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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용 시집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 유쾌한 슬픔을 생生에 각인하는 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9. 26. 11:14

유쾌한 슬픔을 생生에 각인하는 시

나호열(시인)

 

1.

 

지난 봄 어느 문학 모임에서 오랜만에 김일용 시인을 만났었다. 언제나 밝고 호탕한 웃음으로 자리를 즐겁게 만드는 시인에게 시집을 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군말을 던졌는데 한 두 달 지난 뒤 두툼한 시들을 보내왔다. 이제 그 시편들은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한 권의 시집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십 년이 되어가는 교유를 통하여 간간이 몇 편의 시를 대면할 기회가 있었으나 시인의 내밀한 시의 전모 全貌를 살펴보는 첫 번째 독자가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그 소회를 적어보고자 한다.

 

 

2.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시인 자신의 존재 확인에 있다. 존재 확인이란 시인 자신이 처한 외적인 상황과 또는 그 외적 상황에 맞물리는 심리적 내면을 들추어냄으로서 자신의 살아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물론 시를 포함한 예술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통로가 있다. 그 무수한 통로 중에서 시인은 문자 文字를 도구 삼아 이 세계를, 아니면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 선택을 했을 뿐, 왜 시를 써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반문한다는 것은 그리 합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던 모든 예술은 관념을, 인간의 변화무쌍한 희로애락을 각각의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한 예로 ‘기쁨’이라는 관념을 ‘기쁘다’로 서술함에 있어 무용은 몸의 동작으로, 회화는 선과 색채로, 음악은 선율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시는 언어를 매개로 관념을 이미지로 바꾼다. 시 표현의 도구인 언어는 음표와 물감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언어의 속성은 기표와 기의(소쉬르)로, 그 기표들은 무의식 속에서 은유의 방식으로 새로운 의미를 일으킨다. 즉 한 기표는 다른 기표의 은유가 됨으로서 우리는 영원히 기의에 닿을 수 없다(라깡)는 난국 難局에 처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는 ‘언어와의 싸움’은 시인 자신이 가진 관념을 또 다른 관념(이미지)으로 이끌어가면서 그 둘의 행복한 합치를 심리적으로 획득할 수 있겠는가를 판가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시 창작은 시인 자신이 대면하거나 반응하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리얼리즘 realism - 사실적 사회비판이든, 파편화된 의식의 성찰이든 -을 따르거나 이른바 릴리시즘lyricism이라 불리는 서정시의 영역으로 진입해 갈 수 있다.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시는 주제의식의 강열함으로 정치 精緻한 수사 修辭보다는 사태의 현장감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주안점이 있는 반면 릴리시즘에 기반을 둔 창작은 내밀한 묘사에 방점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시집을 통독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인상을 받게 되는데. 한 마디로 김일용 시집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리얼리즘과 릴리시즘, 이 두 가지 경로를 중첩해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특징은 대부분의 첫 시집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현상이기 때문에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에 수록된 시들이 개인적 정서의 표출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적인 현상에 반응하는 다양함을 보여주는 것이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우리에게는 울 장소가 필요하다’(「공간」)는 개인적 여린 감성이 ‘난 살아 있는 미라가 되었구나’( 「흐린 오후 현기증」) 같은 집단적 격절의 고독으로 이행된 그 깊이를 헤아려 보는 것이 시집『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를 읽는 즐거움이 되리라 믿는다.

 

3.

 

 

시집『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의 배경은 현대적 삶의 이모저모이다. 한마디로 농경 사회가 지녔던 공동체 의식의 와해와 그로부터 빚어지는 자아의 분열을 냉정하게 그려낸다. 아버지 병수발에 지친 나머지 ‘이젠 갈 길 편하게 가시라고 했’으나 ‘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와 생각해 주는 척 내 귀에 속삭이는’ 곧 아버지의 삶을 따라가는 노년의 삶을 그린 「우리가 사는 시대 이야기 하나」를 통해서 헛말들이 유령처럼 떠도는 소비의 사회를 직시한다. 살붙이 식구도 깜박 잊어버리기 일쑤인 생일을 챙겨주는 보험회사, 백화점, 동네 화장품 가게는 우리를 ‘ 참으로 축복받는 여자/ 쓰임이 있어 아직은 행복한 여자’( 「축복 받는 여자」)로 거짓 위안(?)을 삼게 만든다. 진정한 관심이 사라진 관계는‘ 고딕체로 직립해 있는 고층 아파트는 / 일요일마다 가부좌 틀어 면벽을 향해/ 참선을 들어가는 수행장’( 「고요한 파장」)이 되어 ‘서로가 바라보는 시선은 타인의 생각들을 알지 못했고 / 외로움에 더 지치게 하는 것은 / 막힘 속에 스스로 말하기 거부하는 것과 / 말을 하고 싶었을 때 이젠 말 할 상대가 없다’( 「고요한 파장」 4연)는 고독을 깨닫게 한다. 엽서 한 장 보낼 데가 없고, 이제껏 받아본 적 없다는 토로는 ‘참으로 모질게 살았다’( 「부치지 못하는 엽서」)는 회오로 남아 급기야 그저 ‘좋은 세상에 태어나 영화까지 누리고 산 / 늙고도 질긴 암소들’( 「소가 된 여자」)로 자조 自嘲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허위와 허상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착취하며, 서로를 소모하며 사는 삶을 깨닫지 못함을 통렬하게 시인하는 시가 여기에 있다.

 

실크로 만든 옷들과 가죽점퍼 밍크 털 옷

몸 치수에 맞춰 후줄근하게 목 매이 듯 걸려 있고

오리털 이불이 납작하게 포개어져

제 집처럼 들어 앉아 대기하고 있다

 

가구들은 모두 제 색에 맞추어 칠들을 뒤집어쓰고

통가죽 소파는 안락함을 모델로 거실에 앉아 있다

 

냉장고는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배가 터져 나갈 듯

발효되어 가는 육신들이 제 냄새를 풍기고

추운겨울 차가움을 이기지 못한 연약한 화초가

이내 목을 늘어뜨리고 누워 있다

 

전시장처럼 꾸며 놓은, 획일적인 시멘트 집하장과

몸뚱이 갈기갈기 쪼개져 나온, 나무들의 집단 안식처에서

서로가 필요에 의해 공존하고

서로가 하루하루 세월을 죽여 가면서

 

나는 고른 숨을 쉬면서

다시는 숨을 쉬지 못하고 미라가 된

그들의 품에 안겨

그들을 생각 없이 몸에 걸치고

그들을 포근히 덮으며

그들을 꾸역구역 입안으로 들이 밀며

하루하루

나는 무덤 속에서 살고 있다

 

- 「나는 무덤 안에서 살고 있다」전문

 

김일용의 시들은 구구한 해석이 필요 없이 직설적으로 달려드는 필치를 보여주는데 익숙하다.「나는 무덤 안에서 살고 있다」또한 어김없이 오늘의 삶의 한 단면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의 안위를 위해 미라가 되어야 하는, 서로의 꼬리를 물고 물리는 갑과 을의 소용돌이, 현대문명의 아수라장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는데, 구원의 손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 또한 끊임없는 ‘쓰임’을 겪다가 일회용으로 전락하여 ‘ 한 번의 쓰임을 위해 하루의 생을 마감하’는( 「일회용으로 사는 것」)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 아닌가?

 

날 세우던 검은 줄은 힘없이 끊어지고

오래 된 손놀림도 녹이 슨 먹통이 되었다

아버지도 덩달아 세상과 교신이 끊어진 먹통이 되었다

 

- 「먹통」 마지막 연

 

아무리 발버둥쳐 봐도 버려지거나 잊혀져가는 우리 모두는 인과 因果로 말미암아 누군가에게 먹통이 되거나 고물이 되어 화장 火葬되어 버리는 운명에 처한다. 김일용의 시편은 이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한 치도 물러섬이 없는 관중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4.

 

이와 같이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몰락으로 가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에 표명된 시인의 자아는 비감 悲感의 정서로의 이행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다. 시인의 냉정한 필치는 오직 냉혹한 세계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할 뿐이지 어떤 구도 求道의 몸짓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김일용 시가 지닌 미덕이며 진실성을 담보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체화 體化되지 않은 채 득도의 경지로 쉽게 넘어가는 시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강건함이 부족한 언어의 정치한 꾸밈을 상쇄하고 있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제 기능을 다했군요

설사, 고친다 해도 며칠 버티지 못하고

수리비만 날리니 포기 하세요

 

폐기처분

정이 들었던, 편해서 이용했던

그런 가치있는 질문을 묻지 마라

검은 봉지 씌워 애도하면

누구도 그 뒤는 죽어도 알 수 없다

 

평생, 발을 감싸고 보호했던 육신의 뒷마무리는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쳐 버리는 헌신의 미래

 

- 「구두」 전문

 

과거로의 퇴행을 용납하지 않은 채 오직 소멸과 몰락의 미래에 대해 탐문하는 시인의 속마음은 마치 참살이well­being가 참죽음well ­dying임을 간파하는데 있지 죽음 너머의 영생을 꿈꾸는데 있지 않음을 일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느 장면을 마주하고도 시인은 퇴행적 그리움을, 슬픔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오직 시인이 곱씹고 있는 화두는 허물어지고, 버려지고, 묻혀져가는 쓸모 없는 것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일이다.

 

 

탑 하나

제 몸 추스르기도 빠듯한 지

고요 머금고 기운 몸,

지긋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한 때 단단한 무게를 받치고 서 있던 주춧돌

풀 속에 수줍은 듯 숨어

무너져 내린 머리위로 허공을 이고 있다

 

누군가의 손길에서 마음에서 등지고

치솟는 화마에 얼룩져 데인 살들이

화증으로 온 몸 삭아질 때

홀연히 주저앉은 가벼운 껍질

텅 빈 가슴에 사방 휑한 들판이 되었다

 

천년 바라만 보았던, 눈만 산 나날

늙지도 않는 세월 앞에 외로이 무너지고

 

누군가 밟아 올라서도

제 몸 내주고 땅속에 박혀 있는

검은 주춧돌

 

- 「폐사지의 주춧돌」 전문

 

그래서 시인은 소멸이 단독자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멸이기에 ‘바람 앞에 비명조차도/시달림을 마디로 해서/화음으로 돋아나는/무리지어 어우러지는 춤’(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이 되는 것이라고, ‘제 스스로 목숨 끊는 행위를 몰라’( 「잡초가 무성한 이유」」) 처절한 반란의 응집이 있을 뿐이라고 우리의 삶을, 생명의 무정함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연륜이 깊어짐에 따라 나오는 뱃살을

너무 요란을 떨며 탓하지는 마라

삶의 무게를 지탱해온 무지막지한 힘도

배꼽이 중심이 되어 응축된 힘을 발휘하는

힘의 기술인 것이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바라보며」1연

 

5.

 

 

 

『흔들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비정하고 냉혹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와 나와의 동화 同化를 꿈꾸는 서정 抒情은 배제되고 오로지 직핍 直逼하는 존재의 몰락과 그 몰락을 망각하는 존재의 어리석음을 직설적으로 토해내는데 집중되어 있는 것이 또 하나 김일용 시의 특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보여주는 삭막하고 그늘진 풍경의 중첩과 그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고독과 격절과 슬픔은 독자로 하여금 그것들로의 함몰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설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묘한 매력으로 발산되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낑낑거리며 머리맡의 화두로 짊어지었던 고뇌를 유쾌한 슬픔으로 되돌려 놓는 역설의 힘이 앞으로 김일용 시인이 걸어가야 할 먼 길을 아름답게 장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을 건네는 삼라만상에 경의를 표하는 시인의 모습이 저만치 있다.

 

입 속에서 툭툭 흘러나오는 죽은 단어들이

귓전을 때려도

밖으로 소리내어 진정 말하기 없기

 

절대

진정으로 말하기 없기

 

- 「말하기 없기」 마지막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