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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만나는 여름 산과 숲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8. 9. 14. 23:07

시로 만나는 여름 산과 숲

나호열

 

1.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는 1845년 월든 Walden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2년간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는 할 수 있는 만큼 문명의 이기 利器를 멀리하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꾸려 나갔다. 1854년 발간된『월든 Walden 』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과연 자급자족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에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과연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가?, 과학의 힘으로 우리는 자연법칙을 제어할 수 있는가? 인간의 잣대에 의해 뭇 생명들의 경중輕重을 가늠할 수 있는가?

 

어느 농가의 부엌에 60년 동안이나 놓여 있던 사과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식탁의 마른 판자에서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곤충이 나왔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 곤충이 자리잡고 있던 곳의 바깥쪽으로 겹쳐 있는 나이테의 수를 세어본즉, 그보다도 여러 해 전 그 나무가 살아 있을 때에 깐 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커피 주전자가 끓는 열에 의해 부화되었겠지만 그 곤충이 밖으로 나오려고 판자를 갉아먹는 소리가 여러 해 전부터 들렸다는 것이다.

 

끝없는 폭염이 이어지던 어느 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월든 Walden 』의 마지막 쪽에 나오는 이 문장이 소로우가 150년 후의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어 했던 자신의 깨달음, 즉 무위자연 無爲自然속에 담긴 생명에 대한 경외 敬畏가 아니었던가 지레짐작을 하는 것이 허튼 생각일까?

 

식량증산을 위해 삼림을 파헤치고,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농지를 갈아엎어 택지로 탈바꿈시키는 엄청난 역사 役事 뒤로 사라진 ‘숲’과 그 ‘숲’에 깃들어 살던 수많은 생명이 소멸되고 난 다음의 도시화는 폭염과 가뭄을 몰아 왔는데 이 길었던 폭염이 단지 기상이변이라고 둘러대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변명이 아니겠는가? 한 발만 나서면 반겨주던 숲을 스스로 멀리 추방한 어리석음에 대한 댓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2.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 A. Toynbee)' 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편리한 세계로 인도 引導하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응전 속에 ‘절욕 節慾’이라는 동양적 사유가 깃들어 있는 수많은 시 들을 만나고 있음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7할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환경 속에서 ‘산에 깃드는 삶’은 사라지고 자연이라는 숲은 우리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졌지만 그럴수록 시인들은 ‘숲’의 생명성을 내성 內省의 교과서로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즐거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소로우가 그러했듯이 숲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평화로움만이 깃들어 있는 곳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게는 위험하고 스스로 투쟁적이며 준엄한 자연의 순환논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한 마디로 다툼은 있으되, 미움이 없는 것이 숲으로 상징되는 자연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많은 시인들은 자연에 대한 탐미 耽美나 경탄은 물론 ‘존재’ 그 자체의 숭고함을 노래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림문학≫ 2018년 여름호 ( 통권 30호)는 여름의 계절 감각에 어우러지는 작품들로 풍성하다. 우선 눈에 띄는 자연에 대한 탐미를 산을 소재삼아 쓴 시들은 살펴본다. 「산에 가서」(구자운), 「안개속의 나무들」(김내식), 「산은」 (전민), 「여름 산」(장찬영) 등의 시는 인자요산 仁者樂山의 의의를 되새기게 하는 시들이다. 남명 조식이 지리산을 보며 쓴 시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선인 先人들이나 오늘의 시인들의 정조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 여기에 옮겨 본다

 

청간천석종 請看千石鍾 천 석 무게의 종을 보게나

비대고무성 非大叩無聲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네

만고천왕봉 萬古天王峰 만고의 천왕봉은

천명유불명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노니

 

그런가 하면 「미산계곡」(김관식), 「함백산 비화」 (김학순), 「지리산 천왕봉」(민수호), 「선림원지 오르는 길」(박미경) 등은 그 장소가 지니는 특별함 때문에 시심을 돋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남도의 어머니 산 지리산은 그 넓은 품과 동족상잔의 아픈 흔적 때문에 특별한 곳이며, 선림원지는 강원도 양양 땅의 깊은 계곡 속에 숨어 있던 신라 때의 절터로 삶의 미망 迷妄을 상기시키는 곳이며 미산계곡은 강원도 홍천의 전인미답의 원시성이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시인의 눈길을 사로잡아버린 것이다.

 

웅덩이마다 /봄비가 연등을 띄우는 미천골

 

- 「선림원지 오르는 길」첫 행

 

어제가 / 까마득한 먼 옛날 같기만 한 / 굽이굽이 무릉도원 꿈길이다.

 

- 「미산계곡」마지막 연

 

통천문에 머리 숙여야 천왕을 볼 수 있으니 /아, 천상천하 유아독존 / 천하게 오를 수도 없는

 

- 「지리산 천왕봉」4연

 

몇 구절씩 뽑아 저 남도 南道의 지리산부터 백두대간의 언저리까지 걸어가 볼 수 있는 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이 아닌가! 그런데 「함백산 비화 悲話」(김학순)는 어리석은 문명이 가닿은 자연의 속살을 아프게 드러낸다.

 

참 골머리 아프겠다.

정상으로 에돌아간 포장도로

정수리 짓누른 시설물 무겁고,

흉흉한 굴 심장부 뚫어

텅 빈 가슴 알알하고,

폐허된 절터 뒤안길

고승 발자국 사라진 자리마다

늘어진 햇살 졸고,

넘치고 싶은 욕심에

막힌 벽 구멍 뚫는 카지노 시선

함백산은

야생화 향기로 다독이기 벅차다.

 

- 「함백산 비화 悲話」전문

 

시의 완결성이나 비유의 적절함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이 시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공 人工의 괴로움을 보여줌으로써 앞 서 이야기한 절욕 節慾의 필요성을 각성하게 만든다. 미친듯이 길은 직선으로 달려나가야 하고 심산유곡에는 다리를 놓고 산의 허파에는 굴을 뚫는다. 시간의 절약을 빌미로 한 경제적 효용성 때문이고 애써 위안을 삼기에는 우리의 금수강산은 급속하게 병들어가고 있다.

 

3.

 

이와는 달리 자연의 내피 속으로 들어가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시들도 있다.불화살처럼 내리꽂히는 햇볕에 그늘을 찾다 보면 여름 숲에 닿는다. 그 숲은 한 마리 아나콘다가 되어 ‘허리 구부려 한 여름 몽정기를 앓는 / 겁 없는 열세 살 소년을 물어버리고 싶’( 김금용,「여름날 숲 속에 들면, 부분)은 원시의 욕망을 불러 일으켜 ‘ 송곳니 깊이 박아 소년의 순수와 열정을 들이키고 / 숫사마귀를 먹어치우는 암놈 되어/ 제 안에서 하나 된 새끼를 낳고 싶’(「여름날 숲 속에 들면」, 뒷부분) 은 억압되지 않는 본능을 발산하는 장소로 드러나고 있다. 그 본능은 말하자면 생사일여 生死一如의, 다투되 미움이 없는 순환의 드러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소로우는 월든 숲에서 자연의 숨소리가 인간과는 무관하나 무한한 생명을 발산하는 소리임을 알았고 그러한 숨소리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만물일체의 요의를 기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여름날 밤새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짝짓기를 위한 숫매미들의 함성이며, 여름 밤하늘의 반딧불이 또한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분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추방한 숲의 자리에 들어선 건물들이 열섬 현상을 가중시키고 자동차를 위한 포장도로가 흙의 숨을 막아버린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다시 숲을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외친다.

 

나무 밖에 없다

모든 인간이 나무로 변해야 산다

모든 나라가 숲이 되어야 산다

 

- 이인평,「「미세먼지」 마지막 연

 

수직성, 부동성, 인내 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나무는 숲을 이루고 공기를 정화시킨다. 시인이 열망하는 나무의 세계는 경이롭고 위대하다. 미세먼지를 탓하기 전에 그 미세먼지의 근원이 우리의 욕망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 우리가 나무가 되어야 하는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면 아래의 시를 읽어봐야 한다.

 

한 그루 나무가 서는 것은 세상 중심에 두리기둥 하나 세우는 일

아마존이거나 아무르, 지중해 에워싼 나무들이 번쩍 팔을 들어

공중을 떠받는 일,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몸 섞어 내통하는 일

한 그루 나무가 아픈 팔을 내리면 우지끈 우주가 기울듯

 

- 조삼현,「관계의 현상학」3.행에서 5행까지

 

이 시는 21행의 시로서 나무를 매개로 한 문명비판의 시이다. ‘하늘과 땅이 몸 섞어 내통’하는 나무처럼 우리들의 삶도 하늘의 마음을 읽고 땅의 숨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예지를 가다듬어야 할 가을이 저만큼 오고 있다.

 

* 계간 산림문학 2018년 가을호 계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