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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④ 창의문~혜화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4. 28. 23:10

만해부터 김신조까지 … 굴곡의 현대사를 걷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28 00:56 / 수정 2015.04.28 01:06

한양도성 ④ 창의문~혜화문
신분증 있어야 가는 군사보호구역
곳곳서 군인이 경비, 사진 촬영 제한
고도 높고 경사 급해 등산화 필요
와룡공원 인근엔 근대 유적 많아

          
백악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한양도성이 굽이치고 있다. 백악산을 가로지르는 도성 너머로 종로구 부암동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백악산은 18㎞에 이르는 한양도성의 시작인 동시에 끝이다. [강정현 기자]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한양도성 백악구간 창의문 안내소. 신분증과 함께 출입신고서를 내자 세 자리 숫자가 적힌 빨간색 목걸이를 건내준다. 창의문에서 혜화문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백악구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안내소 근처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백악구간은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가 기습한 1968년 1·21 사태로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 2007년 다시 개방됐다.

 올해 초 완성된 나무 데크를 따라 100m 정도 올랐을까. 선글라스를 끼고 등산복을 입은 군인이 보였다. 30~40m 간격으로 배치된 폐쇄회로TV(CCTV)와 군인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분단’이란 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느낌이다. 시민 강모(40)씨는 “2시간 동안 걸으며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사진 찍으시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면서 풍경도 찍지 못하게 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악구간 경비를 맡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앞두고 한양도성 추가 개방 등을 서울시와 논의 중”이라며 “군사 작전에 지장이 없는 한 최대한 협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도성 옆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초소를 뒤로 하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 도심이 내려다 보인다. 백악산(북악산) 정상 부근에 다다를수록 시야가 한강 이남까지로 넓어진다. 휴가를 맞아 딸과 함께 백악구간을 찾은 강재석(59·홍은동)씨는 “조선 시대에 관심이 많아 낙산과 남산구간에 이어 한양도성을 도는 순성(巡城) 중이다. 600년 전 이 높은 곳에서 성을 쌓았을 선조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됐을까 상상하게 된다”고 했다.


 백악구간은 18㎞ 한양도성 중 가장 높은 곳이자 도성의 시작과 동시에 끝이다. 조선 태조는 한양도성 축조 당시 공사 구간을 97개로 나눠 『천자문(千字文)』 순서대로 각 구간에 이름을 붙였다. 백악구간은 시작점인 천(天) 구간이자 끝인 조(弔) 구간을 함께 품고 있다. 박상빈 서울시 한양도성연구소장은 “백악구간은 남산·낙산구간과 비교해 고도가 가장 높고 경사도 급해 산책보다는 등산에 가깝다”며 “등산화를 신고 마실 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 구리시에서 친구와 함께 들렀다는 장은형(40·여)씨는 “조금 힘들어도 걷거나 쉬면서 대화하기 좋은 길”이라고 말했다.

 K2 소총을 메고 나무 계단을 오르는 군인 10여 명을 지나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날 답사는 끝났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와룡공원까지 연결되는 구간은 이달 말까지 보수공사로 폐쇄돼 있어 삼청공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백악구간은 와룡공원에서 혜화문까지 이어지지만 와룡공원에서 답사를 멈추는 사람들이 많다. 성북동에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즐기기 위해서다. 와룡공원에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복정마을을 지나면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尋牛莊)이 보인다. 만해는 조선총독부 방향과 반대인 북향으로 집을 내었다. 근처엔 월북작가 이태준(1904~?) 가옥을 찻집으로 바꾼 수연산방과 길상사 등 서울 강북을 대표하는 명소가 즐비하다. 가구박물관과 최순우 옛집까지 하나하나가 꼭 들러봐야 할 명소이자 스토리가 가득한 곳들이다.

글=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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