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문여기인 文如其人의 풍경을 읽다/ 송낙현 시집 『바람에 앉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5. 25. 23:20

문여기인 文如其人의 풍경을 읽다

나호열(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1

 

『바람에 앉아』는 시인 송낙현의 첫 시집이다. 종심 從心을 넘어서서 선보이는 80 여 편의 시는 열렬한 창작에의 욕구의 산물이며 시인 자신의 삶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겠기에 각별할 뿐만 아니라 시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바람에 앉아’의 문장이 넌지시 암시하는 바와 같이 “오욕칠정을 넘어선 초탈과 관조의 경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언어의 조탁을 통하여 미적 성취를 거두고 싶은 것일까?”하는 시인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시집을 개관하기 전에 먼저 살펴보아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짚어보는 것이 시집 『바람에 앉아』와 시인 송낙현의 면모를 가감 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 몇 마디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작품(시)이 그 작품 생산자(시인)의 삶을 투영한 체험의 산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작품이 시인의 인품과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작품은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진실의 구현이라는 점을 잘못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작품에 드러난 언명이 마치 작품 생산자의 인품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즉, 고래의 예술론으로 언급되는 회사후소 繪事後素와 대교약졸 大巧若拙의 사이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몇 가지 관점이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회사후소의 해석을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백지가 필요한’ 것처럼 시를 쓸 때 ‘맑고 그윽한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자칫 시심 詩心을 ‘선善한 마음’으로 가식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작품(시)을 고매한 인격의 표현으로 착각하여 언어의 쓰임새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대교약졸이 뜻하는 바는 ‘진정성이 결여된 큰 기교는 말장난에 그쳐 졸렬함보다 못하다’는 것으로 시심을 선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을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한 편의 시나 시집의 성패를 가르는 지점은 회사후소와 대교약졸의 함정을 피하는 그쯤이 될 것이다.

 

2

 

시집 『바람에 앉아』를 개괄하여 보면 1부엔 시인의 인생에 대한 회고와 사회현상에 대한 감상을, 2부는 여행을 통한 사색을 3 부는 자연 현상을 묘사한 작품, 4 부는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다룬 작품들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제들이 시인의 세계관이나 삶의 인식을 드러내는 일관된 통로인가의 여부에 따라 『바람에 앉아』의 성취가 결정될 것이기에 눈여겨보아야 할 몇 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알다시피 송낙현 시인은 오랜 공직생활을 훌륭히 마친 분이다. 뒤늦게 시업에 뜻을 둔 늦깍이 시인으로 열정 가득한 시들을 생산할 수 있는 근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의 현대사가 말해주듯이 전쟁과 가난의 역경을 헤쳐 나오다 보니 자아의 탐구나 자기애 自己愛의 결여를 뒤늦게 깨닫는 세대의 각성일까? 오래 전 미당 未堂 선생이 궁극의 시로 명명한 예지시, 즉 풍부한 삶의 체험을 예지 叡智로 발현함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맨 먼저 『바람에 앉아』시편에서 산견되는 것은 동심 童心이다. 동심에는 부정이 없고, 비판이 없다. 시인의 연치 年齒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나무가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은/ 온몸으로 비를 맞아 속살까지 젖어서 /가슴 깊은 사랑을 뿌리로 내리기 위해서다/...중략... / 한없이 즐겁게 때로는 눈물겨운 괴로움 속에서도/ 너무나 뜨겁게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왜 우산을 쓰지 않을까」부분)’와 같은 정감이 가득한 시심의 출발이 동심이기 때문에 시인의 회고는 허세로 겉돌지 않고 육화 肉化되어 있다. ‘ 내가 산을 오르고 있을 때/ 이미 내려오는 사람을 보면 / 나는 조금은 부러워진다/ 저렇게 무사히 내려오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니까...(「등산」마지막 연)’ 처럼 삶에 대한 태도는 진솔하고 일관되게 경건하기조차 하다. 이와 같은 동심은 시집 전 편에 걸쳐 혼연히 드러나 있음을 놓치지 않아야 시집『바람에 앉아』의 감상이 듯깊을 수 있다.

 

옥문부터

토문까지

길어야 백여 년

 

남사당 줄타기

구경하듯

 

언제나

조마조마

 

- 「인생」 전문

 

먹는 일, 자는 일, 배설하는 일 그 어느 하나도 소홀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조마조마하게, 팽팽하게 긴장시키지 않는다면 결코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걷는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환승은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즐겁다( 환승」 마지막 연)’과 같은 긍정의 힘을 얻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기쁨에서 슬픔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환승하는 일을 체념이나 푸념으로 허비하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나이 들어감을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환승으로 받아들일 때 삶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3

 

여행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난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고, 다른 세상의 풍물 속에 자신을 되비쳐보는 일이다. 낯 선 사람과 낯 선 사람들 틈 속에서도 시인은 동심의 때 묻지 않은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나무 가지에 걸린 새 둥지를 보며 미물인 새들의 다복을 기원하며 연등을 걸어주고 싶다는 마음( 시「초파일 연등」), 강물에 빠진 산을 건져주려는 마음(시「은둔」)이 이윽고 고향에 닿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눈물겨운 일이다. 그리하여 가난하였으나 상한 고등어 한 마리를 저녁상에 내놓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나가는 어머니와 물끄러미 천장을 쳐다보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시 「간 고등어」)

 

봄소식 지금쯤 고향에 가면

닫았던 문 활짝 열고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논두렁 밭두렁 여기저기 들판에 나와

쑥, 냉이, 풋나물 가득 채운 바구니 속에

하늘 높이 종다리 청아한 노래, 포개어 보드레 담고 있겠지...

 

- 시 「고향에 가면」 마지막 연

 

다시 생각해 보면 동심은 측은지심 惻隱之心으로 자라난다. 맹자는 사단 四端의 으뜸으로,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믿음으로 측은지심을 세웠지만 분별을 없는 동심이 튼튼하지 못하다면 측은지심은 발현될 수 없다.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은 바람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일반적인 인식으로 ‘바람’을 보지 않는 시인의 시각이다. 흩어짐, 정처 없음 으로 받아들여지는 ‘바람’의 의미를 생명의 원천으로 감지하는 시인의 눈은 깊은 통찰로 가득 차 있다.

 

바람은 지치지 않는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일을 하며

불평 한 번 하지 않는다

지구를 사랑하지만

모든 것은 숨어서 한다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유유히 떠나버린다

머물지 않는다

 

바람 떠난 그 자리

봄이 되면 새 순이 돋아오를 것이다

 

- 시 「바람」 3,4연

 

이쯤에서 바람은 생명의 전달자, 매개자로 세계화된다. 동심은 측은지심으로, 측은지심의 구현체로 바람을, 바람의 속성으로 존재의 의미를 치환하는 시인의 예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바람에 앉아」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저 꽃에 벌과 나비가 수시로 놀다 가더니

솜털 날개 달린 꽃씨가 주렁주렁

꽃대에 비눗방울모양 부풀어 있다

바람을 기다리려 길게 긴 사슴 목처럼 올라 와 있다

 

세찬 바람이 불면 저 씨앗은 정처없이 날아가리라

아무 연고도 없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생면부지의 땅으로,

몸부림치면서 스스로 터전을 잡고 정착하리라

까마득한 낭떠러지 절벽에 바둥바둥 달라붙어,

혹은 시멘트로 둘러싸인 불모의 틈새에도 비집고 들어가

생명을 틔우는 그 절규 같은 숨소리를 우리는

한 번도 귀담아 들어본 일 있는가

 

내가 들녘에 나와

이처럼 바람에 앉아 있는 것은

나도 저처럼 한없이 날려가 어느 누구의 가슴에,

육중한 대문 같이 닫혀있는 그 심장에 뿌리를 내려

흔들려도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다

 

- 시 「바람에 앉아」전문

 

바람이 존재의 속성인 유한성 有限性 그 자체이거나 개별적 존재 자체를 표징하는 것이라면 개별적 존재와 존재 간의 관계 맺음은 「바람에 앉아」에 드러난 바와 같이 측은지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바람’인 존재, 즉 타자 他者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인식은 사변 思辨으로 이루어진 관조가 아니라 시인이기 전의 인간 송낙현의 삶의 이력이며 증표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4

 

위와 같은 생명과 생명 사이의 관계맺음은 자연 또는 자연현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노자는 ‘자연은 인간을 추구로 여긴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도덕경 5장)’라고 하여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하였다.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며, 자연현상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음을 갈파한 혜안은 오늘날의 삶에서도 그 위의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송낙현 시인은 이를 체득하여 ‘하늘이 비를 내리는 이유는 /풀 한 포기 작은 생명 하나라도 정화수 한 모금 먹이고 싶다’(「비」 부분)고 묘파하고 더 나아가 ‘비는 하늘이 글렁글렁 흘리는 사랑의 눈물’(「비」마지막 연)로 승화시킴으로써 인간의 무모함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무화과가 꽃 없이도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로부터 이끌어낸 ‘그걸 가만가만 숨어서 누군가는 드나들며 사랑을 도왔을꺼야/ 그래서 열매가 열리는 것일꺼야/ 미로를 통해서 은밀하게 서로가 연락이 있었을꺼야/ 그저 우리만 모르고 있었을꺼야’( 「무화과」 1연 부분)와 같은 자연의 비의를 우리 모두가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권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아래와 같은 시에서 유니크한 선물로 다가오기도 한다.

 

눈은 하늘이 부쳐 온 다이아몬드 엽서다

해마다 잊지 않고 우주의 온갖 소식 담아서

해 소식, 달 소식, 별 소식, 천둥 소식, 번개 소식

골고루 담아 보내오는 거다 궁금하지 않도록

 

답장은 필요없이 받기만 하도록 보내는거다

다 읽으면 사라지게 하늘이 배려하는거다

보관창고 없이도 걱정하지 않게

 

함박눈 오는 날이면 아무도 지나가지않은

들길을 걷고 싶다 새 하얗게 쌓이는

눈부시게 영롱한 다이아몬드 엽서를

뽀드득 뽀드득 소리내어 읽으며......

 

- 시 「다이아몬드 엽서」전문

 

동시 童詩로 읽어도 즐거운 시에 더 이상 첨언은 필요 없다. 이러한 순진무구한 마음은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나에게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더 넓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퍼져나간다. 시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시인의 가족애는 그래서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에

뽀얀 김 내뿜으며

둘이서 조잘조잘 걸어 가다가

버스 정류장 근처 구멍가게에서

타타탁 튕기며 고운 속살 드러낸

따끈따끈 군밤 한 봉지 사서

옆 주머니 깊숙이 찔러주는

그런....

 

- 시 「정 情」전문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온기와 같은 것, 말하지 않아도 마음에 와 닿는 정 情이 메말라 가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나지막히 읊조리는 시인은 그래서 또 이렇게 간절한 소원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똥별이

섬광처럼

빛을 내며

길게

밑줄을

긋고 있다

 

“사랑하며 살자”

 

- 시 「밑줄」 전문

 

어둔 밤하늘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이 한 순간 빛을 내며 사라지는 것임을 목도하는 순간 포착한 “사랑하며 살자” 의 밑줄은 아름다운 만큼 서늘하지 않은가!

 

5

 

이 글의 서두에서 글과 글 쓴 이의 인품을 동일시했을 때의 혼란이 어떠한지에 대해 잠시 언급한 바가 있다. 작자 자신이 언어의 미혹에 빠져 글의 진정성이 결여되기도 하고, 시가 허구 fiction 라는 일차적 정의를 잘못 이해한 독자들이 겪게 될 난국을 회피하기 위해서 조심스러웠던 탓도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을 마치면서 『바람에 앉아』전편을 관류하는 청정한 동심의 세계가 시인 송낙현의 삶 그 자체이었음을 확인하면서 필자의 성급한 주장을 철회하고자 한다. 개인적 동심이 외연을 넓혀가면서 삭막한 세상을 향한 안타까운 몸짓과 측은지심이 어떻게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승화되어가는 지를 보여준 시집 『바람에 앉아』는 안개꽃같이 무리지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기교를 사상 捨象하고 직필 直筆의 어감을 유지한 시법 詩法은 시인의 심성과 다를 바 없음이 드러나 있음을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인정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문여기인 文如其人은 말 그대로 글과 그 사람의 인품이 일치함을 이르는 말이다. 시집『바람에 앉아』는 시인 송낙현의 삶과 사상을 올곧게 드러낸 징표이다. 이와 같은 기상 氣象이 더욱 빛을 발하여 후세의 큰 길에 넘쳐나가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2016년 5월 無籬齋에서 나호열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