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칼로 흐르는 강물에 글 쓰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15. 21:30

칼로 흐르는 강물에 글 쓰기

- 42편의 시와 10편의 산문

나호열(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1.

 

 

【소요문학회】를 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벅차오른다. 끊어질 듯, 금세 사라질 듯 하면서도 십 년을 훌쩍 넘고 이십 년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흐뭇하기도 하다가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겠지만 그들이 걸어왔던 길은 ‘지역’(지방)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가 겹쳐진 험로였으며, 오로지 문학이란 등불에 의지하며 헤쳐 온 천애절벽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소요문학회】를 정의해 보자면 ‘동두천이라는 지역에 거주하는 문학에 관심을 가진 여성으로 구성된 문학회’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요문학회】의 특성은 녹록치 않은 외압에 늘 직면해 왔다. 즉,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다가온 오늘날에도 모든 분야에서 중앙/지역(지방)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으며, 문학이라는 특수한 분야에서도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점. 등단 경로에 따른 차별과 계파성에 휘둘리고, 여성 상위시대라 일컬어지는 상황에서도 여성이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 거기에다가 집단의식 보다는 개인화되는 추세에서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일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난제를 견디어내며 생산해 낸 결과가 여기에 놓여져 있다.

 

2.

 

 이 문집에 수록된 8명의 42 편의 시는 그 어느 해보다도 다양하고 개성이 돋보이는 수작 秀作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수작을 한정해서 말한다면 전통적 서정시의 틀에서 벗어난 실험적 시도가 유난히 돋보였다는 뜻이다. 전통적 서정이 무엇인가? 시인(화자)의 감정을 대상의 어떤 특성에 이입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42편 전체가 그 틀을 벗어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춘수는 그의 『사색사화집』 (2002, 【현대문학사】)에서 전통 서정시, 피지컬(事物)한 시, 메시지가 강한 시, 현대성과 후기 현대성을 지향한 시로 나누면서 전통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은 그 수가 적었다고 말했다. 김춘수는 전통 서정시를 정의하기를, “안타까움의 정감을 일깨워주는 시”라고 했다.

 

  오늘날과 같이 경쟁과 감성이 메마른 세태에서 서정시의 위의는 여전하리라 여겨지지만 개성이 돋보이는 시를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는 뜻이겠다. 이은경의 시편, 김은희, 문두래의 몇 편의 시들이 전통적 서정시의 범주에 들 수 있겠는데, 말을 다루는 능숙함은 나무랄 데 없지만 만일 주제의 희소성에 방점을 두는 이가 있다면 스치듯 지나갈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김은희의「그들이 사는 법 -장탄리 사람들3-」, 문두래의「 논」, 문선정의「우리 어머니」,이명숙의「굴비」,한옥순의「주머니여, 아주머니여」,허부경의「터널」등의 시편은 시가 지녀야 할 감정의 절제와 비유의 적절성은 물론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의 깊이가 남다른 경지를 보여 주었다.

 

  김은희의 그들이 사는 법 -장탄리 사람들3-」은 부제가 암시하듯 장탄리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긴 호흡으로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기대를 걸고 싶다. 도시화와 그에 따른 공동체 문화의 와해 속에서 한탄강변 장탄리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을 ‘귀머거리 금순 엄니’를 매개로 풀어내는 기법은 앞으로 갈고 닦을수록 시인의 공력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문두래의 시편들은 예전에 비하여 뚜렷하게 향상된 절제미를 보여주고 있지만 감정이 멈추어서야 할 지점을 간간이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논」은 ‘아버지’와 ‘논’을 이항대립이 아니라 화자의 가슴(정서)에 들어앉은 삶의 기제 基劑로 가라앉히면서 ‘아버지’와 ‘논’의 의미를 새롭게 자극하게 하는 관찰력의 깊이를 보여 주었다.

 

  문선정은 오래 시를 다루어 온 사람답게 긴 호흡과 예사롭지 않은 필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시단의 시류가 그러한 까닭도 있겠지만 자칫 산문화되는 긴 시행은 시가 지녀야할 생략과 압축의 묘미를 잃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어머니」는 유머와 해학적 요소를 곁들이면서 세월 따라 익어가는 모습을 슬프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 시는 웃다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다.

 

  이명숙의 시편은 김춘수의 분류에 따르면 피지컬(事物)한 시, 메시지가 강한 시, 현대성과 후기 현대성을 지향한 시의 경계를 두루 넘나들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한마디로 삐딱하고 불온하며 모순투성이다. 그의 시편은 시가 아니며, 시가 아닌 까닭에 시다. 따가운 시선 視線과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 실험정신이 유난히 돋보인다. 그 중 굴비」는 이른바 을 乙 로 지칭되는 모든 장삼이사의 자화상이다. 죽어가면서도 ‘바다의 왕자’였음을 꿈으로 꾸는 희망을 누가 저버릴 수 있을 것인가!

 

  한옥순은 그의 시집 『황금빛 주단』을 통해서 반어와 패러디를 무기로 현실을 비판하고 건너가는 모습을 질펀하게 보여준 바 있다. 요즘의 한옥순 시인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황금빛 주단』을 넘어서는 또 다른 세계의 인식을 펼쳐주는 것이다. 그러나 징검다리 건너듯 쉽게 세계에 대한 인식과 필법을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다. 창작의 고통은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주머니여, 아주머니여」는 그의 장기인 펀 Fun의 말놀이를 통해 ‘주머니’와 ‘아주머니’의 공통점을 엮어내면서 ‘늙어감’을 익살로 풀어내는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를 언급한 까닭은 한옥순이 지양해야 할 기법이 다른 시인들에게는 시를 주제에 따라 경중輕重을 가를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사실 이번 그의 시편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은「아무도 없었다」와 같이 ‘비장함’과 ‘서정’을 직조하는 시법을 보여줄 때이다.

 

  이번 문집에서 깜짝 놀랄 시를 보여준 시인은 허부경이다. 시에서의 형상화 形象化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그의 시편에서는 개인적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주제의식의 외연을 넓히는 시력視力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암중모색을 통해서 이제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터널」은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삶의 불안과 존재의 무망을 절도 있게 그려냄으로써 시의 묘미를 살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또 다른 시 「붉은 달」도 광물성 달을 동물성 고양이로, 붉음(색)을 ‘니야옹, 니야옹 /앙알, 앙알’과 같은 소리로 환치해내는 세련된 필치를 펼쳐 보이고 있어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제 마지막으로 문인자의 작품에 대해서 언급해야할 차례가 되었다. “아마도 이제 막 시의 세계에 들어서지 않았을까?”하는 나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섣불리 그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 될 것이다. 수 십 편의 글(시)을 읽지 않는 한, 쉽게 편편의 평을 가하는 것은 시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의 글(시)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인지를 조감한 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 감상의 변을 늘어놓아도 늦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이번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음을 헤아려주기 바란다.

 

 

3.

 

  산문(수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로서 감히 작품의 우열과 경중을 따지는 일은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작품을 읽는 한 명의 독자로서 작품을 읽은 소감을 피력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문(수필)을 읽으면서 느끼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우선 백과사전에서 찾은 에세이의 정의를 읽어본다.

 

  보통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를 쓴다. 수필이라는 형식은 16세기말 프랑스의 저술가 미셸 드 몽테뉴가 처음 만들었다. 몽테뉴 자신의 글은 개인적인 사고와 체험을 표현하려던 것이었기 때문에 '에세'(essai : 프랑스어로 '시도', '시험'이라는 뜻)라는 말을 써서 자신의 시도와 노력의 산물임을 강조했다. 몽테뉴는 자신의 사사로운 일들에 대한 생각을 매우 뛰어난 솜씨로 포착해 생생하고 인상적인 방식으로 기록했다. 1588년 완전히 마무리되어 출간된 〈수상록 Essais〉은 아직도 수필문학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영국 최초의 수필가였다. 그러나 그의 〈수상록 Essayes〉은 몽테뉴의 〈수상록〉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루는 주제들이 '야망에 관해서', '진리에 관해서', '높은 위치에 관해서'와 같은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며, 문체는 대체로 위엄 있고 장중하다. 에이브러햄 카울리(1618~67)는 몽테뉴의 모범을 따른 최초의 유명한 영국 작가로, '나 자신에 관하여' 같은 자신의 수필에 몽테뉴의 개인적인 필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수필은 애디슨과 스틸, 새뮤얼 존슨, 올리버 골드스미스와 같은 대가들에 의해 모양이 갖추어져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찰스 (1775~1834)은 영국 수필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1820년에 나오기 시작했던 〈엘리아 수필집 Essays of Elia〉이 이 장르의 대표작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램의 수필은 삶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그의 재능을 통해 해학·공상·감정을 결합시키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매우 개인적인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그밖에 뛰어난 수필가로는 토머스 드 퀸시(1785~1859)가 있다. 퀸시의 작품인 〈하나의 예술작품인 살인에 관해서〉와 〈영국의 우편마차에 관해서〉 등은 고도로 세련되고 문학적인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수필은 몽테뉴나 램의 수필과 같은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그 시대의 다른 수필가들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에 다다른 것이었다. 미국의 소로는 〈월든 호(湖) Walden〉에서 천재적인 필치를 보여주었고 에머슨은 〈수필집 Essays〉(1841~44)에서 비록 몽테뉴와 램의 전통을 따르지는 않았으나 고상한 사고와 풍부한 논조를 보여주었다.

 

  수필은 원래 프랑스에서 생겨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는 늦게 정착되었다. 생트 뵈브(1804~69)의 경탄할 만한 작품인 〈월요 한담 Causeries du lundi〉(1851~62)은 실로 문학적이라 할 만큼 수준 있는 수필로 프랑스 수필의 선구가 되었다. 그밖에 유명한 프랑스 수필가로는 테오필 고티에와 아나톨 프랑스가 있으며, 이들에 의해 프랑스의 수필이 지적이고 분석적인 글임이 예증되었다. 20세기에 수필은 일종의 재미있는 문학으로 다시 태어났고 제임스 서버와 도로시 파커 같은 유머 작가들은 이러한 기술이 탁월했던 작가였다.

 

                                  - Daum 백과사전에서 인용 -

 

  간략하게 말해서 몽테뉴로 대표되는 輕隨筆과 베이컨으로 대표되는 重隨筆로 나뉘는 수필은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그 특성으로 한다. 이 자유로움은 형식의 제한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도 쓸 수 있다는 점까지도 함축한다. 그럼에도 수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없지 않으니 바로 문체文體에 대한 이해와 문체로 말미암은 글의 수려秀麗 함이다. 신변잡기이든, 미담이든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수필을 쓰는 사람의 진지한 사색이 곁들여지지 않는다면 체험의 절실함이 아무리 강건하다 하더라도 수필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완전히 구유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시와 산문 쓰기를 병행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살펴볼 때 굳이 시도 쓰고 산문도 쓰는 일을 만류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시와 산문의 경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각각의 특성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은 형편에서 두 개의 장르를 넘나들 때에 부딪치게 되는 진술과 함축의 혼돈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4.

 주마간산 식으로 문집을 읽다 보니 심도가 결여된 듯한 아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요문학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지 않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소요문학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지역성의 탈피, 작가정신의 고양에 있다. 이 두 가지의 과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에 대응하는 치열한 자기인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사유, 문학 조류에 대한 유연한 포섭은 여가의 문학에 머무르는 자폐와 유폐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개인이 집단보다 우세한 세태에서 문학회의 지향점이랄까, 강령이라 할까...... 등등의 합의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럼에도 그저 문학이 좋아서 모인 모임에 그친다면 소요문학의 앞날을 창창하게 바라보기는 어려움이 따른다. 동일한 관점으로 소요문학을 묶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소요문학의 유대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고 어떻게 그 생각을 드러내야 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소요문학회의 정체성과 존립 근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라건대, 소요문학회는 지역의 특수성을 깊이 헤아리고 타 지역과의 변별성을 뚜렷이 하는 책무를 잊지 않기 바란다. 또한 지역사회와의 유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유망한 신인의 발굴과 같은 일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이번 문집을 통해서 확인한 바 소요문학회의 동인 한 명 한 명이 지닌 개성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 수 백 명의 회원을 거느린 어느 단체보다도 뚜렷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공지영

 

* 이 글은 2015년 소요문학회 문집 시평으로 썼다.

 

* 이 글에서 언급한 시

 

그들이 사는 법/ 김은희

-장탄리 사람들3-

 

단풍처럼 익어버린 

세월의 끝이 아름답다. 

 

귀머거리 금순 엄니는 오늘도 분주하다

 수화는 아니지만 배추가 잘 절어서 

올 김장은 맛있겠다, 하더라 

듣지도 못하여 말도 아닌 몸짓을 

대종엄마는 벌써 알아버렸다

검정콩 농사도 풍년이라 하였다

머리카락이 검정콩을 대신 할 때 

엄지손가락이 아저씨로 변했고 

새끼손가락은 아줌마로 변했다 

그들은 금순 엄니 눈 속으로 

단풍보다 화려한 춤을 추었고 

그렇게 버무린 김장 속은 

수줍은 새색시 연지처럼 

온 동네를 빨갛게 물들였다

 

논/ 문두래

 

 

논이 눈으로 들어오는지

눈이 논으로 들어가는지

논이 가슴으로 들어오는지

가슴이 논으로 들어가는지

왜 볼 때마다 찡해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버지 때문

나를 세상에 내놓은 양반

나를 자라고 지탱해가도록 지켜보는 양반

여태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내 입에 밥을 넣어주신 양반

 

물이 채워진 봄 논

어릴 모를 심어 옹골차게 자라는 여름 논

구수한 냄새 피어나는 누런 가을 논

추수 후의 텅 빈 겨울 논

논에서 계절이 흘러가는 것은

내 가슴 속의 계절이 흘러가게 하는 굳건한 달력

 

우리 어머니/문숙자

연속극 봐야 하는데 레미콘 못 봤냐?

TV 보는 재미에 푹 빠지신, 우리 어머니

KFC광고를 보시다가

막내가 저기 KT에서 햄버거랑 통닭을 사왔는데 맛없더라 먹어 봤냐 하신다

 

말없이 웃던 내가 문득 KT를 생각하다

저는 KTX를 한 번도 못 타봤어요, 타보셨어요?

개인택시를 한 번도 안 타봤다고? 야야- 신시가지 나가면 흔한 게 개인택시다

 

아, 방 안 가득 휘저어 놓는 깨꽃 같은 웃음들이여! 

 

언젠가 후세인이 잡혔대요 했더니

후시딘 연고를 내어 주시며 어디 다쳤냐 하시던, 그 날부터 였나

귓속을 다니는 협궤 열차에 조금씩조금씩 가는귀 실어 보내시던, 우리 어머니

아랫목에 앉아 마음 편히 테레비를 보기 위해 달려온 시간이 하마 50년은 걸렸을 거다

연예인 수첩이라는 별명답게 연속극 시간표는 죄다 머릿속에 꼼꼼 심어 놓았다는, 똑똑이 우리 어머니

레미콘에 연속극 한 편 싣고 태우고 오시는 사이

가는귀 다시 오시었는지 틀니 뺀 합죽한 입을 오물거리며 기쁘시다가 슬프시다가 욕하시다가 무릎 덮은 이불 펄럭거리며 레미콘, 레미콘, 레미콘 어딨냐?

 

굴비/ 이명숙

한 시절의 풍상을 이겨낸 영웅의 탄생입니다

카이사르의 주사위는 던져져

대롱대롱 엮인

역사가 굳어버린 조기조기

허허로운 오장이 눈으로 들이마셔

공중에서 만찬을 당하는 전략 누가 택했나요

자린고비퍽된노동진하게데워주는 에너지

 

뜨신 밥에 동참되는

칭찬

기다려봐요

잠시 숨을 들이켜고 받아들일 게요

“나는 바다의 왕자였어요!”

 

 

주머니여, 아주머니여 / 한옥순

무엇을 넣어주면 좋아하겠소

무엇을 담아 줘야 행복하겠소

뭐든 탱탱하게 채워주면 되겠소?

무엇을 넣었나요?

무엇을 담았나요?

터질 것 터질 것만 같아요

어떤 것을 빼주면 되겠소

어떤 것을 덜어내면 좋겠소

지금보다 얼만큼 더 헐거우면 되겠소?

무엇을 뺐나요?

무엇을 덜어냈나요?

한결 가벼워졌군요

그런데 무엇을 자꾸만 빼내고 있나요?

무엇을 계속 덜어내고 있나요?

너무 비워져 금세 주저앉을 것만 같아요

누가 빼갔나요?

누가 덜어갔을까요?

내 속은 다 어디로 갔나요?

주머니 내, 주머니

주머니 아, 주머니

거죽만 남은 가여운 주머니

주머니여

아주머니여 

 

아무도 없었다/ 한옥순

봄빛이 터 가득히 들어 온 거돈사엔

부처님은 출타중이신가보다

수행중인 스님처럼 앉아있는 야생화들

바람결에 들려주는 불경 같은 속삭임

천년 느티나무, 저 이가 부처이시다

 

행 간 넓게 띄어 쓴

한 편 시 같은 당간지주만이 멀찍이 있던

4월 어느 날 저녁 무렵의 법천사 터엔 봄 노을이

울타리 없는 집들을 몇 지나고 마른 도랑을 건너

멀리 마실 다녀오는 노스님처럼 휘적휘적 걸어올 뿐

 

 

​아무도 없었다.

터널 /허부경

 

마주했던 날들의 얼굴에서

너의 큰 입을 보았을 때

 

 

느닷없이 찾아온 허기에

하릴없이 냉장고 문은 열리고

수신되지 않은 너의 목소리

 

 

"라이트를 켜세요"

 

 

지나쳐왔던 풍경 속에

흩어졌던 자음과 모음이 모이고

달팽이관의 부저는 모둠발로

타고 내렸던 너와 나의 승강장에서

조리개를 활짝 펴고 점멸되고 있었다

 

 

 

붉은 달/허부경

당신의 그림자로 나의 창에는

비릿하고 젖내 나는 뿌연 달이 뜹니다.

니야옹, 니야옹

앙알, 앙알

울어대는 폼이

내 품으로 들어오려나 봅니다.

풀어헤친 가슴위로

촉촉해진 콧망울이 느껴집니다.

야금, 야금

붉어지던 빛이

어느새

나의 전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