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동근 萬物同根의 슬픔을 풀어내는 서사 敍事詩
나호열(시인)
1.
한 편의 시는 시인 詩人이 부르는 고해 告解이며 다른 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 哭婢이다. 한 편의 시와 시인과 독자의 행복한 만남은 시인이 지니고 있는 감성이 조작된 감정의 몰입으로 넘쳐나지 않고 세상을 측은지심 惻隱之心으로 바라보고 세상의 모진 풍파마저도 사랑으로 껴안으려는 교감과 공감 共感이 이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한 편의 시에 농축된 삶에 대한 사유의 치열한 진정성은 고해와 곡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몰아沒我의 기쁨을 누리게 만든다.
강치두 시인의 첫 시집『남자의 가방』은 시인이 마주한 좌절과 슬픔의 기록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그 좌절과 슬픔이 삶을 이어가는 희망의 토대임을 증명하는 일관된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남자의 가방』에 질펀하게 깔린 페이소스는 고해와 곡비의 울타리를 허물면서 만물에 깃든 생멸 生滅의 슬픔을 조명하고 극대화 하는 것과 나를 둘러싼 자연과 사람들에게서 받는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축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해방 이후 우리의 생활사 生活史의 현장으로 깊숙이 안내한다. 농촌사회의 빈곤으로부터 고도의 산업화가 이룬 풍요와 도시화, 공동체의 와해와 극단의 개인주의, 아날로그의 사유에서 디지털의 사유로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들의 자화상을 『남자의 가방』에서 대면할 수 있음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2.
대교약졸 大巧若拙을 떠올린다. 老子의『도덕경道德經』제 45장에 나오는 이 구절이『남자의 가방』의 일관된 시법이다. ‘섣부른 기교가 짐짓 졸렬해 보이는 듯한 순박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경구를 시인은 이미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흔히 우리 현대시에 보이는 현란한 비유는 시 속에서 시인을 사상捨象하고 화자 話者를 내세워 시인의 체험을 상상의 객관적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시인이 서사 敍事 속에서 시를 구현하려고 할 때에는 은유나 상징 같은 비유는 그 효용성이 떨어지기 쉽다.
강치두 시인은 유년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전 생애를 호명하여 편편의 기억들을 그의 시에 불러 모은다. 시인이 호명한 편편의 기억들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 단순한 회억回憶이 아닌 오늘의 삶을 지탱하는 원초적 생명성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삶이 지닌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것들이 남긴 상처마저도 미래를 지탱하는 양식으로 삼을 수 있음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절박한 서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비유가 된다. 시「내비게이션의 질주」을 읽어보자.
약도(略圖) 켜놓고 달리는 길, 그녀 말소리에 홀려 앞만 보고 달렸다 목적지에 이르러 돌아보니 내가 찾는 이는 길의 끝에 있지 않았고 달려온 그 길 위에 있었다 발자국 소리 따라오는 길을 가라 부르튼 발목에게 술 한 잔 받아 주고 풀잎에 매달린 이슬과 날아가는 기러기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미처 따라오지 못한 나를 기다렸다
우리의 삶은 교육을 통해서, 전통적 문화의 양식을 통해서 앞길을 예견해 왔다.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비게이션에 함축된 개인의 사회화는 자칫 자아의 ‘미처 따라오지 못한 나를 기다리는’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시집『남자의 가방』은 이와 같이 반성과 성찰이 결여된 삶을 되돌아보는 기록이며 그 기록을 통해 앞으로 남은 생生 의 자유로움을 염원하는 첫 출발점인 것이다.
이렇듯 강치두 시인이 호명하는 것들은 미물微物들이 많다. 보잘 것 없는 풀꽃들. 무심한 나무들, 어패류 등등이 시인의 시선에 포착될 때 그것들은 삶의 열패감과 더불어 생명의 끈질김을 증명하는 신화가 된다.「질경이」,「미꾸라지」,「양은 주전자」.「중앙법원 배롱나무」,「날개 접지 못한다 - 청자상감운학문매병」,「진주조개」, 「단풍나무」,「노숙자」등 많은 시편이 보잘 것 없는 것, 힘 없는 것, 쓸모없는 것들에게 보내는 연민으로 가득차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시들이 사물들을 의인화 擬人化하는 전통적 서정 抒情의 표출을 통해 삶의 애상 哀想을 강조하고 있다.
밑바닥 진흙 속에서 흐린 물 마시며
없는 듯 흔적 없이 살았다 태어난 자리
속 깊게 파고들어 떠날 줄 몰랐다
마르고 투박한 손에 잡혀 올라 어느
어둠속 떠나와 경동시장(京東市場) 수조에
담겨 맥없이 헤엄 치고 있다 무심한
흥정으로 공양할 자 정해지자 검정비닐
속에 몸 구겨 넣어지고 그 속에
물 한 그릇 부어져 또 다시 깜깜한
길 나선다 부엌 형광등 불 빛 눈부신
호사도 잠시, 굵은 소금 뿌려지고
한꺼번에 몸부림치며 흰 거품 물고
찌꺼기 토해낸다 소금으로 절여지는
고통을 지나 객지 물로 마지막 몸
닦자 입가 수염까지 움직이며 거친
숨 헐떡인다 캄캄한 솥에 다시 갇힌 채
쇠를 뚫고 오르는 불길에 몸 하얗게
눕는다 칼날이 춤추는 믹서기 안에서
밀가루 반죽처럼 몸 섞고 삐쩍 마른
시래기, 매운 고추 함께 고아 허기진
입속으로 들어간다 사는 동안 눈먼
장구벌레 몇 마리 탐냈을 뿐 늘
탁한 물 들이마시며 산, 버둥대는
몸 수백 마리 한꺼번에 밀어 넣고 땀
닦는다 소리 없이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진 끝자락, 모진 칼날에도 부서지지
않는 가시 입안에 맴돌고 곡선 많은
창자 속을 다시 헤엄치기 시작 했다
- 시 「미꾸라지 」전문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순명 順命하지 못하는 비극이 어디 미꾸라지에게만 있을 것인가!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조용하게 치러지는 세상살이를 넌지시 견주어보는 슬픔이 먹먹해지는 것이 오늘의 치열한 무한경쟁의 한 장면이 아닌가!
흙으로 태어나 천 도가 넘는 불가마 속에서 술병으로 환생하고 마지막엔 무덤 속에 박제가 되어버린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그늘 진 땅에 붉게 공양하고 몸을 푼다/ 궂은 날 수행 길 벗어난 붉은 살 한 점, / 유리창에 붙어 산골소년 불러놓고/ 물길 내더니 이내 나뭇잎 배 되어 떠난’ 단풍나무, ‘나흘을 굶었다 심장 속에 구겨 넣었던/
손바닥을 펴고 ,두 손을 내밀었다 / 엎드려 올려다 본 얼굴, 거리가 아득하다/ 다시 손을 거둔다// 내일이면 이 바닥마저 비워야 한다/ 박수소리 떠나고 모두가 떠난 자리,/ 자판기 커피 한 컵, 요구르트 한 개,/ 무너져 내린 생을 지키고 있는 ‘노숙자’ ,
입 속에 생살을 파고드는 모래알을 받아들이고, 그 생살에서 태어나는 진주를 남기는 진주조개 는 우리 모두의 이면에 감춰진 자화상으로 각인된다.
3.
시인이 목도하고 있는 애상哀想이 애상哀傷에 그치고 만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강치두 시인의 사물에 대한 냉철한 관찰을 통해 얻은 삶의 비극성은 다른 각도에서 삶의 끈질긴 연속성과 맞닿으면서 희망을 놓지 않는 국면으로 이행해 감으로써 시의 건강성을 확보한다 .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아무렇게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극복의 의지 속에서만이 이루어지는 것!
누가 나를 앉은뱅이라 부르면 그냥 웃는다 여름의 태양이 이마 위로 지나가면 당당하게 손 흔드는 앉은뱅이다 신작로에 질긴 뿌리 밀어 넣을 때부터 앉은뱅이로 살기를 다짐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앉은뱅이로 바닥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하겠지만 두 눈 꼭 감은 바람의 등에 태워 차전자車前子를 산허리까지 보낸다 짓밟혀 본 앉은뱅이는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수레바퀴나 타이어 바퀴가 굴러와도 가부좌를 틀고 물러서지 않는다 밟힐수록 새파랗게 털고 다시 일어선다 길이 있는 한 어디든 가고 함께 넓혀간다 누가 앉은뱅이를 비웃는가 수행은 높은 곳, 넓은 대지에서 하는 거라 말하지 말라 비가 오는 날은 푸른 하늘을 들여놓지 말고 비를 맞아라 짓밟고 가는 구둣발에 꽃씨를 묻혀 보내는, 길 잃은 등산화 밑바닥에서 무너진 달을 밀어 올리는
- 시 「질경이」 전문
이 빛나는 시 한 편이 대교약졸 大巧若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삶의 진정한 강자가 권력자가 아니라 민중이며, 가진 자가 아니라 백절불굴 百折不屈의 의지로 뭉친 가난한 자들의 희망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오롯이 녹아들어 있음을 이 시를 통해서 확인한다. 행갈이에 다소간의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시「냉장고 속의 봄」또한 시인의 소소한 발견을 통해 체득한 생명의 소중함을 상기시키는 예로 들 수 있다. 냉장고 속에서 냉기를 이겨내고 봄이 되자 싹을 틔운 당근을 통해 장삼이사 張三李四들의 고단한 삶과 희망을 놓지 않는 인내를 배운다. ‘끝내 토막나 / 펄펄 끓는 닭볶음탕에 주저 없이 뛰어드는’ 용기 마저도!.
4.
사물을 통해 생명과 삶의 영속성을 추구하는 시집『남자의 가방』의 또 하나의 축 軸은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사 家族史이다. 어디서나 누구나 그러했듯이 빈곤한 산촌에서 태어난 시인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의 끈끈한 정을 통해 겸양의 세상살이를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나눠주기 위해서 속을 채우고 / 빈 속은 늘 세상시름으로 채우며/ 별동별로 져’( 「양은주전자」 부분) 끝내 영광을 얻지 못한 아버지, ‘찔레순 닮은 아들 묵정밭 혼자 남겨 두고 떠나는, 없는 것뿐인 헤진 가방에 끝도 없는 시름 가득 담고서 길 나선’, ( 「그 새벽」 부분) 어머니,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소마굿간 아궁이 불 지피고 있었다 /무 순(筍) 같은 막내 곁에서 졸고 /그 웃 녀석은 하늘 돌리는 팽이 깎고 / 구멍 난 고무신 만지작거리며 나는 불꽃 깊숙이 마른 수수대 밀어 넣’는 ( 「눈이 사선으로 내리고」 부분) 형제들과 함께 한 공동체의 미덕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미친 사람처럼 두들기다 멈추고 콩대를 들춰 올리자 흙바닥으로 몸을 숨긴 창백한 콩들이 가득하다
- 「타작 打作마당」 마지막 부분
흙바닥으로 몸을 숨긴 창백한 콩들이 어찌 콩으로만 보이겠는가? 그 작은 알갱이들은 우리의 피붙이, 우리들의 창백한 얼굴이 아니었던가? 가난을 이기기 위해 시인도 대처로 나온다. 6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어난 서울에서 굳이 숨지 않아도 숨게 되는 생활 너머에 고향을 그리는 매우 유니크 한 시가 있다.
바래봉 향하여 줄달음치는 봄날에 그녀를 만났다. 먼 길 가겠다며 거친 손잡았고 나는 산 넘어 무지개를 찾아 떠났다. 갑자기 소낙비를 만나 빈집에서 끓는 피 주고받으며 젖은 옷 말렸다. 서로 바라보면 어둔 밤하늘에 별이 뜨고 은하수를 건너가는 내내 그는 내 입에 귀를 대주었다. 벼이삭들이 고개 숙인 채 소리 내 흔들리는 섬진강* 상류를 건너고, 눈 덮인 일월산*을 넘어서 다시 한강 앞에 섰다. 그는 강을 더는 건너지 않겠다며 버티다 끝내는 처음 그곳으로 돌아가겠다며 등 돌렸고 소리쳤다. 그때 갑자기 숨이 멎었다. 아내의 육중한 다리가 내 목을 누르고 있었다.
2
달고 쓰고 매운 채소 듬뿍 넣어 끓인 된장찌개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말하자, 아내는 무지개 타고 넘어가는 꿈 팔아먹은 죄 묻겠다며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새벽, 아내를 바라본다. 5월의 산등성이를 닮은 곡선은 지나온 강물에 다 흘러 내렸고 감추고자 하였던 흰 머리칼은 베개 위에서 어둠을 사르고 있다. 한 바탕 꿈을 꾸었을 뿐인데 방마다 새끼들의 날갯짓이 한창이다. 여보 라는 이름대신 내 가슴에 원수라는 훈장을 달아 준 그 여자 집 초인종을 누른다. 오늘도 외박을 꿈꾸며.
- 시 「날마다 외박하며」전문
고향을 떠나 침울하고 답답한 서울 살이 수십 년 , 도시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외박을 꿈꾸는 한 사내의 응큼함을 눙친 이 시에서 강치두 시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해학과 익살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시「남자의 가방」은 이 시대 가장의 표상인 동시에 가장으로 표상된 권위주의의 소멸과 슬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전편을 음미해 본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방이다 문밖을
나와서는 가장 넓은 방이며 강물의 걸음으로 길
떠나온 순례자이다 옆구리를 벗어나
본 적 없는 길은 캄캄한 비탈이거나 막다른
골목길이다 체증에 걸린 전동차에서부터
일터를 지나 국화꽃 누워 잠든 방까지
투덜대지 않고 절뚝거리며 따라왔다
어느 날 세워놓은 책상에서 굴러 떨어져
올려놓았으나 다시 굴러 내장까지 튀어 나왔다
왼 쪽으로 굽어버린 허리를 숨기는 버릇으로
늘 오른 쪽 어깨에 매달리고 내리기를 원했다
망설이다 악수 하고 속이 텅 빈 날은
달빛에 젖은 시집 한 권으로 채웠다
풀려버린 퇴근 길 지하철 문이 몸을 물던 날
끝까지 덜미를 부여잡고 나를 놓지 않았다
이제는 서 있지 못한, 책꽂이에 기대어놓자
붙잡아도 자꾸 달아나는 춤추었던 들판을 달린다
함께 걸어온 동안 살집에 흉터가 늘었다
뱃속에 궂은 날 밀어 넣은 만큼
술잔 속에서 젖어버린 꿈 떠오르는 날
전열戰列에서 이탈한 새벽별처럼
기울어진 책상에서 뒤척이는 잠자리 내려보다가
꾹꾹 우겨 넣은 짓눌려진 한 쪽 어깨 바라본다
나 하나 지키기 버거운 방들이 북적인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나를 잃어버릴까 봐
가방 속에 미리 구겨 넣었다가
날 밝으면 검게 돋은 어제를 면도하고 나선다
시「남자의 가방」은 유교적 전통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가부장家父長 세대의 눅눅한 슬픔을 그려내고 있다. 가솔 家率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중압감과 그러면서도 가장이 권위를 잃지 않으려는 안간 힘이 낡아져 가는 가방 속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숨기는 방房, ‘술 취해 비틀거리는 나를 잃어버릴까 봐 / 가방 속에 미리 구겨 넣었다가 / 날 밝으면 검게 돋은 어제를 면도하고 나서는’ 방은 집(家)에 종속된 또 하나의 나에 다름 아니다. 이 시대의 가장들이, 권위가 없으면 사라져버리고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남성들의 가냘픈 초상이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길의 끝에 걸려 있다.
산문(山門)에 자동차 세워두고 전화기
구겨 넣었다 넓은 길 저만치 밀어 놓고
오르는 옛길, 바닥에서 올려다보는
산마루 아득하다 능선 넘어온 눈발이
골짜기 흔들며 자꾸 앞을 가로막는 날
발 내딛자 나무는 뒤로 한 걸음씩 물러서며
길 내 준다 오르기 위해 내려가기도 하며
제자리 돌듯 나아가는 길, 정금나무 까만
열매에 흰 콩이 한 알씩 얹혀 지고
등 굽은 소나무 머리까지 휘어져 내린다
새들마저 몸을 숨긴 적막한 숲
천년 발자국 지워지고 뒤따르는 발자국도
지워지고, 물러서지 않고 몰아 쉰 거친 숨 끝,
산정(山頂)을 용마루 경계선 위에 올려놓고
수행 중인 대웅전(大雄殿) 앞에 발을 멈춘다
고개 남으로 돌리자 갑자기 두물머리가
앞마당으로 건너와 숨이 턱 멎었다
두 눈 꼭 감은 눈발은 북한강(北漢江)으로,
멀리 남한강(南漢江)으로 거침없이 뛰어 내리고
소리 없이 흔적 없게 품어버린 두 강은
같은 곳 바라보며 느리고 바쁜 길 간다
5백 살 먹은 은행나무, 속 썩히며 가지 뻗어
양수리(兩水里)를 바라보라 가르킨다
- 「두 눈 꼭 감은 눈발」전문
웰빙 well -being은 웰 다잉 well -dying에 다름 아니다. 생멸은 모든 존재의 숙명이지만 또 다른 생명의 영속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같은 곳 바라보며 느리고 바쁜 길 가’는 삶에 필요한 양식은 사랑이다. 시집 『남자의 가방』 은 강치두 시인의 지나온 생애의 파노라마이면서 이 시대를 살아온 노년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부디『남자의 가방』이 강치두 시인의 건강한 삶을 일으키는 첫 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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