야 하는데, 담쟁이는 담벼락을 떠날 수도 없고 떠난다하여도 이곳보다 더 낮은 바람 불고 황량한 들판의 들꽃이 되고 싶다고 한다. '오늘 걷는 이 한걸음은 / 누군가의 뜰에서 / 여유롭게 피고 지는 / 들꽃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발자국 들꽃 같기를」마지막 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상생 相生을 부르짖으면서도 탐욕의 그늘에 가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간극이 벌어지는 불통이 심화되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볼 때 담쟁이의 삶과 들꽃의 삶은 다같이 공생 共生의 보시 布施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발자국 들꽃 같기를」과담쟁이의 일기」가 뛰어난 시편이라고 말하기 전에 이 두 편의 시가 함의하는 바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강조하는 까닭은 시집『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를 통해서 김정희 시인의 시작 詩作이 갖는 의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희 시인에게 ‘시 쓰기’는 무심한 자신의 발걸음이 뭇 생명에게 위해를 가할 지 모른다는 측은지심의 강화, 시인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탐욕을 제어하면서 자신의 염결성 廉潔性을 가다듬는 수신 修身의 실천에 있다고 볼 때 김정희 시인의 앞으로의 행로가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

 

 

저는 김정희 시인의 첫 시집『너도 봄꽃이다』(2013),『고래에게 말을 걸다』(2015), 이번 『혼자가 아니라서 더 예쁘다』에 이르기까지 각 시집의 첫 번째 독자가 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시인에게는 두 갈래 길이 있다고 보는데, 그 하나는 만고에 남을 작품으로 문명 文名을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시작 詩作을 자신의 삶을 기름지게 하고 겸허하게 만드는 수행의 도구로 받드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만 예술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하는데 의의를 둡니다. 다른 이들이 걸어가지 않은 새 길을 만드는 일이지요. 그러나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 범사 凡事를 바라보는 눈을 밝게 하려고 초지일관의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김정희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말하기를 앞으로 2년 마다 꼭 시집 한 권씩 내겠다고 합니다. 그 인연이 이어지도록 오래 함께 해야지요.

 

나는

산 중턱에 앉아 있는

늙은 바위

너는

그 곁에 서서

솔방울 날리는 노송

천년을 돌고 돌아

친구로 만나

두 손을 맞잡고

바라보고 있다

 

서너 달 남았으니

낯선 세상으로

여행을 준비하라는 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말없이 서있다

툭툭 비로 내리는 너를 안아

기지개 켜는 봄 햇살 아래

가만히 내려놓는다

오늘

내가 지은 밥 한 끼 같이하고

오랜 시간 뒤

나는 아름드리나무

너는 곁에서 노닥이는 종달새

다시 만나

깔깔깔 놀아 볼가나

 

 

-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