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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내 존재의 원인은 물론 나의 부모님일 것이다. 그리고 내 부모님은 또 그들의 부모님 덕에 태어나셨을 것이고… 이렇게 지구 모든 인간들의 과거를 추적해 보면 우리 모두 약 40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살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약 46억년 전 탄생한 지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지구, 1000억 개가 넘는 은하들…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은 약 137억 년 전 거대한 우주 폭발, 빅뱅을 통해 탄생했다는 게 현대 과학의 정설이다. 그럼 우주는 왜 탄생한 것일까? 우주 그 자체 존재의 원인은 무엇일까?
마오리인들은 우주가 원천 부모인 랑기와 파파의 사랑을 통해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중아프리카에선 붐바란 신이 외로워서 세상을 토해냈다고 믿었고 잉카인들의 신 비라코카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나와 바위에 바람을 불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대부분 미개문명의 우주 생성론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1)존재하는 모든 것들엔 원인이 있고 2)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적어도 무언가 존재했으며 3)존재의 원인은 누군가 그 초기 우주의 무언가를 가지고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면에선 고대 그리스인들의 우주 생성론도 미개했다.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아낙시만드로스는 각각 우주가 ‘초기바다, 불 또는 무한’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는데 초기 요소 자체가 어디서 왔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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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역시 오랜 시간 야훼신이 ‘형태가 없는 무질서(tohu bohu)’에서 우주를 만들었다고 믿었지만 로마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도 확산되기 시작했던 기독교에선 타 종교들과 차별화된, 좀 더 혁신적인 존재 생성론이 필요해졌다. 초기 기독교 지식인들은 신플라톤주의 및 이단적인 그노시스주의와 철학적 주도권을 놓고 기원후 2~4세기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플로티누스, 포피리, 이암블리코스 같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에 소개된 만물의 형성자 ‘데미우르고스’가 형태 없는 빈 공간에서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중 특히 플로티누스는 자비심 많은 데미우르고스가 바로 이데아 세상의 이성적 존재들이 인간들의 세상에서도 표현될 수 있도록 한 하나의 님(The one)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그노시스주의자들은 ‘세상은잔인하고 불행하므로 이런 추한 세상을 만든 데미우르고스는 절대 자비로울 수 없고, 존재는 바로 사악한 신 이알다바오를 통해 창조됐다’고 주장했다. 유대-기독교의 단일신이 데미우르고스나 이알다바오보다 우월하다는 증명이 절실했던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신은 절대적 권능을 가지셨으므로 우주 창조에 자비와 의지 외에 그 아무 것도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결국 존재는 ‘creatio ex nihilo’, 바로 무에서 창조되었으며 신 외에 그 아무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겐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 원인이 바로 신이라면, 신의 존재의 원인은 무엇인가? 신은 왜 존재하는가?
어린아이들은 가끔 끝없는 “왜” 라는 질문들로 어른들을 당혹하게 만들 때가 있다.
“초콜릿 먹으면 왜 안 돼?”
“이빨 상하니까.”
“이빨 상하면 왜 안 돼?”
“음식을 못 먹으니까.”
“음식 못 먹으면 왜 안 돼?”
“아파 죽을 수 있으니까.”
“ 죽으면 왜 안 돼?”
“….”
아리스토텔레스는 끝없는 질문들을 종결시킬 수 있는 논리적 방법들을 추구했다. 우선 A의 원인은 B, B의 원인은 C, C의 원인은 A라는 순환적 논리를 써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결국 ‘A의 원인은 A’라는 말과 같다.
‘초콜릿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초콜릿을 먹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는 식의 논리는 어린아이에게도 통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으론 왜라는 질문을 끝없이 해 볼 수 있다. 이런 무한 논리는 가능하긴 하지만 어딘가 찜찜하다. 모든 것엔 언젠간 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질문을 어딘가에서 무작정 끊어 볼 수도 있다.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니까 너는 아프면 안 돼. 끝.”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무작정 ‘끝’ 같
은 식의 제멋대로는 논리적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존재를두 부류로 나누었다. 1)조건적이어서 존재를 위해 꼭 다른 원인이 필요한 존재들과 2)비존재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존재의 최종 원인이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하지만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존재는 우리가 증명할 수 있지만 (예: 네모난 원), 거꾸로 비존재가 불가능한 존재의 증명은 데이비드 흄과 이마누엘 칸트가 지적했듯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기본 논리만으론 ‘creatio ex nihilo’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지고, 대부분 철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우주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시작점이 있을 수 없다’는 가설을 선호하게 된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중력 때문에 우주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급히 자기 방정식에 불필요한 상수 하나를 추가해 자신이 믿는 영원한 우주 모델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영원한 우주는 환상일 뿐이었다. 일반상대성 이론이 완성된 지 불과 몇 년 후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주가 풍선같이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우주가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작았음을 의미한다. 그럼 우주는 어느 정도까지 작았을까? 현대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약137억 년 전 ‘무한히 작은 점(singularity)’에서 시작됐다. 이 이론은 1951년 교황 피우스 12세가 ‘신의 존재의 과학적 증거’라고까지 해석했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어린아이 같은 질문들을 해 볼 수 있다. “모든 존재의 시작점이 빅뱅이었다면 그 전엔 무엇이 있었을까? 빅뱅은 왜 일어난 것일까? ”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통한 거시적간격’의 현상을, 양자역학은 ‘플랑크 간격(원자나 전자 간격)’에서 일어나는 미시적인 현상들을 설명한다. 그런데 만약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단 하나의 점에서 시작했다면, 양자역학적 원리들은 당시의 작은 우주 전체에도 적용됐고 이럴 경우 수학적으론 증명할수 있지만, 개념적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직관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중 가장 반직관적인 결과는 우주가 무(無)에서 아무 이유 없이 랜덤(멋대로)으로 만들어 졌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공간이 랜덤으로 창조됨을 보인 호킹
여기서 우리는 무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무’를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라고 정의해 보자.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루크레티우스는 ‘Derum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ex nihilo nihil fit’, 고로 무에선 아무것도 창조될 수 없다고 했지만, 물리학자 알란 거스는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플랑크 크기의 작은 빈 공간에선 양자파동을 통해 충분히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창조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플랑크 크기의 빈 공간적 ‘무’에도 여전히 공간은 존재한다. 스티븐호킹은 그래서 한 단계 더 나가 양자우주론과 양자 중력학을 이용하면 공간 그 자체가 양자 파동적으로, 다시 말해 아무 이유 없이 랜덤으로 창조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왜 무가 아니고 유(有)인가?’ 현대 물리학의 답은 단순하다. 물체와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무’는 양자역학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는 오래갈 수 없기 때문에 ‘유’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는 어떻게든 무작위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 MIT에서 진행하고 있던 실험을중단할 수 없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귀국을 미루다 결국 어머니가 의식을 거의 잃은 뒤에야 한국에 도착해 주무시고 있는 어머니를 봤다. 어른이 된 뒤 어머니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나. 그 나의 존재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 분의 몸 안에서 시작됐다는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생각하며, 진정한 ‘무’는 양자 파동이 퍼지는 무한으로 작은 점 크기의 양자 우주가 아니라 아마도 언젠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미래의 ‘나’일지 모른다고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