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허무(虛無)라는 탑을 쌓는 검수(黔首)의 기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2. 13. 15:38

허무(虛無)라는 탑을 쌓는 검수(黔首)의 기록

나호열

 

베이비 박스(baby box)는 영유아 유기(遺棄)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불상사를 막고자 모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보호 장치이다. 2009년 우리나라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찬반 양론이 분분하였으나 이에 따른 정확한 통계나 효용에 대해 명시된 적은 없었다. 굳이 한 생명을 버린다는 비양심과 버려지는 존재의 존엄성의 가치 질량을 헤아려보고자 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이 거대한 베이비박스라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세상에 던져진-기투(企投)- 존재로서의 나는 버려진다는 억압된 불안이 전 생애를 관통한 한 존재를 알고 있다. 그 존재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무거운 짐을 버려야 할까 망설이는 엄마를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아이일 수도 있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한 겨울 길에 내버려졌다가 요행히 마음 착한 주인을 만났으나 언제 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개이기도 하다. 전 생애를 점령하고 있는 이 불안의 실체를 허무라고 부른다면 이 유령과도 같은 허무와의 소통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것이 나의 시 쓰기의 전모(全貌) 이다. 달리 말하면 계량할 수 있는 현실의 시간이 아니라 리비도 (libido)를 추동하는 힘으로서의 시간을 추적하는 일인 것이다.


멍멍

멍멍멍


한 단어로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이 기막힌 은유를

그냥 개소리로  듣는다면

얼마나슬픈 일이냐

아무리 울어대도 울림을 주지 못하는

개소리


- 개소리전문

 

사회적 동물인 나는 스스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가족을 비롯한 타자와의 관계맺음, 온갖 제도들, 규율들을 통해 일그러지고 비루해진 그림자를 풍문으로 되비쳐 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짖고(),그 소란스런 짖음을 상처로 받으며 멍든다.

시집 안녕, 베이비 박스를 관통하는 의식을 세계와의 불통이라 한다면 시에2018년 겨울호에 게제된 개소리,골드 스타,바람과 놀다와 같은 시편들이 시집의 얼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되어 폐기처분되는 TV를 통하여 삶의 소멸을 늙거나 낡아야 별이 된다고 / 쓰레기도 / 재활용 용품도 아닌 별이 된다고위무하는 골드 스타에 대해 이 절대적인 소멸의 순간을 보며 느끼는 슬픔은 단순한 욕망의 좌절에서 오는 슬픔이 아니라 허무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찾은 보석 같은 슬픔이라고 말했던 것이 그러하다.

 

남극의 황제 펭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극한(極寒)속에서 짝짓기를 하고 나서 암컷 펭귄들은 바다를 향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기진(氣盡)한 몸을 이끌고 물범 같은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바다에 들어가 굶주렸던 배를 채우고 몇 달 뒤 용케 살아남아야 수컷이 품어 부화한 새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거센 눈보라를 헤치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펭귄들과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키는 펭귄들이 한 장면에 가득 차오를 때 적막한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다로 떠난 어미 펭귄이 돌아올 때까지 수컷 펭귄은 제 품에 새끼를 부화시키는 노역(勞役)을 감내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암컷 펭귄들이 다시 뭍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떠남과 남음, 만남과 헤어짐, 기억과 망각, 존재와 소멸의 파노라마가 베이비 박스라는 한 단어로 축약되던 그 순간, 눈물은 참 가엾고 가여운 만큼 따뜻했다. 어쩌면 이 세상 전체가 거대한 베이비 박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완결, 세상에 홀로 던져졌으나 결코 홀로일 수 없는 세계내 존재(世界內存在)의 외침이 시()임을 포착할 때 나는 허무로 탑을 쌓는 검수(黔首)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시집 안녕, 베이비박스를 읽고 황정산은시간과 시간들의 사이를 통해 우리 삶의 허무를 돌아보고 그것으로 우리의 허망한 욕망을 성찰하는 지향을 보여준다고 썼다. 이 문장은 적확(的確)하게 너절하게 널린 나의 시편(詩篇)들을 꿰뚫어주는 열쇠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 새로워지지도 않으면서 퇴행 退行할 곳도 없는 존재의 근원 찾으려 욕망하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낯 선 세계의 이방인으로 사라져가고 있을 뿐이지만, 존재의 허무를 찾아가고 그 허무를 탑으로 쌓아올리는 시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갑니다

 

...중략 ...

 

누구에게 닿아도 내력을 묻지 않는 바람이 되어

혼자 울다가 옵니다

 

- 바람과 놀다부분

 

 

< 2020년 계간 시에자작시집 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