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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시집 『고래에게 말을 걸다』/ 봄꽃에서 고래 사이의 삶의 기록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0. 3. 12:14

봄꽃에서 고래 사이의 삶의 기록

나호열 (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1.

 

『고래에게 말을 걸다』는 2015년 『너도 봄꽃이다』에 이어 상재한 김정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불과 2년 사이에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한다는 일은 여간해서 시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시인에게 다가온 현실적 삶의 국면에 맞서는 시인의 치열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고래에게 말을 걸다』를 처음 대하는 독자들에게 『너도 봄꽃이다』에 붙인 뒷글이 시인의 시세계를 조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구절 인용해 보기로 한다.

 

시집『너도 봄꽃이다』는 어떻게 보면 규방을 둘러싼 소소한 삶의 기록이며, 그 삶을을 반추하는 거울이다. 단순하지만 심성을 왜곡하지 않는 투명한 시들은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는 안개꽃 다발을 연상시킨다. 작아서 눈길이 가 닿지 않는 것들에 대한 눈 맞춤을 새로움에 비하랴. 이쯤에서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다’(시인 임보)는 명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써가면서 시인이 되어간다는 경건한 마음을 지닌 시인이 얼마나 있을까?

 

예술은 늘 ‘새로움’이라는 숙제 앞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법이다. 진정성을 지닌 체험은 예술의 양식 糧食이지만 그 양식에 언어의 미학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값진 시인의 변모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서정 抒情을 견지하되 달콤한 아포리즘에 빠지지 않는 시세계를 열어갈 수 있다면 시집『너도 봄꽃이다』는 변모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여럿이면서 하나인 안개꽃의 시」에서 발췌

 

한 마디로 『너도 봄꽃이다』의 핵심은 현대사회의 여러 특징인 무한경쟁, 소비가 미화되는 물신 物神의 시대, 가치의 해체, 익명사회의 고독을 조망하면서 인간(개인)과 집단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 놓여져야 할 덕목이 ‘봄꽃’으로 축약되는 인내와 사랑의 생명성임을 증언하는데 있다고 보여진다.

 

봄의 젖줄을 기다린

생명들이 꿈틀거린다

 

가장 먼저 봄을 빨아들인

봄꽃이 집들이를 벌인다

하양 노랑 분홍을 입은

앙증맞은 꽃등이

가지마다 걸리면

 

꽃들이에

초대 받은 너도 나도

화사한 봄꽃이 된다

 

- 「너도 봄꽃이다」전문

 

 

 

엄밀하게 말해서 꽃은 생명활동, 번식의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이다. 혹한과 모진 바람을 견뎌내면서 피어나는 어느 꽃은 향기로, 어느 꽃은 화사함으로 벌과 나비를 부른다. 어느 꽃은 새를 부르고 어느 꽃은 바람에 몸을 기댄다. 이렇듯 하나의 가지에 무수히 달려 있는 그런 꽃들은 오래지 않아 낙화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 시인은 우리의 삶도 저 꽃과 다름없음을 직시하면서 ‘너도 봄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이 ‘너도 봄꽃이다’라는 언명이 중의적 표현이라는 점이다. 그 하나는 ‘희망’으로 상징되는 생명의 무한함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봄꽃이 의미하는 생명의 소멸을 등가等價로 놓음으로써 계급이 사라진 평등한 관계로서의 너와 나를 함의 含意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도 봄꽃이다」는 보편화된 서정시의 한계를 넘어서서 화이부동 和而不同의 세계를 지향하는 일갈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도 봄꽃이다』전편은 서정의 틀을 유지하면서 불확정적이고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전심전력하는 시인의 분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그렇다면 『고래에게 말을 걸다』는 과연 『너도 봄꽃이다』에서 다루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풀어낼 수 있을까? 먼저 시집의 표제시인 「고래에게 말을 걸다」를 읽어보기로 하자.

 

그렇게 쉽지는 않다

언젠가는 먹이가 될 줄도 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목에 힘을 주고 앞에 선다

이 곳에서

함께 숨 쉬고 걷고 싶다고

눈짓을 보내다

어렵게 한마디 한다

더불어 살자

 

-「고래에게 말을 걸다」 전문

 

고래는 포유류이면서도 바다에 사는 거대 동물이다. 바다는 육지와는 달리 역동적이며 그 역동적 바다를 고래는 유유히 떠다닌다. 우리에게 바다와 고래는 자유의 상징이면서 머무를 수 없는 이상 理想의 세계이다. 나무와 꽃과 같은 식물적 이미지로 전환되는 국면은 시인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 조금 멀리서 정적 靜寂으로 관조하기엔 급박한 상황임을 암시한다. 바다에서 고래는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다. 바다를 지배하고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고래는 시인에게 있어서는 이루고 싶은 꿈의 상징인 동시에 나를 겁박하는 갑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갑이 되고 싶은 열망은 시인 앞에 공포스럽게 서 있는 갑(고래)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난경에 처해 질 수 밖에 없어 ‘어렵게 한 마디 한다/ 더불어 살자’는 화해의 한숨으로 뒤바뀐다. 『너도 봄꽃이다』에서『고래에게 말을 걸다』로 이어지는 시간의 영역은 오늘의 세계가 더 냉혹하고 부조리한 국면으로 치달았음을 증언하는 전쟁터가 된다. 말할 나위 없이 그와 같은 국면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곳곳에 또아리 틀고 있다는 사실에 다름 아닐 터이다. 턱밑까지 차오른 부조리 앞에서 동화 同化와 투사 透寫라는 서정시의 본령은 제 자리를 찾기 힘들다. 세상사를 수긍하고 관조하기엔 오늘의 삶은 핍진 그 자체라는 인식이 곳곳에 선혈처럼 남아 있음은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래에게 말을 걸다』는 이와 같은 신산한 삶의 풍경을 감성에 기대지 않고 객관화시킴으로써 시인 자신은 물론 독자로 하여금 오늘의 삶을 환기 換氣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듯 하다. 늙은 아버지는 해고를 당했는지 정년을 맞이하였는지 막막한 심정에 빠진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애비야 나도 그랬다/ 너희들 키울 때 앞이 깜깜했다/그 때는 지금보다 더 퍽퍽했’다고(「희망뉴스」).그런데 화자의 아들은 ‘아직까진 자식들 혼사는 말뿐이고 / 24평짜리 아파트 한 채만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아들의 아들은 또 어떤가.

 

삼십일을 뛰어다닌

스물일곱 128만원

그 벼룩의 간을 내어

신용카드와 핸드폰의 배를 채우고

수첩 안에 가두었다

하루도 안 되어

삼각김밥 컵라면 영수증이

친절하게 들어와 오천 원을 밀어낸다

꾹 다문 지갑의 간을 열어

순대국밥에 소주 두병을 안주로 시켰다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꾸역꾸역 몰려와

펄펄 끓는 국밥을 에워싼다

 

- 「벼룩의 간을 내어」전문

 

 

 

오늘의 청년들이 맞이한 세상은 효율성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디지털의 세계, 인간을 기계로 종속시키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팽배해 있는 세상이다. 모든 청년세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벼룩의 간을 내어」에 등장하는 청년의 모습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정황은 다음 시와 같은 시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펄쩍펄쩍 뛰어 오른다

고지서가 줄줄이 늘어선다

뱅글뱅글 맴을 돈다

과녁이 저 멀리 앞에 서있다

등록금 숫자들이 꿈틀거리다

대출금 상환기환과 보란 듯이 손을 잡고

덩치를 키운다

움츠리던 몸이 숨소리조차 숨기었다

새벽3시 연못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빠져 나온 뇌가

갈 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 「줄줄이 사탕」 전문

 

구구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위와 같은 진술을 놓고 혹자 或者는 시가 표명하고 있는 시적 정황이 일반화되기에는 협소한 공간이거나 소수의 삶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시는 광활한 우주의 장엄함을 노래할 수도 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작은 생명과 현상에도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일을 한다. 억눌리고 소외의 영역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극소수라 하더라도, 그들의 삶이 단지 그들만의 비명 悲鳴에 불과할지라도 그런 상황에 대한 증언이 값어치 없는 일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시인의 책무는 바로 그렇게 비루하고 값어치 없어 보이는 일에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이 세상에 주의와 환기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애비야 저 산 봐라 저들을 품고도 잘 산다

저 품에 기대 사는 것들도 다들 잘 산다

한숨 쉬고 근심도 지녀도 된다

 

- 「희망버스」 부분

 

거짓되고 허황한 말로 대중들의 마음을 훔치며 가짜 희망을 부풀리는 이 시대에 오히려 위와 같이 말도 안되는 토로가 관조가 아닌 체념에 가까운 듯 보여도 이 땅의 못난 사람들은 성인 聖人들의 고고한 말씀보다 스스로 깨달은 마음으로 모진 세월을 이겨왔던 것이다.

 

3.

 

『고래에게 말을 걸다』는 요새 말로 을乙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 몇 킬로를 걸었는지 / 가늠이 안되는 눈동자 /카트에 실린 돼지 등뼈 한 봉지 / 아내가 좋아하는 김치찜에 얹을 꺼라며’( 카트에 담다) 히죽 웃는 남자, ‘시장에서 만두 파는 아저씨/ 찐 옥수수를 팔던 아줌마’( 그 마음은 같지요), 산길에서 만난 밀짚 올이 풀린 모자를 쓴 비구니( 하늘재),‘ 아침 여섯시 삼십분 출근길에 올라/ 다음 날 영시가 훌쩍 넘어서 퇴근한’( 초년생이 퇴근하다)사회초년생 등등이 우리가 매일 무심히 흘려보내는 이웃이면서 우리 자신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사회초년생의 중얼거림이 어찌 한 젊은이에만 해당되는 괴로움이겠는가?

앞서 언급했듯이『고래에게 말을 걸다』는 『너도 봄꽃이다』에 비하여 훨씬 더 직설적이고 삶의 현장에 바짝 다가서 있는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의 삶이 전보다 더 곤고해지고 절박해졌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눈 앞에 당도한 절박한 삶에 대응하는 방식은 비탄에 빠져 포기하거나 삶의 질곡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그 삶에 맞서 극복의 길로 나가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희 시인은 『고래에게 말을 걸다』에서 자유와 힘의 상징인 ‘고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미 시인은 ‘더불어 살자’고 말했다. 갑과 을의 투쟁이 아니라 갑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마음 내려놓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지 마라

흔들려야 예쁘다

 

홀로 있지 마라

어우려져야 예쁘다

 

고개 숙이지 마라

네 모습

그대로가 예쁘다

 

아쉬어 마라

슬픔까지 꼬옥 품은

 

네가 제일 예쁘다

 

- 「코스모스」 전문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알던 모르던 코스모스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어우러져야 예쁘고, 흔들려야 예쁜 꽃일 것이다. 힘 센 ‘고래’에게 던진 더불어 살자는 말이 「코스모스」에서는 더 확장된 발언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 확장된 발언에는 체념이나 증오와 같은 극단적 의지를 담고 있지 않다.

 

그렇게도 화가 났나요

몸부림에 목이 쉬고 피멍이 든

당신을 안고

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한강

 

깊은 마음 골에 머물던

절망의 꼭짓점을 지나

소박한 문을 두드려

바다로 가고 싶었지만

한 집안 가장이라

오도 가도 못하는 문지기로

오십 여년을 지낸 아버지

 

오늘에야 수문을 열어

지고 있던 수고를 벗어 던지고

황토물결에 풍덩

마음자리 풀어놓은

본때 있는 바다로 풍덩

 

- 「 팔당댐 수문을 열다」전문

 

『고래에게 말을 걸다』에서 눈여겨보고 마음에 담은 시가「 팔당댐 수문을 열다」이다. 아마도 이 시야말로 김정희 시인이 전하고 싶은 고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댐에 가득 차 있던 물이 이윽고 수문이 열리면서 우렁찬 함성과 함께 뛰어내리는 장엄한 광경을 통해 우리네 삶에, 우리의 마음에 가두어졌던 신산한 고통과 슬픔이 일시에 쏟아짐을 환치한다. 그 쏟아져 내림은 적대적 증오의 표출이 아니다. 이 개울 저 계곡의 물이 합쳐져서 큰 강을 이루고 이윽고 먼 바다를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을 통해 물이 지닌 화합과 정화 淨化의 기쁨을 노래하고 싶은 것이다. ‘마음자리 풀어놓은 / 본때 있는 바다로 풍덩 ’ 의 문장은 슬픈 만큼 예쁘고, 예쁜 만큼 기쁘다.

 

4.

 

『너도 봄꽃이다』를 축하하는 글에서 시인의 마음에 가득한 서정이 아포리즘에 빠지지 않기를, 또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넓은 세계가 펼쳐지기를 소망하면서 그리하여 ‘피로써 글을 쓰라’는 니체의 말도 곁들였었다. 현실이 주는 절실함이 강열할수록 비유는 멀어지고 메시지에 가까워진다. 그리하여『고래에게 말을 걸다』는 달콤한 비유의 유혹보다는 현장감을 강조하는 시편들이 다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정희 시인은 핍진한 현실을 증언하기는 하되 핍진한 현실이 주는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다. 애이불상 哀而不傷이라고 했던가. 슬퍼하되 아프지 말라는 의미가 『고래에게 말을 걸다』에 질펀하게 깔린 우수 憂愁라면 김정희 시인의 시작업은 앞으로 더 탄탄해질 것임을 믿는다. 시의 열정을 잃지 않고 시업에 매진한 김정희 시인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