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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덖음차의 비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4. 20. 11:29

아홉번덖음차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14.04.18 00:01 / 수정 2014.04.18 04:15

묘덕이 피아골로 간 까닭은

왕성하던 찻잎이 불을 만나 숨을 죽여간다.


묘덕(54)이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썹이 백미(白眉)가 되어 있었다. 네 시간 만이다. 쉼 없이 찻잎을 여덟 번 덖고 난 뒤다. 찻잎을 덖을 때 날리는 솜털먼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그리 되었다. 덖음은 고행이다. 400℃가 넘는 무쇠솥을 끌어안고 하는 수행이다. 한눈팔면 끝이다. 오감이 바늘 끝처럼 일어선다. 작업장에서는 수시로 묘덕의 큰소리가 터진다. 때로는 험한 말도 튀어나온다. 긴장감을 조성해 아득해지는 자신과 제자들의 정신을 깨운다. 손에 작은 상처라도 나면 낭패다. 찻잎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을 마친 묘덕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있었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에서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졌다. 땀범벅이 된 온몸에서 김이 풀풀 피어올랐다. 다섯 겹의 장갑을 벗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자리를 정리하고 다기를 폈다. 100℃로 끓는 물과 찻잎이 만났다. 가지 끝에 달려 있던 뾰족한 창과 잎 두 장이 살아났다. 불을 먹고 여러 손을 거친 잎들이 꽃으로 피어났다. 흠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부드럽고 달았다. 은은한 향이 ‘햅쌀밥 뜸 드는 냄새’라는 묘덕의 말 그대로였다.

 

차 덖는 밤, 작업 막바지 묘덕의 눈에 눈이 내렸다.

 

“나 한때는 길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묘덕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차 만드는 길이, 그것도 비구니의 몸으로 해온 일이 어디 만만했겠는가. 제대로 된 차 한번 만들어 보고자 인내해온 세월이 있었다. 차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간 삶이었다.

지난해 5월 4일 묘덕이 차 덖는 현장을 보았다. 지난 12일 week&이 다시 차밭을 둘러봤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차 순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구례 글=안충기 기자

백미(白眉) 『삼국지 촉지 마량전(蜀志馬良傳)』에 나온다. 제갈공명과 가까운 마량(馬良)은 형제가 다섯이었다.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중에서도 마량이 돋보였다. 그 고장 사람들이 “마씨 오형제 중 눈썹이 흰 마량이 가장 훌륭하다”고 했다.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부르는 백미는 여기서 비롯했다. 뛰어난 작품도 백미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