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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거울 속에 웅크린 자아의 풍경/ 주영란 시집 즐거운 몰락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8. 3. 18:18

깨진 거울 속에 웅크린 자아의 풍경

 

나호열(시인 ․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1.

 

『즐거운 몰락』은 주영란의 첫 시집이다. 신인의 첫 시집을 마주한다는 설렘과 기대는 각별한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집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당혹감에 짓눌리게 된다. 희망에 기만당하여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상이 그러하듯이, 그리하여 끈질기게 정독한 후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 - 혹은, 중간에 시 읽기를 포기할 지도 모른다 - 그 당혹감은 시인과 시 사이에 걸쳐 있는 인상 印象의 궤멸과 시詩 자체에 대한 회의와 맞물려 불쾌감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주영란의 시들이 누구나 암묵적으로 인정할 만한 ‘시는 이미지’라든가, ‘시는 수사 修辭를 통한 미美 의 추구’, 또는 ‘현실에 대한 증언’ 등과도 같은 다양한 정의들을 단숨에 무력화 無力化시킬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접해 보지 못했던 시법 詩法을 해석하고자하는 의도의 무망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당혹감과 불쾌감을 상쇄하기 위하여 기댈 수 있는 위안은 옹색하게도 새로운 예술이 지녀야 할 전통의 파괴와 모험의 여정을 기꺼이 인정하는 것과 일찍이 오규원이 그의 시 「용산에서」설파했듯이 ‘시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단지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 밖에 드러낼 것이 없다’는 삶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일임을 수긍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시와 비시 非詩 사이에 위치하는『즐거운 몰락』의 각각의 시편들은 독립적이면서 또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독립적이라 함은 각 시편들이 각각 다른 모티브와 풍경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그 시편들은 거대한 모자이크 속에 하나의 조각들로 슬그머니 통합된다는 점에서 유기적이다. 그러나 그 통합은 하나의 일관된 의미망이 아니라 파열된 이미지가 일으키는 중첩의 일관성이라는 의미에서 유효한 언명이다. 한 편의 시는 하나의 풍경으로부터 야기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각 시의 행 行과 연 聯의 배열은 단어(개념)와 문장(판단)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는 길에 불과할 뿐 어떤 의미로도 포착될 수 없는 -무의미가 아닌 - 의식의 명멸을 기록한 것이기에 각별하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즐거운 몰락』은 그 전체가 한 편의 시 詩이다.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지만 의미의 탐색을 일단 포기하고 ‘낯설게 하기’에 함몰된 의식적인 전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게 되면 ‘시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의 生 이 근사하지 않다’는 메시지에 근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 위에 뜬 구름을 잡는 터무니없는 공상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마주치고 있는 이 세상의 허망함은 - 발끝에서 뿌리가 뻗어 나올 때까지 구석에 코 박고 앉아 (「시인의 말」 중) - 시인이 현실적 세계의 체험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는 점에서 건강하다. 즉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오늘의 세상은 야만과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이다. 더 나아가 각 사물과 현상의 정체성이 휘발된 유목 遊牧의 정처 없음이 당연시되는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 맞서는 시인은 ‘정처 없음’이 아니라 ‘뿌리내린’ 삶을 향해 달려가는 어떤 발자국을 찾아가는 현실적 구도 求道를 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 빠진 안은 차갑고 배고프고 숨이 막히는’ (「어떤 삽화」) - 죽어가는 금붕어와 같은 실존의 긴박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시들은 저 의식의 밑바닥으로부터 타고 올라오는 주문 呪文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문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주문을 일으키는 기제 機制에 대해서 생각을 더듬어야 할 것이다.

 

 

2.

 

 

『즐거운 몰락』을 정통적 시법으로 독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현대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비극의 와류 속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실존의 긴박함은 특수한 환경에 놓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화된 인간의 문제라고 느끼는 시인의 토로가 주문으로 새어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한 결합이 가능하리라 믿었던 자유와 민주, 자본주의로 요약되는 거대한 와류는 광포한 탐욕으로 결집한 집단의 속성이 실제로는 나약한 개인의 몽상과 동일하다는 끔찍한 인식에 다름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이성(인식)의 해체를 넘나드는 허무주의 nihilism의 길과 오히려 의식의 분열을 안간 힘을 다해 막아보려는 냉정한 사실주의realism의 길 일 것인데, 그러나 시인은 이 두 갈래의 길 그 어느 길도 선택하지 않는다. 풍요 속에 감춰진 빈곤, 다중 多衆속에 버려진 개인, 집단적 정의가 강요하는 희생의 미덕은 낱낱이 분리해낼 수 없는 모호한 미궁 迷宮인 까닭에.

 

 

창문을 열자 골목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침소 리에 앞집 뒷집 잠들지 못한 노인들이 고개를 든다 당구장 담벼락에 붙어 담배꽁초를 짓이기 는 낯익은 얼굴, 기우는 전봇대 늘어진 전선가 닥, 쌓이는 쓰레기, 기웃거리는 고양이 헛발질하 고 너덜대는 문으로 들어오는 한 줄짜리 주소, 휜 등에 붙어 있는 짐, 다리 없는 그들이 유령처 럼 골목을 간다 오동나무 말없이 이파리만 떨어 뜨린다 버스종점 순두부 한 그릇에 숨죽이며 첫 차에 오른다 어디선가 들리는 입 다문 뉴타운 이야기 쓰러져 운다

 

- 시 「새벽 3시에」 전문

 

 

새벽 3시는 수면의 시간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규정한 휴식의 시간이다. 그러나 새벽 3시는 정지한 시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생명의 시간이며 소외된 존재들이 도시라는 비빔밥 틀에 섞여 들어가야 하는 출발의 시간이기도 하다. 시인의 감정이 틈입할 수 없는 판단중지의 차가운 현실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배경이 된다. 새마을과 뉴타운은 무엇이 다른가? 익명으로 가득 찬 도시화는 누구를 위한 낙원인가? ‘쓰나미가 밀려오고, 지나가고 해가 또 떠도, 온 몸은 문 열리고 닫히고, 서있다 누웠다 되풀이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밤낮’(- 시「어떻게 지내는가」부분)처럼 인간의 삶은 기계화되고, 표준화되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풍경은 휠체어를 타고 질퍽한 길을 가는 구두수선공(「구두수선공 이야기」), 갑甲질에 개인비서로, 성폭력으로 혹사당하는 을 乙( 「공중부양」), 욕망을 배설하는 신세계 옆의 어두운 골목의 몸 파는 나비들(「나비 눈동자」), 자궁이탈의 어머니(「사과 한 알」」), 호텔지하주차장 쪽문을 열고 들어가야 만나는 맹인 안마사( 「그녀의 방」」)들이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얼굴을 바꾸는 우리들 자신이라는 자각으로 이끌고 간다. 이 자각은 허무도 아니고, 현실에 맞서는 전사도 될 수 없는 정체성의 불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시인은 생각을 버린 무뇌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주영란의 시편에 등장하는 화자 話者는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카메라처럼 이 세상의 이면 裏面을 들출 뿐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시「어떤 삽화」의 부제 ‘ 바로 지금 여기 나’가 암시하고 있듯이,『즐거운 몰락』에는 시인의 개인사는 타자他者의 ‘삽화’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시인의 자아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 자아이며 그런 까닭에 어떤 미담 美談이나 개인의 희노애락도 보편적 인간의 본질로 수렴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 존재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비극적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산비탈 나비 한 마리 오락가락, 난기류 속 에 한쪽 날개로 자라지 못한 줄어든 허리 옭 아매고 안개에 놓쳐 버린 날개, 누구의 창문에 부딪쳐 금가는 소리, 맴돌다 웅크린다 배추밭 에 떨어져 퍼덕이는 몸뚱이, 그런 그 눈을 들 여다 볼 수 없고 날개 찢기고 먹었을 삼킬 수 있고 삼킬 수 없는 먹이, 그 속을 누구도 본 적 없고

 

- 시 「어떤 삽화」부분

 

 

변태를 통해 하늘을 나는 나비는 마지막 짧은 생애를 난기류를 만나 창문에 부딪치고 끝내 무엇의 먹이가 되는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 과거를 잃어버린 채,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먹이가 된다. 나비는 스스로 나비이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수동적 운명체이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면서도 개인적 삶의 특수성을 거부하며, 익명 匿名의 나레이터 narrator가 되기를 기꺼이 수락한다.

 

 

3.

 

 

익명의 나레이터가 된 시인은 좀 더 자유스러운 위치에서 세계의 현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다양함, 복잡함, 정교한 거미줄과 같이 얽힌 현상과 현상(대상)을 불변의 본질로 인식하는 이성의 위의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동안 위력을 떨쳐왔던 이성은 칸트에 의해서 그 능력의 한계(물자체)- 이성은 한 사물이 왜 그 사물이어야 하는가를 알 수 없다 -를 경험했고, 프로이트에 의해서 리비도 Libido (성적 충동, 에너지)에 조종을 받는 기만으로 평가절하 되었다. 그런 까닭에 시인이 추구하는 보편적 삶의 원형은 이 지상에는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이다’ 이며 그런 까닭에 ‘ ~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어떤 본질을 확정하는 주체의 부재는 ‘즐거운 몰락’에 드러난 바대로 시제 時制가 현재형으로 대치될 수밖에 없는 난경에 처해지는 것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시인이 생각하는 바는 이러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는 존재하지 않으며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현상과 그 잠재적 현상은 연속적이지 않고 분절되어 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의 서두에서 시인은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는 니힐리즘의 길과 리얼리즘의 길, 그 어느 길도 선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분명해진 사실은 이 세상은 부조리하며 혼돈 caos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질서정연한 세계, 조화의 세계는 환상에 불과하다. 환상의 세계를 좆아 가면 갈수록 우리는 심연의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것임을 이 풍요의 시대에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미 그러하기에 시인은 분노하지도 않으며 한탄하지도 않으며 희망을 갈구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은 원래 그러하였으므로 어떤 기대나 희망도 가질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태도는 라깡 Lacan의 거울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견강부회하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즐거운 몰락』이 주는 당혹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자는 생각으로 라깡의 주장을 음미해 보기로 한다.

 

 

라깡은 개인의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거울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영아기의 아이는 거울 속의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의 동일성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동일성은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라고 볼 수 없다. 이 단계를 상상계라고 하는데 이 상상계는 실재계 - 출생할 때부터 구유하게 되는 경험세계 전체 -의 뒤에 나타나는 것이고 상상계 다음에 나타나는 단계는 상징계 - 언어활동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을 이루는 단계- 라고 일컫는다. 말하자면 인간의 자아는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의 단계로 이행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실재계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아의 왜곡으로 말마암아 영원히 가닿을 수없는 미지의 세계로 남는다. 상상계는 자아가 나르시즘에 빠지게 되어 진정한 자아의 동일성을 가질 수 없는 허위와 기만에 가로 놓이게 된다. 상징계는 타자와의 소통으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지만 소통의 도구인 언어의 한계 때문에 상상계와 실재계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언어의 한계란 무엇인가? 라깡은 언어 자체는 은유라고 주장한다. 어떤 현상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는 압축된 개념이다. 소쉬르의 주장을 빌어 이야기 한다면 언어는 기표 記標와 기의 記義로 구성되는 것인데, 말하고자 하는 본뜻 -기의 -은 개념인 기표의 압축 -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 작용 때문에 발화하는 주체를 기만하게 만드는 왜곡을 일으키게 된다.

 

 

언어는 문법과 다양한 규칙들로 짜여진 구조를 갖고 있으며, 내가 말을 하려면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에 따라서 해야 한다. 그 규칙을 벗어나면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따라서 그가 보기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다.

 

- 이진경,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 이론」

 

 

 

 

이와 같은 라깡의 주장은 주영란의 시가 던져주는 시 형식의 파괴에서 초래되는 낯설음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놀랍게도 『즐거운 몰락』속에 라깡이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면 과대한 망상인가?

 

 

4.

 

 

여기까지 오고 보니, 주영란 이라는 시인이 얼핏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회의주의자이다. 시인은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질문을 던지는 자이다. 질문은 회의 懷疑로부터 시작되고 죽음으로 종결된다. 아니, 죽음을 넘어서까지 질문은 계속된다. 인간임을 증명하는 자아를 믿을 수 없고, 자아를 드러내는 언어를 믿을 수 없고,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실재계 (이데아)를 찾을 수 없는 지경에서 시인은 마주치는 현상에 가슴을 부딪치며 울부짖는다. 그의 주문 呪文은 기의에 닿을 수 없는 깨진 거울 속에 웅크린 자아로부터 튀어오르다 잠긴다.

 

 

9월 어느 강가를 걷는다 발자국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없는 물 속 깊은 당신 속,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마 르고 가재, 다슬기 바닥까지 드러날 때쯤 알까, 모르 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고 아는 척, 눈인사도 아직 말 도, 강물에 띄우지 않았는데, 강물이 손 한 번 흔들어 주지 않았는데, 지나칠 때 슬쩍 손끝이 닿는다 갈대밭 지나 댐, 이분음표 숨, 수문에 붙어 발목까지 시리다 까치발 들고 고개 내밀다 길게 쓴 문장, 아무 말 던지 지 못한 그림자 떨고 있다 갈대는 마른 몸, 씻어내고 다시 말린다 저 건너 날아오는 눈멀고 귀먹은 새, 내민 입을 삼키고 숨죽이고 선 채로 잠든다 갑자기 다가오 는 먹구름, 비바람 휘몰아치자 솟구치는 강물, 튀어 오 른 물고기 그 누구 위해 잔(盞) 넘치는가

 

- 시 「즐거운 몰락」전문

 

‘즐거운 몰락’에 대해서 생각한다. 즐거워서 몰락하는 것인가? 몰락이 즐거운 것인가? 즐거워서 몰락한다면 즐거움은 우리 삶에서 마땅히 배제되어야 할 폐악이다. 몰락이 즐겁다면 이미 몰락이 무엇인지 꿰뚫어 본 각자 覺者의 포즈이거나 예정된 몰락을 넌지시 권유하는 트릭일 것이다. 그렇다면 몰락의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마땅히 무너져 없어져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영란의 시 중에서 명징한 이미저리를 가진 몇 편 중의 하나인 「즐거운 몰락」은 건기에서 우기까지의 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람(타자)의 마음 속은 강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내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강물에 목숨을 기댄 뭇 생명들은 비를 기다리는데 그 비는 과유불급 過猶不及! 비를 기다리던 뭇 생명들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다. 사랑을 했던 사람인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기다리는 사람인지 강물은 메마르거나 넘치거나 죽음이외에는 보여주지 않는다. 애타게 기다리던 고도Godot는 오지 않는다. 그리움이나 기다림이 죽음의 다른 이름인 줄 모르고 우리는 최면에 걸린 채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즐거운 몰락은 주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웅크린 자아가 내뱉는 주문이다.

5.

 

 

앞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즐거운 몰락』의 전 편은 커다란 모자이크의 한 편의 시이다. 부재하는 실재에 대한 끈질긴 질문과 회의는 기의에 미끌어지는 무의식에 지배받는 기표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각각의 시들의 의미망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시인의 의도에 말려드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무의미한 말장난이라고 화를 내는 순간이 있다면 시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원래 의미 있는 연기는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어떤 빛」과 같이 안정되고 논리적인 구성을 지닌 몇몇의 시편들은 좀 더 깊은 조명이 필요한 가편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시편들은『즐거운 몰락』이전의 시들이 현실 비판적이고 미학적 구성에 의거한 비장미 悲壯美를 지닌 계열에 속한 시들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째든 주영란의『즐거운 몰락』은 기존 시들이 보여준 바와 전혀 다른 실험과 도전의 결과물인 점만은 분명하다. 창조는 환골탈태의 정신,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일진대, 시와 비시의 아슬한 경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들려준 『즐거운 몰락』과 주영란 시인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

 

 

◆ 인용한 시들

 

만들기

 

 

구석에 코 박고 앉아 이렇게 쓴다 시라면 온 몸으로 싹을 키워야 하는데 백지에 손 놓고 연필 돌리다가 씨앗을 말리고 있다 화살을 쏘며 백지를 채우는 일이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시로 비를 내리게, 눈을 내리게, 불을 지피게 할 뿐이다 커피나 담배를 얻을 수 없다 수십 개의 시구詩句로 밥을 얻을 수는 없다 한 남자를 한 여자를 얻지 못해도 넝쿨 말아 올리는 글 속으로 기어 들어가 한 줄 시를 위해 껴안는다 발끝에서 뿌리가 뻗어 나올 때까지 구석에 코 박고 앉아 이렇게 쓴다

 

 

 

벽과 길

- 도피

 

30여 년을 서로 마주 한다 기와지붕은 빌딩 보느라 목이 길어진다 바람은 회전문을 끌어안고 드나든다 빙벽에서 녹아내린 웅크린 머리카락에서 가쁜 호흡을 느낀다 녹는점과 어는점은 한 호흡이다 멍든 모니터에 나타나는 숫자와 글자의 수런거림을 듣는다

 

 

몇 가지 삶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거듭 클릭 한다 머리로 넝쿨장미가 기어온다 눈 껌벅이며 구름을 만들 수 있을까 벽 뚫고 출입구 없는 광장 지나서 돌아간다 문은 연신 열리고 닫히는 밤, 새끼손가락 크기 꽃들이 피 흘리는 길을 건너간다 더러는 벚꽃 잎이 길바닥에 밟힌다

 

 

허리 굽히고 문지방 넘어 손가락 세우고 팔을 뻗는다 가면을 쓰고 뒹군다 키스, 굳은 혓바닥이 빠져나간다 입소문 타지 않게 칭칭 조인다 기와지붕은 기와지붕대로 빌딩은 빌딩대로 둘러보면 나무는 나무대로 칼은 다른 칼집에 중지(中指)를 숨기고 수작을 부린다

 

 

 

새벽 3시에

 

창문을 열자 골목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침소리에 앞집뒷집 잠들지 못한 노인들이 고개를 든다 당구장 담벼락에 붙어 담배꽁초를 짓이기는 낯익은 얼굴, 기우는 전봇대 늘어진 전선가닥, 쌓이는 쓰레기, 기웃거리는 고양이 헛발질하고 너덜대는 문으로 들어오는 한 줄짜리 주소, 휜 등에 붙어 있는 짐, 다리 없는 그들이 유령처럼 골목을 간다 오동나무 말없이 이파리만 떨어뜨린다 버스종점 순두부 한 그릇에 숨죽이며 첫차에 오른다 어디선가 들리는 입 다문 뉴타운 이야기 쓰러져 운다

 

 

어떻게 지내는가

쓰나미가 지나간 도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노란머리 신사, 쓰러진 건물 향해 고개 끄덕인다 터번을 눌러 쓴 노인, 무릎 꿇고 흙 묻은 구두를 닦는다 무너진 계단 끝에 꽃무늬 긴 치맛자락 사이로 휘감은 다리, 그녀가 배경처럼 서 있다 (스티브 맥커리 다큐 사진전 한 장면)

신사해야 할 일 비즈니스, 노인 해야 할 일 구두닦이, 여자 해야 할 일 꽃가꾸기, 그들이 잘 해야 할 일 비즈니스, 구두닦이, 꽃가꾸기, 하기 싫어하는 일 비즈니스, 구두닦이, 꽃가꾸기, 일마치고 뒤돌아보면 굳어버린 얼굴 핥는 강아지가 숫자로 보이고, 일마치고 뒤돌아보면 풀어진 손이 식탁 위 뭉크러진 카레로 보이고, 일마치고 뒤돌아보면 휘청거리는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꺾인 꽃송이, 할 수 있는, 할 수 없는, 하고 있는 일은 주어져 있는가

쓰나미가 밀려오고, 지나가고 해가 또 떠도, 온 몸은 문 열리고 닫히고, 서있다 누웠다 되풀이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밤낮으로,

 

 

 

구두수선공 이야기

 

사내가 휠체어를 타고 질퍽한 길을 간다 어딘가 홀린 듯 돌아보지 않고 나비처럼 날아 보이지 않는 바퀴, 벼랑 끝에 멈춘다 빤히 고개 내밀고 올려다보는 난, 눈뜨지 못한 솔이끼, 어린 꽃잎들 까치발 세우고 들어 올리는 절벽, 내려다보다 기울어지는 망설이는 몸, 헛바퀴 돈다

 

 

가판점 쪽문 매달린 알람에 눈을 뜬다 휠체어에 앉아 덜컹거리는 구두 심장에 못을 박고 뱀처럼 꼬인 혈관을 깊이 들여다보는 놀라운 눈, 파도치는 너덜너덜한 밑창을 꿰매는 참을성 있는 손, 미닫이 문을 밀 때마다 비켜가는 거리의 발걸음 백년 넘게 장담하며 건네는 구두에 날개를 달아 주는

 

 

몸 안 천천히 일어나는 한 때의 눈발을 흩뿌리며 등 뒤에서 세게 잡아당기는 망치질 소리, 발과 바퀴사이 경계선 하나 지운다 알을 품은 휠체어

 

 

 

공중부양(空中浮揚)

1

거리에서 주운 구겨진 종이 한 장

 

?개인 비서와 같은 일을 한다. 우리들은 노예다. 현금과 상품권 드립니다. 여자는 치마 입고 노래해야 점수 준다. 선배들이 시키는데 어떻게 거절 하나…… 어디에서 벌어진 일일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무원과 기업, 군대상관과 부하, 폭력조직 두목과 조직원, 중고교의 일진과 피해자?*

 

2

 

구름 속을 가고 있다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 그들의 어깨위로 날아간 종이, 어디로 가고 있다 종이 위에 짓누른 깨알 같은 눈동자, 뒤에 드러난 보이지 않는 손자국, 사이사이에 끼여 있는 주름진 구두 발자국 들여다보면 구겨진 채 불쏘시개로 날아가 버리는 고백, 노을에 이끌려 까맣게 타고 있다 머리 위에서 재가 되어 유령처럼 빙빙 돈다 돌아오지 못하고 바람에 실려 날린다 삐걱대는 나무 바닥 사무실에서 날아가는 그들 손톱자국, 문은 어디에서 열리는 지, 잠 깨어나 또 꿈을 꾼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 2012년 10월10일자 조간신문들이 서울대 ‘인권 실태’라고 보도한 내용.

 

 

 

나비 눈동자

- 영등포역에서

 

 

 

세로가 우뚝 선 가로로 누운 선 따라 걷는다

유리관에서 새어나오는 네온, 꺾인 목 트림 냄새

달리다날다 멈추지 않는 타임스퀘어 신세계,

나비를 닮은,

 

 

보도블록을 따라 말없이 다리를 저는 염씨 장의사 지나, 기와지붕 낮게 깔린 홍등가 창문 고개 내민 몇 개의 꽃송이, 늙은 왕벚나무도 꿈틀댄다 흔들린다 얼굴 붉힌다 필사적으로 몸이 다할 때까지 맞서 싸우고, 눈썹이 울고, 제 살 태우고, 반쯤가린 얼굴로 버티고, 머무르는 오늘밤 사이, 무엇을 보고 아파해야 할까, 웃어야 할까 전철역 13번 입구, 하늘을 본다 빙판이다 저 벚나무 가지 귀먹은 새, 미끄러진다 머리카락사이 거부당한 말, 날지 못한 날개, 논개 얼굴, 소리, 발가락으로 땅강아지 되어 헐떡인다

 

 

출렁이는 계단 앞 따라와 툭, 떨어지는 꽃송이

나비 몰래 장대 높이 매달러 간다 입술이 열릴 때까지

 

 

 

사과 한 알

 

올리세요 높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벌리세요

수술대 눈높이 맞출 때까지 몸을 들었다 놨다

 

 

회전하는 의자에 잠기는 전등알 달그락거리고

칼날 부딪는 손가락 사이로 주름 주머니 받아들고

밤빛 액 떨어지는 80그람* 밀어내고 웃고 있는 어머니

그 곁에 얼굴 들이대는 귀밑머리 허연 눈동자들

악어가 입을 벌리고 침대모서리에 개구리 뒷다리 올려놓는다

안을 지키려 굳어진 밖, 거울을 들이밀어 본다

산문(産門)에서 나의 알몸이 미끄덩 나왔다 들어가고

앞마당 사과, 쌓일 때마다 치마 속에서 산고를 겪는다

 

 

 

 

울타리 넘어 달 숨고 길 숨은 피아노 건반 위 몸부림치다

비가 내리고 앉았다 섰다 잡히지 않는 맨손으로 돌아와

철조망에 끼여 빗방울 터는 날개, 아시는가

과수원에 끊임없이 사과 꽃이 피고, 떨어지는 꽃잎에

묻어 있는 어미 새 살타는 냄새, 막걸리 한잔에

죽어도 날겠다던 꺾인 날개 들었다 놨다

 

 

* 자궁이탈 : 자궁이 정상위치에서 이탈하여 질 내로 솟아있는 경우. 대개 질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가장 많음.

 

 

 

 

 

어떤 삽화

- 바로 지금 여기 나

1

 

금간 수족관에 금붕어가 반쯤 입 벌린다 죽었을까 잠시 숨을 멈춘 건가 들썩이는 아가미 사이로 눈이 흔들린다 보이지 않는 작은 먹이를 먹고 또 먹고 토해내고 바라보는 실눈을 보자 겁에 질려 눈알을 내민 금붕어, 마른 등지느러미 들출 때마다 젖은 빛 스멀거린다 그걸 따라 달라붙는 파리

 

 

수족관에 물이 출렁 꼬리를 치고 얼마나 따뜻한 가, 물 빠진 안은 차갑고 배고프고 숨이 막힌다 그걸 보고 어떤 이는 질려 얼어붙고 어떤 이는 녹아 말라붙는다 반은 웃고 반은 운다 손을 비비고 어디에 속해 있지 않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얼굴이 거미줄로 뒤덮여 소리치고 가끔씩 깨어나 손가락으로 구름과자를 그리고 과자로 변해 가고 미쳐 가는, 그런 사실 동시에 믿을 수 있고 믿지 않을 수 있다

 

2

 

 

산비탈 나비 한 마리 오락가락, 난기류 속에 한쪽 날개로 자라지 못한 줄어든 허리 옭아매고 안개에 놓쳐 버린 날개, 누구의 창문에 부딪쳐 금가는 소리, 맴돌다 웅크린다 배추밭에 떨어져 퍼덕이는 몸뚱이, 그런 그 눈을 들여다 볼 수 없고 날개 찢기고 먹었을 삼킬 수 있고 삼킬 수 없는 먹이, 그 속을 누구도 본 적 없고

 

 

한 무리 유치원생 배추 한 포기씩 캐고, 너무 많아 갈아 업는 굴삭기掘削機소리, 배추가 숨 쉬는 소리, 나비 날개 접히는 잘린 몸통, 나비가 아니라고 금붕어 입술로 실룩거린다 는개는 백발로 부서져 내리고 애벌레 한 마리 흥얼거리고 서성대는 발등을 핥는다 온몸으로 기어오른다

 

 

 

 

 

 

사라지지 않는 어떤 빛․1

­미라 최진(崔縝) 복식(服飾) 전시회*

 

 

 

 

 

빛을 모른다 꺼진 눈, 막힌 귀 감싸 안고

화살 속에서 피어나는 쑥부쟁이, 끝에 날아오는 나비

그대가 땅 파고 작은 문 열 때 파인 얼굴

입에서 내뿜는 꺾인 햇빛, 달려드는 파리 떼

통곡하고 꿰매던 옷, 신발 어디 갔을까

떨고 있는 뼈마디 마디 맺힌 눈물방울

굳은 심장 안에서 더 말라 가고 있다

 

 

구름 가득한 유리관 팔다리 매달려 있다

흙빛 움켜진 주름진 치마, 저고리 꿰여있다

주름을 펼칠 때마다 숱한 마디 풀기 위해

노려보았을, 끓고 있는 낯설고 낯익은 눈동자

누구 목덜미를 쥐고 흔들었을 뒤집힌 손가락

등 떠밀다가 치맛단 풀린 밤이슬 몇 방울이 흔들린다

용암 같은 머리, 빗질한 그대로 관에 누워 있다

손을 비벼 유리관에 대 본다 곧추 선 머리카락

귀, 코 무대에서 사라지는 얼굴을 보여 준다

머무는 마지막 자리, 머리카락 풀어 헤치고

구름 모아 물길 만든다 지친 몸 피었다 가라고

혹, 머리카락 한 가닥 발등에 떨어져, 발목을

감을까 몰라 술래 피하듯 숨죽여 지나간다

그 날 밤 내내 머리카락 줍느라 무릎을 앓았다

 

* 2006년 경북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 전주 최씨14세조 최진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미라. 70여 점의 유물을 문경새재옛길박물관에 기증해 전시되어 있다.

 

 

 

사라지지 않는 어떤 빛․2

- 미라 최진(崔縝) 복식(服飾) 전시회*

 

 

 

쏟아 붓는 전등불 처음부터 빛은 살아 있지 않다

번들거리는 유리관 벽 화살, 총알처럼 지나간다

망초 꽃등에 업고 팔, 다리가 흘러내린다

흙, 움켜진 치마저고리는 곧추 서 입 벌린다

주름진 얼룩, 펴지 못한 마디 펴기 위해

호롱불 길어 올린 치마 단 실밥, 한 가닥을

나무기둥에 걸어 둔다 가지와 가지 붙잡고

식지 않는 실타래 늘려 간다 어디쯤 흘러갈까

갇혀 돌아갈 수 없는 부은 핏줄 오그라든다

기침 없이 자리 바꾼 바큇살 말 끝, 구름 밑에

구겨 넣는다 용암 같은 머리, 낯선 동네에

잠시 묻어 두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꺾인 햇빛을

보여준다 머무는 마지막 자리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물기를 말린다 타는 속 휘날리다

가시라고 늙은 구름 귓바퀴 타고 건넌다

발등에 떨어진 머리카락, 가는 발목을 감싼다

다리건너 온 몸, 언제 빠져 나가는가

골목을 들어간다 비틀거리고 숨어 기다리는

술래처럼 젖지 않고 껴안고 간다

* 2006년 경북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 전주 최씨14세조 최신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미라 발견. 70여점의 유물을 문경새재 옛길 박물관에 기증해 전시되어 있다.

 

 

 

 

즐거운 몰락

 

 

9월 어느 강가를 걷는다 발자국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없는 물 속 깊은 당신 속,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마르고 가재, 다슬기 바닥까지 드러날 때쯤 알까, 모르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고 아는 척, 눈인사도 아직 말도, 강물에 띄우지 않았는데, 강물이 손 한 번 흔들어 주지 않았는데, 지나칠 때 슬쩍 손끝이 닿는다 갈대밭 지나 댐, 이분음표 숨, 수문에 붙어 발목까지 시리다 까치발 들고 고개 내밀다 길게 쓴 문장, 아무 말 던지지 못한 그림자 떨고 있다 갈대는 마른 몸, 씻어내고 다시 말린다 저 건너 날아오는 눈멀고 귀먹은 새, 내민 입을 삼키고 숨죽이고 선 채로 잠든다 갑자기 다가오는 먹구름, 비바람 휘몰아치자 솟구치는 강물, 튀어 오른 물고기 그 누구 위해 잔(盞) 넘치는가

 

 

 

 

 

 

그녀의 방

- 어느 맹인 안마사 대기실

 

 

 

 

동대문지붕 위에 앉아 있다

기와등 따라 수막새에 매달려 있다

손가락 지나가는 마술처럼 살, 살리고 죽이는

 

 

호텔지하주차장 쪽문을 연다

침대 없는 조립 방, 비가 내린다

나무의자에 쪼그리고 그네를 탄다 더듬는

손, 소문 무성한 목소리 한쪽으로 듣는다

어깨장미문신 피어 올린 꽃, 돋아난 가시

자꾸 찔려 가늘어지고 늘어진 날개 축축하다

시린 몸 빡빡 긁어대는 아픈 비 스며든다

 

 

성벽 타고 올라가는 숨, 낙산(駱山) 어디쯤

다리 펴는 방 있을까 아침인가 저녁일까

높이 올라가는 물음표, 기울어진 벽에 기댄다

구석에서 짐 챙기다 걸레질하다 지붕에 걸린

구름, 창문 닦듯이 문지른다 하늘로 달아난다

지하철계단에서 시장골목에서 삼거리 식당에서

바라보고 웃는다 그런 그녀가 너무 많다 종종

 

 

손을 내민다 더듬는다 정문을 향해 팔 뻗는다

발을 내딛는 순간 물웅덩이 벗겨진 신발 한 짝

주저앉는다 발걸음에 잡힌 다리 저는 비둘기

부리 박고 물을 마신다 이 빌딩 숲에서 저 문을

넘어서지 않는가, 왜 떠나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