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네
서녘하늘에 걸린 노을을 읽는다
붉어졌으나 뜨거워지지 않는 마음 한 자락을
닿을 수 없는 손길로 걸어 놓아도
그 깃발을 신기루로 이미 알아버린 탓일까
아직 노을이 꺼지기에는 몇 번의 들숨이 남아있어
긴 밤을 건너갈 불씨로
빙하기로 접어든 혈맥을 덥힐 뜨거운 피로
은은하게 가슴 속 오솔길에 퍼져오르는 와인 한 잔으로
오독하는 동안
늙어 더 이상 늙지 않는 심장은
빠른 보폭으로 세월을 앞서 가지만
그래도 아직 가야할 서녘을 바라보는 눈 속에는
겨울에 피는 꽃
향낭 가득 씨로 남아 있는
배우지 못한 말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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