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쓴 시인론·시평

여럿이면서 하나인 안개꽃의 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6. 23:13

여럿이면서 하나인 안개꽃의 시

 

나호열( 시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1.

 

김정희 시집『너도 봄꽃이다』는 우리 시단 詩壇의 여러 갈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일으킨다. 크게 역사주의적 관점과 형식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분지된 현대시의 경향은 전통적 서정시의 한 극極과, 세계를 해체하고 언어마저 해체한 초현실시의 또 다른 극極 사이에 놓인 논쟁들을 상기하게 한다. 이른바 전통적 서정시는 당대의 삶이 당면하고 있는 국지적 문제로부터 도피한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전위적인 시들은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도외시 한 채 생경한 이미지를 남발하여 난해難解난독難讀의 함정으로 몰아간다는 원성에 힘을 잃는다. 그리하여 전통적 서정시는 극서정시라는 대안으로 나아가고 초현실적인 시는 이른바 미래파未來派라는 실험적인 소도 蘇塗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극서정시는 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생략과 압축을 살리는 방법적 특성(짧은 시)을 되살리자는 입장이고 소위 미래파라 명명한 전위적인 시는 무의식과 같은, 그동안 사회로부터 무시되거나 추방되어야 마땅했던 세기말적 문제들에 관심을 쏟는 것을 소명으로 여긴다. 이 양극단 사이에 위치한 각양각색의 시들이 놓여 있음도 주목해야 할 사항이지만 어째든 시인이 다뤄야할 주제의 선정, 주제를 담는 형식과 언어의 쓰임새에 대한 이와 같은 다양한 견해들 사이에서 여전히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느냐?”는 전혀 새롭지 않은 질문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강력하게 우리 삶을 포위하고 있는 시청각매체의 위력 앞에 더 이상 문학의 위기나 독자의 소멸과 같은 경고는 푸념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여전히 수많은 잡지에 수많은 시가 발표되고 수많은 시인이 등장하는 현상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내놓아야 하는 책무를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말해서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세상은 빅 데이터 Big Data에 의해 분석되고 행동이 결정되는 매커니즘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또 개인의 삶은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 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예측 불가능한 흐름 속에 놓이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의 흐름이 가속되면 될수록 존재 정주定住의 욕구는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축복처럼 다가온 ‘한강의 기적’이라는 물질적 풍요는 수많은 가치와 양식 樣式을 훼손하거나 소멸시키는 변혁을 일으켰다. 거기다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세계화된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겹겹의 외압에 대한 외침이 우리에게 시를 요구하고 시인을 탄생시키는 원인 遠因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획일화되고 평준화되며 기계화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거부와 반성이야말로 시의 번성(?)을 일으키는 근인根因이라는 생각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느냐?”는 질문은 속 시원한 해답을 얻기는커녕 앞으로 더 되물어야 할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2.

 

시집『너도 봄꽃이다』는 위에서 살펴본 여러 흐름 속에서 매우 전통적인 시정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과 계절을 대상으로 감정을 이입하는 시법은무엇인가 새로운 상상과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지루한 토로吐露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장삼이사 중의 하나인 나와 다르지 않은 일상의 기록이나 감상으로부터 뜻밖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너를 들여다보고 / 나를 바라다본다...중략 ... 가끔은 거북하게도 걸칠 수 있는 /사색의 옷을 짜 가는 것이다’(「시를 쓴다는 것」부분)에 드러나는 바와 같이 시를 쓰는 이유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위로하며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 소박한 진술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세상의 거센 조류로부터 본심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 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지만 결코 나르시즘에 빠지지 않는 반성의 거울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미화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이른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대상을 달리할 뿐이지 시인이 다루는 사물이나 현상 속에 어김없이 삽입되어 있어서 소박하면서도 굳건한 시 쓰기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나의 肖像」,「자화상」, 「사진 한 장」등에 묘사된 시인의 모습은 ‘하나씩 늘어가는/가늘고 긴 주름살/ 다채로운 사연들이 묻어’ 있거나 ‘눈가에 내린 잔주름마다 / 그간의 속사정이 녹았는지/ 빗줄기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시인이 바라보는 자아는 체념이 아닌 당당히 세월에 맞서는 건강성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에 그려진 살아온 날의 그림과

손바닥에 새겨진

솔잎모양 가는 선들이

삶의 길을 보여 준다

등대가 되어준다

 

- 「나의 초상」 마지막 연

 

거울에서 반짝이는 나는

내가 아니다

타인의 눈에서 눈부신 나도

내가 아니다

 

( 중략 )

 

무디지만

손끝 따뜻한 사랑에

고마운 줄 아는 나로

때 묻지 않은 별빛으로

그렇게 또 그렇게

비추어지고 싶다

 

-「자화상」 부분

 

무채색 눈동자 저편에 숨어

갈대처럼 일렁이던

세월의 숨결들이

무뎌진 일상에 휘파람을 분다

 

- 「사진 한 장」 마지막 연

 

속절없이 내게로 다가오는 세월을 전면으로 맞이하면서 등대가 되거나 때 묻지 않은 별빛으로, 무뎌진 일상에 휘파람을 불 수 있다는 열린 자아 Open Self는 김정희 시인에게 있어서의 ‘시 쓰기’와 ‘시인이 무엇인가?’ 에 대한 극명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열린 자아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시간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에 대한 믿음을 내포하며, 그 믿음이 시 쓰기의 원천인 동시에 시인이 감당해야할 책무임을 체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위와 같이 ‘시간’ 이란 관념 속에 응축된 외계의 변화에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늘날과 같은 유목의 시대, 방랑의 시대에, 생애의 전부를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여전히 몸을 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마도 시인은 이런 환경 속에서 유동하는 세상사에서도 변하지 않는 부동의 평정심을 알게 모르게 체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산’은 아버지가 되어, 선생님이 되어 시인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나를 아프게 해 / 산이 말했지/ 너는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이 없냐고’(「산이 내게」 첫 연).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받은 상처를 기억하는 대신 상처 받은 이웃들에게 눈을 돌린다. 시집에 무수히 등장하는 꽃들, 계절의 현상들은 단순한 감상 感想이 아니라 시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도타운 생명의 이웃들이었다는 인식으로 옮겨간다. 가만히 살펴보니 계절 따라 피는 꽃들, 열매들은 농촌 마을이 도시가 되었어도 여전히 시인을 외면하지 않는 소중한 이웃인 것이다. 쉽게 한 예를 들어보면「삼패리 강가에서」연작시 들은 도시화로 사라져버린 풍경을 되새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길이 바뀌고,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다슬기가 사라지고, ‘문득 문득/그 곳에 살던/작은 생명들의 합창이 /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그리워진다’(「삼패리 강가에서 · 하나」마지막 연)는 술회는 『너도 봄꽃이다』의 뼈대를 이루는 자연 친화와 해찰이 시인이 주고받았던 상처의 치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인이 겪고 있는 상처가 도시화와 같은 외적인 이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싸릿대가 영글어간다

 

투박한 손으로

씨앗을 맺은 가지를 다듬어

한 줄 한 줄 엮은 지게 위에

아버지 땀이 반짝이며

새신랑마냥 반지르르 맵시가 난다

 

작대기를 앞 세워

뻣뻣한 아버지 허리가 곧추 선다

 

휘어진 인생을 풀어 만든

묵직한 봇짐을

허허허허 웃으며

 

가뿐하게 들어 올린다

 

 

간절한 마음으로

아침마다 기도를 한다

오늘만이라도 화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낮추리라 다짐을 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연다

무심한 눈빛에 가슴이 싸해진다

연일 겪는 일이지만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꾸짖는다

손을 잡는다

두툼한 손마디를 들여다본다

방 안 공기를 깨우는 한마디

누구 유

나의 눈동자가 파도타기를 한다

 

예문 ①은 시「아버지의 지게」의 전문이고 ②「절망을 꾸짖다」의 전문이다. 그 옛날 아버지는 집에서 가장 힘이 세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거인과도 같은 존재였다.「아버지의 지게」는 아버지의 노동이 어린 자식에게는 신나고 멋있는 놀이로 비쳐졌던 과거를 투사한다. 그런 아버지가「절망을 꾸짖다」에 이르러 정신과 육신이 허물어져 사리분간을 못하는 존재로 뒤바뀌어 버린다. 화자 話者는 ‘그저 / 놀이방에서 돌아온/ 네 살 난 손자의 친구가 되는 (「아직은 어린 일흔 살」부분)존재로 넉넉하게 아버지를 대할 수가 없다. 하늘같이 넓었고 땅처럼 꿋꿋했던 아버지가 아님에 절망하고 분노한다. - 필자는 치매로 고생했던 어머니를 모시면서 화내고 싸우며 10년을 보내고 올해 여름 어머니를 잃었던 까닭에 이 시에 더 이상의 언급을 할 수 없다. - 누가 상처를 주고 누가 상처를 받았는가!

 

4.

 

 

시집『너도 봄꽃이다』는 어떻게 보면 규방을 둘러싼 소소한 삶의 기록이며, 그 삶을을 반추하는 거울이다. 단순하지만 심성을 왜곡하지 않는 투명한 시들은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는 안개꽃 다발을 연상시킨다. 작아서 눈길이 가 닿지 않는 것들에 대한 눈 맞춤을 새로움에 비하랴. 이쯤에서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다’(시인 임보)는 명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써가면서 시인이 되어간다는 경건한 마음을 지닌 시인이 얼마나 있을까?

 

낡은 바퀴 녹슨 문짝

강가 주차장에 서서

봄비에 흐느낀다

천둥번개에 놀라며

서릿발에 상처가 덧나도

별일 아닌 듯 유리창을 반짝인다

섣달추위에

강물조차 입 다물고

딴청을 피워도

 

80서 304♡는

감기는 눈을 치켜뜨고

낡은 안전화를 지킨다

40대 무게에

오늘도 고단하였을 주인을

묵묵히 기다린다

 

- 「80서 304♡」 전문

 

‘80서 304♡’는 화물차이다.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며 어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와 같은 존재이다. 그저 묵묵할 뿐이다.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당신이 나의 ‘80서 304♡’이며 내가 당신의 ‘80서 304♡’이다. 이런 관계에 어떤 수식어가 어울릴 것인가! 그리하여 시인이 도달한 마음의 평화는 마땅히 이러하다.

 

봄의 젖줄을 기다린

생명들이 꿈틀거린다

 

가장 먼저 봄을 빨아들인

봄꽃이 집들이를 벌인다

하양 노랑 분홍을 입은

앙증맞은 꽃등이

가지마다 걸리면

 

꽃들이에

초대 받은 너도 나도

화사한 봄꽃이 된다

 

- 「너도 봄꽃이다」전문

 

5.

 

이 글의 서두에서 우리 시단의 여러 상황을 조감한 이유는 김정희 시인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몇 갈래의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예술은 늘 ‘새로움’이라는 숙제 앞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법이다. 진정성을 지닌 체험은 예술의 양식 糧食이지만 그 양식에 언어의 미학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값진 시인의 변모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서정 抒情을 견지하되 달콤한 아포리즘에 빠지지 않는 시세계를 열어갈 수 있다면 시집『너도 봄꽃이다』는 변모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너도 봄꽃이다』의 발간을 축하하면서 끝으로 니체의 말을 전해 드린다.

 

피로 글을 써라!

 

- 「짜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2015년 11월 무이재 無籬齋에서

나호열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