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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과학

인간은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4. 6. 12:58

 

무리에 묻어갈 수 없는, 하나뿐인 ‘원본’이니까

김대식의 'Big Questions' <13> 인간은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김대식 KAIST 교수 dskim@ee.kaist.ac.kr | 제339호 | 20130908 입력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핵폭탄. 그 폭탄을 만든 과학자의 책임은 무엇인가? [사진 위키피디아]
1937년 12월 13일, 중국 국민당 정부가 충칭(重慶)으로 피한 뒤 수도 난징(南京)에 갇힌 시민들은 일본군의 사냥감이 된다. 남자들은 총살당하거나 생매장당한다. 100명의 목을 누가 먼저 베느냐를 놀이 삼아 경쟁하고, 매일 수천 명의 여자들이 강간당한다. 임신부는 총검에 찔려 죽고, 배 안의 아이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느껴보기도 전에 죽는다. 6주 동안 난징 시민들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밟아 죽일 수 있는 바퀴벌레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난징에 살던 독일 나치당원 욘 라베(John Rabe)마저 야만적이라며 항의할 정도로….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朝香宮鳩彦王) 왕자.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삼촌으로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 현장 책임자. 프랑스 유학 때 아르 데코(art deco·1920~30년대 프랑스 파리의 장식예술 풍조)에 빠져 도쿄 시로카네다이(白金台)에 멋진 아르 데코 집까지 지었다는 사람. 난징에서 모든 포로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지? 아니? 자신은 책임 없고, 다 참모가 몰래 한 짓이라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면책받아 우아하게 골프장이나 설계하다 93세에 따뜻한 침대에서 죽었다지.

1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 군인.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 2 좋은 할아버지로 행복한 노년을 즐겼던 요제프 멩겔레,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자, 이시이 시로(왼쪽부터).
‘인간 백정’ 아사카노미야·멩겔레 아이러니
난징에서 아사카노미야 왕자가 샤토 오 브리옹 와인을 마시며 아마도 예전 프랑스 애인들을 기억하고 있었을 무렵, 수천㎞ 떨어진 독일에선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가 나치당에 가입한다. ‘인종위생학자’로 줄곧 독일 민족의 절대 우월성을 주장했던 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특히 쌍둥이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의사가 된다.

수용소에서 그는 절대 신이었다. 웃음을 머금은 표정 때문에 ‘죽음의 천사’라고 불린 멩겔레. 배설물로 범벅 된 기차에서 내리는 유대인, 집시들, 선생님, 어린아이, 할아버지, 여배우 앞에서 그는 크게 외친다. “Zwillige heraustreten!(쌍둥이들 나와!). 나오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 하지만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행복했던 곳이 바로 아우슈비츠 아니었던가? ‘선택된’ 아이가 울면 설탕을 주며 달래다 짜증 나면 벽에 내던져 죽이고, 살아 있는 아이의 몸을 해부한다. ‘의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쌍둥이들을 서로 꿰매고, 7살 여자 아이의 요로를 대장에 연결하며, 울부짖는 어린아이의 간을 마취 없이 꺼내 본다.

배고픔과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게 했던 멩겔레. 전후 그는 유럽에서 잘도 빠져나와 볼프강 게르하르트(Wolfgang Gerhard)로 이름을 바꿔 아르헨티나ㆍ파라과이ㆍ브라질에서 승승장구했다. 사업도 크게 벌여 멋진 목장에서 살았고 바다에서 수영하다 67세에 익사했단다. 하긴 멩겔레뿐만이 아니다. 전쟁 포로들을 마루타 삼아 생체실험하던 이시이 시로(石井四) 관동군 731부대장도 전쟁 뒤 소아과 의사로 평화롭게 살다 역시 67세에 식도암으로 죽었다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인류가 구질구질한 도덕에 얽매여 사는 벌레 같은 인간들과 비범하고 강력한 ‘나폴레옹’식 인간으로 분류된다고 주장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던 위번멘쉬(초인)랄까? 세상의 갑이 바로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집주인인 악덕 할머니를 살해한다. 도덕을 초월한다던 라스콜니코프는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고 자수한다. 원작의 제목은 ‘프레스투플레니에 이 나카자니에(Prestuplenie i Nakazanie)’, 그러니까 ‘범죄와 처벌’이다. 영어로 ‘Crime and Punishment’라고 하듯 말이다. 그런데 독일어 제목은 ‘Schuld und Suehne-죄와 속죄’다. 범죄와 죄, 그리고 처벌과 속죄. 인간은 죄를 짓지만, 진정한 책임과 속죄 없는 처벌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일본군 일병, 멩겔레, 이시이, 아사카노미야, 히로히토, 히틀러. 그들에겐 교집합이 하나 있다.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를 찾아 브라질로 온 아들에게 멩겔레는 “나는 굶는 아이들에게 설탕을 나누어줬다. 그러니 영웅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단다…. 악마이며 정신병자이며 천사 같은 웃음을 가진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난징에서 칼부림하던 군인은 장교가 시켜서 했다 할 것이고, 장교는 장군에게 책임을 돌린다. 장군은 왕자의 명령을, 왕자는 왕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겠다. 왕은 나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라 할 것이고, 왕자는 장군의 보고를 들은 바 없고, 장군은 현장의 장교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장교는 어차피 칼질은 군인들이 했다고 하며 군인들은 또다시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란다…세상만 돌고 도는 게 아니다. 주인 없는 책임들도 돌고 돈다.

라스콜니코프는 한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눈으로 쳐다보며 죽였기에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내 책상 위의 빨간 버튼을 눌러 눈에 보이지도 않는 1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면?

미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기계적 복제가 가능한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원본’이라는 개념이 가능한지 물었다. 사진으로 ‘모나리자’를 100만 번 똑같이 찍어낼 수 있는데, 왜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한 장의 그림만이 특별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베냐민의 사촌 동생이자 철학자였던 귄터 안더스(Guenter Anders)는 책임감의 복제에 대해 생각한다. 한 사람이 한 명은 죽일 수 있지만 혼자 100만 명을 죽일 수는 없다. 100만 명을 죽이려면 그렇게 할 무기가 필요하고, 무기를 만들 공장이 필요하다. 공장은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과학과 기술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100만 명을 죽인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을까?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자들이 재회한다면…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한가운데 로스앨러모스(Los Alamos). 1942년 이곳으로 당시 최고의 천재들이 모인다. 승승장구하는 나치 독일을 막을 비밀병기 원자탄을 만들기 위해서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리처드 파인맨, 폰 노이만 같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 천재들과 26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맨해튼 프로젝트는 1945년 여름 드디어 완성된다. 독일은 이미 항복해 원자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고 일본 역시 항복한다. 하지만 두 도시에서 섭씨 1억 도가 넘는 화염에 불타 단말마의 비명 속에 사라진 수많은 목숨. 왜 그들이 난징 대학살과 진주만 공격의 책임을 지게 된 것일까?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에 괴로워한다. 그들이 다시 만난다고 상상해보자.

오펜하이머ㆍ노이만ㆍ라이너스 폴링ㆍ파인맨
오펜하이머=“핵폭탄이 터지는 순간. 해보다 더 밝은 또 하나의 해를 탄생시켰지. 우리 과학자들의 손으로. 나는 그때 힌두교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의 시 한 줄이 기억나더군. 내가 죽음,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구나.”

노이만=“오피(오펜하이머의 별명), 당신이 맨해튼 프로젝트 총책임자로서 괴로워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그 폭탄 없인 Japs(2차 대전 당시 일본인을 낮춰 부른 말)들이 절대 항복하지 않았을걸. 더 많은 군인이 죽었을 거라고. 그리고 어차피 우린 폭탄을 개발했지 사용자는 아니잖아. 책임은 군인들이, 아니 정치인들이 지면 된다고!”

라이너스 폴링=“나도 한마디….”(미국의 물리학자 폴링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원자·수소폭탄 반대운동을 벌여 196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이만=“폴링! 당신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도 않았잖소!”

폴링=“(노이만을 무시하며) 책임을 백만 조각으로 나눠버려 잔인한 인류 범죄도 무죄로 만드는 게 오늘날 현실이오…하지만 책임 없인 인류가 동물하고 다를 바가 없지 않나요?”

파인맨=“책임지려면 절대 독립적인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계몽주의적 사고요. 인간은 독립적이기에 자신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고도로 발달하고 분업화된 세상에서 그 누구도 완벽하게 독립적일 수 없소. 우리 과학자들은 사회라는 기계의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오. 우리가 나선다고 바뀔 게 없고, 나서봐야 인생만 복잡해진다고요. 어차피 세상은 나쁜 곳이며 바꿀 수도 없는 것인데…한 번뿐인 인생을 쓸데없이 낭비하느니 차라리 재미있게 연구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바닷가 노을을 즐기는 게 더 현명하지 않나요? 저는 우울한 책임론자보단 행복한 무책임론자로 살겠습니다….”

폴링=“(불쌍한 듯 쳐다보며) 책임 있는 인생과 재미있는 연구는 모순이 아닙니다. 뭐,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한 연구했고, 노벨상도 두 개(54년 화학상, 62년 평화상)나 받았거든요. 물론 현대 사회에선 그 누구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지만, 우리 과학자들이 그나마 가장 자유롭지 않나요? 우리가 그 무기들을 창조했고, 그 무기들은 우리 없이는 세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결국 우리의 존재와 노력이 필요조건이었다는 겁니다.

베냐민은 복제품과 원본의 차이는 원본이 갖고 있는 ‘아우라(aura)’라고 했지요. 원본의 창출 조건과 배경 그 자체가 복제품과 차별화해준다는 겁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연구의 배경과 창조 조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 기술의 아우라를 기억한다는 거지요. 그런 우리야말로 복제된 지식의 추한 모습을 사회에 알리고 이해시킬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원본입니다. 자신은 톱니바퀴 같은 복제품이 아닌 우주에 하나뿐인 원본임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라는 원본의 아우라 중 하나가 바로 피할 수 없는 책임감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했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