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백견불여일행 百見不如一行의 시를 기다리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9. 8. 21:54

백견불여일행 百見不如一行의 시를 기다리며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

 

 

『산림문학』의 애독자가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즐거움은 이루 형언 形言할 수 없다. 무심하게 우리 곁에 있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가 하면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산림문학』을 접하는 즐거움의 요약이다. 이와 같은 즐거움은『산림문학 2015년 봄 ․ 여름호』(통권 21호)를 통독하면서도 변함없이 찾아 왔다. 【녹색문학상】 수상자 특집, 새롭게 제정한 제 1회 【산림문학상】의 수상작품, 초대시의 묵직한 시편들이 시 읽는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보다 더 필자에게 깊이 다가온 글들은 특별기고와 명사기고에 아로새겨진 ‘산림’과 ‘문학’에 대한 통찰이었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으나 그 중에서도 이용직님의 권두언은 ‘산림’과 ‘문학’의 원활한 소통을 이루는 과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했다. ‘산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문학’은 생명의 원천을 예찬하고 이를 대중大衆에게 널리 스며들게 하는 책무를 지닌다. 이 책무를 좀 더 부연한다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산림’이 되는 행동이 작품을 통해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선지자의 거룩한 사명을 박탈(?)당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정보수집의 용이와 대중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개인이 축적하고 있는 지식의 총량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까닭에 시대적 징후를 대중들에 앞서서 포착하는 책무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문학에 한정되어 말한다면 앞서 가는 일보다 지금 이 자리의 현상의 내막을 파고 들어가는 비판의 시각이 더 절실할지 모른다. '산림’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부터 시인, 작가는 ‘보다 나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응답하는 것이 오늘날의 문학인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한다면 너무 앞선 제안일까?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원자력 발전소의 증설,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댐 건설, 명산名山의 케이블카 설치 등등 산림(자연)과 결부되어 부상浮上한 난제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서서 그 문제 속에 내재된 의미를 캐묻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산림문학】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우리는 이미 산림이 인간에게 주는 크낙한 효용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가를 알고 있다. 그리면서도 적당한(?) 산림의 파괴는 얼마든지 복구시킬 수 있다는 자만감을 행복증진의 욕구로 치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은 『산림문학』 시 섹션에 게제된 서른여섯 분의 시 서른여섯 편을 감상한 소회에 한정되어 있다. 같이 시를 짓는 동도의 입장에서, 일정 수준의 시 독해력을 지닌 독자의 입장에서 『산림문학』이 지향하는 주제를 충실히 따라가 보는 여정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산림문학 2015년 봄 ․ 여름호』(통권 21호)에도 어김없이 계절이 주는 느낌을 형상화한 작품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어지러워라/ 자유로워라/ 신기가 넘쳐 눈과 귀가 시끄러운/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김금용,「오월의 숲에 들면」1연 )과 같은 생명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시가 있는가 하면, 오므림과 폄을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하면서 “허방 위의 삶을 더듬는 자벌레/ 온 몸으로 지나온 길 가늠하며/ 돌아서지 못하는 순간을 바라보는”(유경희, 「자벌레」마지막 부분)자신을 반추하는 내성의 시, “푸른 가지 사이사이/ 누가 목관 악기를 끼워 두었지?”( 박명자, 「5월 나무들의 행진」 1연 부분)라고 세밀한 관찰의 눈을 보여주는 시편 들은 우선 편안하고 함께 호흡하고 싶은 기쁨을 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솔바람 들으러 대관령 휴양림으로 가서 조선 소나무를 만나고 “산을 타고 물결로 건너온 솔바람 소리는/ 지상에서 듣는 가장 청결한 결”(이충희, 「대관령 휴양림 솔바람」 부분)이라고 고백한 끝에 그 솔바람 한 자락 얹고 사는 것이 과분하다고 고백하는 마음과 마주치는 순간도 있다. 이런 공력은 오랜 시간 동안 광포한 마음 한 구석에 언어의 씨앗을 심고 매만져온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리하여 “숲 속에 들면 누구나 마법이 풀린 듯/ 시냇물 소리도 찬송가도 들리고 / 숲의 모든 일들은 다 알고 있는/ 새들의 지저귐도 설교와 같이 예사롭지 않은”(강우식, 「숲은 인생의 교회다」 3연 부분) 청정한 경지에 함께 다다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 쓰기는 결코 상상력에 기대어서는 성취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백견불여일행 百見不如一行의 전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백견불여일행 百見不如一行이 함축하고 의미가 산림으로 들어가 산림을 관조하고 사랑하는 일에 머무르기에는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아 보이기에 여기에 몇 가지 소회를 덧붙이고자 한다. 지난 호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시평을 끝을 맺었었다.

 

 

에즈라 파운드가 설파했던 시의 네 가지 요소 즉, 센스 sense(지적인 감각), 사운드sound(음악성), 이미지image(심상, 형상), 톤 tone(시인의 세계관)을 조화시킨 참신한 시인들이 새 봄을 맞이하여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무릇 한 편의 시가 갖추어야 할 뼈대가 위와 같다고 해도 그 모두를 충족하는 시를 짓는 일은 지난한 일이 될 것이며, 위와 같은 주장에 선뜻 동조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요소들이 좋은 시의 충분조건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주제가 독특하고 단단하다고 해도 시가 진술이 아닌 이상 미적인 감각의 총화이며 시인의 세계관이 명증하게 투영되지 않으면 완결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이같은 관점에서 견강부회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류종택의 「산머리 고양이」와 김자현의 「떠벌네」는 기존의 산림(자연)개념을 정적 靜的에서 동적 動的인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 작품으로 눈여겨 볼 만하다. ‘무봉리’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떠벌네’라는 여인의 행적을 그리고 있는「떠벌네」는 입이 헤퍼 “홀딱벗고새가 헐딱 벗고 홀딱 벗고/ 울어대는 아침에도 그녀는 법정진술서를 갈겨 쓰”는 진상의 내막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으로 경계지우는 것이 아니라 ‘뒤엉켜 있는 것’, 뒤엉키되 조화로운 것‘으로 스토리 텔링하는 시도는 해학의 진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달리 「산머리 고양이」 는 인간의 사슬을 끊고 산으로 들어간 고양이와의 우연한 조우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숲 속에서 흰나비를 쫓던 공주마마의 인형 같기도 하고

안개 속을 헤메이던 방랑시인의 유령 幽靈 같기도 하고

망망대해 茫茫大海로 떠난 임을 기다리던 여인의 망부석 望夫石 같기도 하고

태곳적에 황금날개를 잃어버린 천사 같기도 하고

 

- 「산머리 고양이」 3 연

 

 

야생으로 돌아간 고양이와 눈을 마주친 순간을 시인은 시의 전 연에 걸쳐 묘사하고나서 이렇게 끝맺고 있다. “영겁 永劫만큼이나/ 서로를 꿰뚫어 바라보면/ 달빛에 흠뻑흠뻑 젖은 무형 無形들이/ 함께 웃고 있었네” 라고. 이 시는 통념화된 자연과 인간의 시원에 대해서 묻고 있다. 자연/인간, 동물/인간, 동물/식물, 동물/동물은 어디서 헤어지고 갈라섰는가? 고양이에 대해 여러 가지 상념을 떠올린 끝에 생명의 시원에 대해 시인은 마침내 ‘웃는다’라는 활기찬 교감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떠벌네」나 「산머리 고양이」가 과연 좋은 시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 그 답은 베트남 승려 틱냣한 의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당신이 도시의 소음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차의 시동을 걸 때 물어보라! 떠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 2015년 『산림문학 』(가을. 겨울호) 시평

 

◆ 인용된 시

 

 

숲은 인생의 교회다

 

강 우 식

 

 

숲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만들기 전에

우리네 마음을 다스리는 곳으로

숲을 교회로 만드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숲속에 들면 누구나 가슴을 활짝 펴고

피톤치드의 활력으로

숨을 깊이 쉬고 내쉬게 된다.

 

 

 

숲속에 들면 누구나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산란하던 마음도

나무들이 막아주어 조용해진다.

아기의 숨결같이 바람도 잔다.

 

숲속에 들면 누구나 마법이 풀린 듯

 

 

 

시냇물소리도 찬송가로 들리고

숲의 모든 일들은 다 알고 있는

새들의 지저귐도 설교와 같이 예사롭지가 않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지어

제 한 몸을 숨기기 위하여 들어오고

어떤 사람은 병든 몸을 고치려고 여기 와서는

기도와 명상을 한다.

 

 

인생의 별의별

고개와 언덕을 넘기 위하여 와서는

자기가 살아온

삶의 자취를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마음 고쳐 잡는

계기가 된다.

 

 

숲은 교인도 교인이 아닌 사람도

모두들 몸과 마음이 깨끗해져 나가는

우리들 인생의 교회 같은 곳이다.

 

 

 

오월의 숲에 들면

 

김 금 용

 

 

 

어지러워라

자유로워라

신기가 넘쳐 눈과 귀가 시끄러운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까치발로 뛰어다니는 아기 산새들

까르르 뒤로 넘어지는 여린 잎새들

얕은 바람결에도 어지러운 듯

어깨로 목덜미로 쓰러지는 꽃잎들

 

 

수다스러워라

짓궂어라

한데 어우려 사는 법을

막 터득한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물기 떨어지는 햇살의 발장단에 맞춰

막 씻은 하얀 발뒤꿈치로 자박자박 내려가는 냇물

산사람들이 알아챌까 몰라

시침 떼고 도넛처럼 꽈리를 튼 도룡뇽 알더미들

그들을 덮어주려 물웅덩이마다 누운

하얀 아카시, 찔레, 조팝과 이팝꽃 무더기들

찾아오는 후손들 없는 잊힌 무덤들조차

오랭캐꽃과 아기똥풀 꽃더미에 쌓여

푸르게 제 그림자 키워가는 오월의 숲

 

 

몽롱하여라

여울져라

구름밭을 뒹굴다 둥근 얼굴이 되는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떠벌네

 

 

김 자 현

 

 

 

순돌아 -

뻥순아 -

개를 부르는 떠벌네 목청이 온 산과 들을 흔들면

무봉리 새벽이다

앞산과 뒷산 잣나무 숲이

선잠을 깨웠다고 꾸두들 거리며

품고 있던 새들을 날리는 아침

월세 방에 이사온 그녀 열흘도 안되어

이 집 저 집 온 마을을 뒤지더니 떠벌네

아랫집 살강에 새앙쥐 몇 마리 드나든다고

뒷집 여자는 손이 헤프다고

건너 집 사내는 일주일에 섹스를 두 번이나 한다고

온 동네 소문이

무봉리 전선에 걸려 너풀거릴 때

홀딱벗고새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울어대는 아침에도 그녀는 법정진술서 갈겨 쓰는 중

 

 

 

아침 먹고 억

저녁 먹고 억

개 끌고 뒷산 갔다 와서 오십억

소송의 달인 그녀의 미래 자산 삼천억

전라도 삼십만 평 호텔 지을까

충청도 오십만 평 연꽃을 심을꺼야

우리집 검정개 코카스패니얼만 그녀를 따라다니며 억억억

입덧을 하는지 억억억

 

 

산머리 고양이

 

류 종 택

 

 

바스락 바스락

알록달록한 단풍잎을 밟으며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슬금슬금 눈웃음을 치며

냉큼 산 고양이가 다가왔었네.

 

 

천만년만큼이나

나는

고양이를 빤히 바라보았네.

 

 

숲속에서 흰나비를 쫓던 공주마마의 인형 같기도 하고

안개 속을 헤매이던 방랑시인의 유령 幽靈같기도 하고

망망대해 茫茫大海 떠난 임을 기다리던 여인의 망부석 望夫石같기도 하고

태곳적에 황금 날개를 잃어버린 천사 같기도 하고

 

 

시비선악 是非善惡을 두루 보살피는 산신령 같기도 하고

부귀영화 富貴榮華를 죄다 저버린 집시 같기도 하고

 

 

 

억만년만큼이나

고양이는

나를 뻔히 바라보았네.

 

 

외줄을 타며 쥘부채를 휘젓는 곡예사 曲藝師 같기도 하고

오두막집 초가지붕 위에 누렇게 익은 호박 같기도 하고

검푸른 파도에 휩쓸려 모래 해변에서 고향을 노래하는 소라껍질 같기도 하고

광야 廣野에 넋 없이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 같기도 하고

 

 

전쟁과 평화의 장벽을 넘나드는 애꾸 장수 將帥 같기도 하고

악어가 득실거리는 공포의 강을 건너가는 얼룩말 같기도 하고

온 누리에 사랑의 등불을 밝히는 선구자 先驅者 같기도 하고

 

 

영겁 永劫만큼이나

서로를 꿰뚫어 바라보면

달빛에 흠뻑흠뻑 젖은 무형 無形들이

함께 웃고 있었네

 

 

5월 나무들의 행진

박 명 자

 

 

 

 

5월

나무들의 행진을 바라본다

흰 구름도 꽃잎처럼 흩어지는 날

푸른 가지 사이사이

누가 목관악기를 끼워 두었지?

 

 

발꿈치를 들고 사뿐히 살피거라

 

 

 

지난 겨울 이파리 하나 없이쓸쓸하던 날에

눈꺼풀도 없이

설핀 잠들던 밤에

 

볼펜심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나무의 눈물 자욱들......

 

 

터무니 없이 생이 억울할수록

걸음의 속도가 빨라지는

나무들의 쫄깃한

행진을 보거라

 

 

자벌레

유 경 희

 

 

힘 좋게 달라붙는 햇볕을 피해

나무그늘 아래 앉았더니

자벌레 한 마리

내 몸에 내려와 치수를 재고 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정확하게

한 자, 두 자, 석 자

오므렸다 폈다 반복하며

거리를 가늠하고 있다

돌아가지 못하는 순간

가늠하던 자리를 잃어버리고

제 몸을 접고 접어 허방을 짚는 자벌레

얼마쯤 더 가야 접을 수 있을까

허방 위의 삶을 더듬는 자벌레

온 몸으로 지나온 길 가늠하며

돌아가지 못하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대관령 휴양림 솔바람

이 충 희

솔바람 소리 들으러 대관령 휴양림으로 갔습니다

가을도 이슥한 11월 하순께

뉘엿뉘엿 지는 해 비껴 받은

기골이 장대한 조선소나무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맨발로 햇솔갈비 밟으며 능선으로 올라갔습니다

발바닥 좀 아픈 거 이 정갈한 호사에 비기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산을 타고 물결로 건너온 솔바람 소리는

지상에서 듣는 가장 청결한 결이었습니다

귀만 설핏 열어놓고 가슴으로 들었습니다

내 사는 곳 가까이에 큰 산 계시는 것은

미상불 은혜입니다

돌아가서 나는 무릎 꿇고

대관령 발치에 서는 것이

솔바람 한 자락 얹고 사는 것이

과분하고 과분하다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